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경쟁력 떨어진 저축성보험, 만기 도래에 해지 증가퇴직연금 만기 연말에 집중…대규모 자금 이동 가능성'채권매각' 자금확보 여건 악화, 자본성증권 차환도 부담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보험업계가 금융시장 변동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가운데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상승에 따른 자금 이동으로 지급보험금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인데, 수입보험료 성장은 둔화되고 있는 만큼 현금흐름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저축성보험뿐만 아니라 퇴직연금까지 변수로 떠오르면서 리스크 부담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1일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금리상승 이후 보험 업권에 나타난 유동성 리스크 핵심 요인으로 저축성보험과 퇴직연금이 꼽힌다. 보험사는 상품 계약이 장기간으로 구성되는 만큼 안정적인 수신 기반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금리 경쟁력도 떨어지면서 여러 부문에서 빠져나가는 자금 규모가 커졌다.
금리 경쟁력 부진한 저축성보험, 만기 도래에 해지까지
특히 저축성보험에서 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 유동성이 저하됐다. 저축성보험은 보장성보험과 달리 목돈 마련이나 노후생활 자금 대비가 주요 목적인 상품으로 고객이 납입한 보험료보다 만기에 지급되는 보험금이 더 큰 것이 특징이다. 같은 보험사뿐만 아니라 은행과 저축은행의 예·적금과도 경쟁해야 하는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보험 만기가 도래하면 재계약을 통해 자금을 계속 확보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금리가 오르면서 은행 예·적금 금리가 상승해 저축성보험 매력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기본금리와 우대금리로 합산하는 은행 예금금리와 달리 저축성보험은 공시이율과 연동되는데 관련 수익률을 적용하는 시점이 직전 3개월 가중이동평균이기 때문에 경쟁력에서 밀리는 구조다. 저축성보험의 주요 판매 채널이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 판매)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저축성보험 만기가 대거 도래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젯거리로 언급된다. 지난 2012년 2월 비과세 관련 세제가 개편되면서 저축성보험 혜택이 축소됐는데 보험업계는 당시 절판마케팅을 전개하면서 보험가입을 크게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성보험 계약을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번에 만기 시점이 다가와 자금 유출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보험업계서는 고금리 저축성보험을 확정금리형에 일시납으로 판매하면서 자금을 끌어모았다. 내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서는 투자계약 요소가 매출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보장성보험 영업을 강화해 왔는데 다시 저축성보험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저축성보험 상품의 금리는 하반기 들어서 크게 오르면서 현재 6%대도 거론된다. 다만 보험사의 운용자산이익률(2~3% 수준)을 넘어서는 상품 판매가 늘면서 이차역마진 부담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최근 일부 보험사는 고이율 저축성보험 영업을 확대하고 있는데 자산운용 수익률을 상회하는 높은 이율을 제시하는 보험이 등장하면서 이차역마진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라며 “다만 현 시점의 국고채 금리나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 신제도 도입 등을 고려하면 저축성보험 영업 확대에 따른 우려는 크지 않은 수준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다른 금융기관 투자 매력도가 여전히 큰 상황이어서 유동성 확보 수준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연말에 집중된 퇴직연금 만기…의존도 높은 보험사 경고등
저축성보험 외에 퇴직연금 부문은 만기와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면서 자금 유출 리스크의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한국신용평가 분석에 의하면 퇴직연금 상품의 약 80% 수준이 연말에 만기가 집중됐다. 퇴직연금 상품의 금리 경쟁력에 따라 대규모 자금 이동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보험사의 유동성 관리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평가된다.
보험사가 운영하는 퇴직연금의 경우 전체 상품의 95%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이며 80% 이상을 확정급여(DB형) 상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DB형 퇴직연금 상품의 만기는 연말이기 때문에 지난달 다시 적용된 퇴직연금 상품의 금리가 관건으로 풀이된다. 원리금을 보장하는 상품인 만큼 금리 경쟁력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연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자금 이동은 30%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금리상승 조건을 고려하면 이보다 규모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한국신용평가)
특히 시중금리를 바로 반영하는 예금 상품과 달리 퇴직연금은 계약 기간을 짧게 단기적으로는 1년으로 설정하고 금리 역시 해당 계약 기간마다 다시 정한다. 금리상승을 반영해 퇴직연금 상품의 금리 역시 가파르게 오르기 때문에 시장에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품을 제공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금 이동 규모를 사전에 예측하기 힘들고 그에 대한 대처 역시 쉽지 않다.
원리금 보장형과 DB형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는 보험사 고객의 투자 성향을 고려하면 퇴직연금 자금 이동의 주요 경쟁자는 안정적인 은행 예금으로 꼽힌다. 특히 보험사 중에서도 보험영업 외형 대비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중소형 보험사는 자금이 이탈하게 되면 자금수지 불균형이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금융·구조화평가본부 실장은 “1년 만에 반영되는 급격한 금리상승 영향으로 연말 퇴직연금 시장의 자금 이동 규모는 예년 수준을 크게 상회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과 시중의 유동성 축소 영향에 따른 은행권으로의 자금 이동 가능성, 연말에 집중된 만기 등을 감안할 때 연말과 연초에 보험사 유동성 관리 부담이 클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진단했다.
수입보험료 성장세 둔화…채권매각 등 자금확보 여건은 악화
저축보험에 퇴직연금까지 더해지면서 자금 유출에 대한 부담이 늘고 보험사가 지급하는 보험금 규모도 커지고 있지만 수입보험료 성장은 둔화되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생명보험의 수입보험료는 9.1% 감소했다. 연간 증가율은 –3.8%로 예상되며 내년에는 0.3%로 낮은 성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은 올해 상반기 원수보험료가 6.7% 상승했지만 내년에는 3.9%로 성장 흐름이 둔화될 것으로 평가된다.
채권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 역시 쉽지 않다.
한국기업평가(034950) 자료에 의하면 올해 10월까지 보험사의 월평균 채권 매도액은 7.1조원으로 지난해 월평균인 8.2조원 대비 14%가량 감소했다. 금리상승으로 채권 가격이 평가절하되면서 매각에 따른 처분손익이 저하됐을 뿐만 아니라 ‘레고랜드’ 사태나 흥국생명의 콜옵션 번복 등으로 채권시장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된 탓이다. 또한 금융당국에서 채권 매도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기존에 발행했던 자본성증권의 차환 시기도 다가오고 있지만 관련 시장이 위축되면서 발행금리 상승 압박이 커지고 있다.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내년 조기상환 콜시점이 도래하는 보험사 자본성증권 규모는 4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대다수 보험사가 조기상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환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원하 연구원은 “금리상승이나 채권시장 내 수급불균형 등으로 채권 매각 여건이 비우호적이며 단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라면서 “자본성증권은 상환 시점의 외부자금시장 여건에 따라 상환 관련 유동성 위험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낮은 성장성과 금융시장 변동성 증대 등으로 현금유입 개선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는 반면 지급보험금 부담 확대로 인한 유동성 위험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라고 평가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