국내 제약업계 오너 경영인 세대교체가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만 대원제약(003220)과 제일약품(271980), 대한뉴팜(054670) 등 중소제약사들의 오너 3세가 사장 자리에 올랐고, 안국약품(001540), 신신제약(002800)은 지분 승계를 마무리하고 최대주주 자리를 굳혔다. 과거 오너 경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았지만, 최근 오너 3세들은 젊은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에서 분위기 쇄신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IB토마토>는 높은 내수 의존도와 제네릭(복제약) 위주의 사업구조 탈피,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이슈가 시대적 트렌드로 떠오른 상황에서 세대교체 닻을 올린 제약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봤다.(편집자 주)
[IB토마토 박수현 기자]
대원제약(003220)은 올해 1월1일자로 오너 3세인 백인환 대표가 경영 일선에 나섰다. 백인환 대표는 1984년생으로 고 백부현 창업주의 장손이자, 2세 백승호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Brandeis University)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정 KPMG에서 근무한 그는 지난 2011년에 전략기획실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해외사업부, 헬스케어사업부, 신성장추진단, 마케팅본부 등에서 경험을 쌓다가 지난해 12월 정기 승진 인사를 통해 경영총괄사장으로 경영 전면에 등극했다.
대원제약 본사. (사진=대원제약)
형제경영에서 사촌경영으로…우애경영 이어갈까
그러나 업계에서는 대원제약의 3세 경영체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먼저 창업주의 차남인 백승열 부회장의 장남 백인영 이사도 승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아직 백인환 대표의 지분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일각에서는 백인환 대표와 백인영 이사의 ‘3세 사촌 경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원제약은 제약업계에서 대표적인 형제경영 기업으로 꼽힌다. 2세인 백승호 회장과 백승열 부회장이 약 40년간 역할 분담을 통해 경영을 이어왔다. 단 한 번도 지분 경쟁을 벌인 적이 없어 ‘우애경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재 대원제약 주주구성 현황을 살펴보면 14.31%의 지분을 보유한 백승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자리해 있다. 백승호 회장의 지분율은 12.57%로 2대 주주다. 앞서 지난 2019년 백인환 대표는 백승호 회장으로부터 58만주를 증여받았으며, 이후 무상증자 등으로 지분을 3.65%까지 늘렸다. 백인영 이사의 지분율은 0.71% 정도다. 백승호 회장과 백인환 대표의 지분율은 16.22%, 백승열 부회장과 백인영 이사의 지분율은 15.02%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사실 형제경영은 다음 세대로 경영권이 넘어가면 필연적으로 사촌 경영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라며 “그간 재계에서 기업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사촌 경영에서도 평화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장밋빛 전망에 가까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그들끼리 경영권 분쟁이 나타나는 걸 많이 봐왔지만, 대원제약은 그런 잡음 없이 30여년간 우애경영을 이어온 기업으로 유명하다”라며 “3세가 창업주와 2세의 의지를 함께 물려받는다면 경영권으로 인한 불협화음에는 관심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폭 투자 원동력 되는 영업 현금창출력…유지가 관건
백인환 대표의 경영능력도 초미의 관심사다. 경영 전반에 대한 경험을 꾸준히 쌓아오면서 승계 준비를 이어온 만큼 이제는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점이다. 대원제약은 지난해 누적 매출액 4789억원, 영업이익 4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2%, 353.8%씩 늘었다. 감기약을 비롯한 주력 품목이 고루 성장하면서 3분기 만에 2021년 매출액을 따라잡았다. 주력 감기약인 코대원 시리즈가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성장한 6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원제약의 현금창출력은 안정적인 편이다. 최근 3년(2019~2021년)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이 784억원에 이르는 데 이어 지난해 3분기에도 누적 359억원을 기록했다. 매년 100억원 수준의 법인세 지출을 감안하면 2019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활동만으로 창출한 현금은 1430억원에 달한다.
안정적인 영업활동 현금창출력은 투자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같은 기간 대원제약은 유형자산 순취득을 위해 558억원을 쏟아부었다. 특허권, 판매권 확보 등에 지출한 무형자산 순취득액도 194억원으로 나타냈다. 영업능력이 투자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다.
다만 대원제약이 지금과 같은 현금창출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진해거담제 '코대원'과 짜먹는 감기약 '콜대원', 해열진통제 '펠루비' 등을 보유한 대원제약은 호흡기 질환·감기약 매출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등 호흡기계 감염병 확산에 따른 감기약 수요 급증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가운데 회사는 지난해 주력 품목 중 하나인 해열진통제 '펠루비'의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에서 패소한 탓에 연평균 매출액 300억원의 제품 경쟁력 하락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펠루비 제네릭사인
종근당(185750)과
영진약품(003520),
휴온스(243070)는 대원제약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를 거뒀다. 대원제약은 지난해 9월 이들 제네릭사를 상대로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원제약이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제네릭 진입에 따른 매출 하락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원제약은 호흡기 질환 등 감기약 매출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캐시카우 창출에도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연매출 5000억원을 돌파하는 것이 회사 측의 목표다.
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앞으로도 잘 이어나가는 것이 현재 회사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라며 "코로나19 등에 따른 호흡기 의약품의 매출 상승세를 앞으로도 유지해나가면서 만성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한 캐시카우를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매출 5000억원을 돌파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잡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3세 경영, 주가 부양 성공할 수 있을까
특히 시장에서는 3세 경영이 대원제약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회사의 주가가 지난 2015년 이후 줄곧 1만2000~1만9000원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회사는 이날(10일) 1만6210원의 종가를 기록하며 장대음봉을 만들었다. 올해 증시개장일인 2일(1만8650원) 이후 13.1% 떨어진 것이다. 시가총액 또한 3659억원으로 지난해 말 4100억원 대비 10.8% 줄었다.
주가 하락세는 대원제약이 중국발 감기약 대란 테마주로 부상했던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더욱 눈에 띈다. 펠루비와 짜먹는 감기약 ‘콜대원’, 진해거담제 시럽 ‘코대원’ 등을 보유한 대원제약은 중국발 감기약 대란이 일어났을 당시 시장으로부터 주목받으며 12월14일 52주 신고가(2만1800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때 시가총액은 현재보다 37%나 높은 수준이다.
증권가는 대원제약의 주가에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대원제약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했다. 강하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마스크를 벗게 되거나 공기 오염 악화로 호흡기계 의약품 선호도가 다시 높아질 수 있다"라며 "올해 상반기까지는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신제품 출시로 외형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현 기자 psh557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