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경고음)②증권사, PF발 자금경색 비상…위기의 전조일까
단기자금시장 경색 지속…PF 유동화증권 차환발행 난항
내년에도 금융시장 불안정성 지속…증권사 유동성 위기 우려도
공개 2022-11-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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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폭탄이 되어 돌아올 조짐이다. 지난 9월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에서 시작된 금융시장의 자금경색이 최근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까지 이어지며 한국경제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불쏘시개가 되어 건설사에서 금융권까지 도미노식으로 잠재 위험을 키우는 분위기다. 특히 ABCP 몇 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투자자들이 차환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2007년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과 유사해 ABCP가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러올 뇌관이 되진 않을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ABCP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건설사 및 금융권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IB토마토 은주성 기자] 연말을 앞두고 증권가가 흉흉하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조달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동산PF 관련 유동화증권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부동산PF 유동화증권에 신용을 보강했던 증권사들이 차환실패 물량 인수로 재무부담이 커지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유동성 관련 지표가 양호한 데다 정부가 유동성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큼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설명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특수목적회사(SPC)인 에스엔케이제일차는 5회차 ABSTB(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 140억원을 차환발행했다. 2개월물로 금리는 9.85%를 형성했다.
 
에스엔케이제일차는 인천 서구 물류센터 개발사업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다. 자산유동화증권과 관련해 현대차증권의 매입확약으로 가장 높은 ‘A1’ 신용등급을 받았다. 다만 발행금리는 올해 1회차(3월) 당시 2.2%를 기록했고 2회차(5월)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3회차(7월)·4회차(9월)에는 3%대로 올랐다. 이후 이번 5회차에는 9%대를 기록하면서 3배 가까이 급등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A1 신용등급의 ABSTB 유통금리는 2021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1%대를 유지하다가 2022년 상반기에 2%대, 3분기 3%대로 올랐다. 10월부터는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10% 돌파도 눈앞에 둔 것이다.
 
증권사들은 부동산PF 시행사 대출채권을 담보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및 ABSTB를 발행해 자금조달을 주선해왔다. 이 과정에서 신용보강 및 채무보증을 통해 큰 수수료 수익을 거뒀다. 이후 대형증권사부터 중소형증권사까지 모두 부동산PF 사업을 적극 확장하면서 수익성을 높여왔다.
  
주요 시장금리 추이.(사진=한국신용평가)
 
특히 증권사들은 통상 수익성 제고를 위해 비은행금융사 가운데 단기자금을 가장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부동산PF 사업도 일반적으로 만기가 짧은 단기 유동화증권을 발행한 뒤 차환발행을 이어가는 전략이 적용됐다. 만기가 짧아 금리가 낮고 투자를 받기도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꾸준하게 상승하고 부동산 경기 둔화가 지속되는 데다 최근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면서 ABCP 및 ABSTB 차환발행이 어려워지고 있다. 채무보증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떨어지자 차환발행을 위해서는 높은 금리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일 오후 CP(기업어음) 91일물(신용등급 A1 기준) 금리는 연중 최고치인 연 5.09%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1월(5.17%) 이후 약 13년 만에 최고치로 지난 9월22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지난 10월부터 채권시장안정펀드 가동을 통해 유동성 공급에 나섰고 최근 3거래일간 국고채와 회사채 등의 금리가 하락세를 보였음에도 CP 금리는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P 금리가 상승하는 것은 결국 모든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단기자금 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마진 차환발행도 감수…글로벌 금융위기 유사 지적도
 
단기자금 시장 경색이 장기화되면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BCP 및 ABSTB에 매입확약 등으로 신용보강을 했던 증권사들은 차환발행에 실패할 경우 해당 물량을 인수해야 하는데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투자증권과 교보증권(030610) 등이 지난 10월 ABCP 및 ABSTB 차환발행 실패로 해당 물량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증권사는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차환발행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가령 A증권사는 부동산PF 사업에 8%의 수익률로 중순위 투자에 참여했고 이후 금리 2%대 ABSTB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단기자금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9%대 금리로 ABSTB를 차환발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1%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그나마도 금리를 높여 팔리면 다행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 시장 상황이라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증권사 및 건설사 시뇽보강 만기 월별 유동화증권 현황.(사진=나이스신용평가)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증권사가 신용보강을 한 PF 유동화증권 가운데 11월에 10조600억원, 12월 8조9900억원 수준의 만기가 도래해 차환발행이 필요하다. 내년 상반기에는 약 52조원 규모의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도 금리상승 추세 및 자금경색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증권사들의 차환발행 및 미차환 물량 인수 부담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증권사의 ABCP 및 ABSTB 인수는 단순히 자금력으로 대응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NCR(영업용순자본비율)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뒤 이를 필요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NCR이 높을수록 재무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뜻한다. 증권사의 NCR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부동산PF 채무보증과 관련해 신용위험액을 산정할 때는 차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무등급이라 18%가 반영된다.
 
하지만 부동산PF 관련 유동화증권 차환발행에 실패하고 해당 물량을 떠안게 되면 신용위험액을 100% 반영한다. 예를 들어 1000억원 규모의 채무보증 계약을 맺으면 180억원만 위험액으로 잡히지만 차환발행에 실패하면 1000억원 모두 위험액으로 반영돼 총위험액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차환발행 실패가 이어져 NCR이 저하되면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금융당국의 관리를 받게 되는 등 시장의 신뢰가 하락해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극단적으로 문을 닫는 사태까지도 발생할 수도 있다. 
 
증권사들의 유동성 우려에 더욱 주목하는 것은 2007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미국 금융사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에게도 높은 금리의 대출을 적극 실행했고 이후 대출채권을 담보로 주택채권담보부증권(MBS), 자산담보부증권(CDO)까지 만들어 판매했다. 하지만 금리상승 및 부동산 거품 붕괴로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들의 부실이 현실화되면서 투자심리 위축으로 자금조달 시장이 완전히 경색됐고 이후 세계 4대 투자은행으로 불리던 리먼브라더스까지 파산했다. 이는 현금 확보를 위해 신흥국의 미국 자본이 급격히 회수되는 등 세계 금융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증권사들은 주식위탁매매, 금융상품 판매 외에 국내외 투자, 운용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증권사의 연이은 부실이 발생한다면 금융시장 및 다른 산업에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채안펀드 및 유동성공급프로그램 등을 가동하면서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증권사들도 차입금 한도 확대, CP 및 전자단기사채 발행, 보유 금융자산 처분, ELB 발행 등을 통해 선제적 유동성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중소형사 상대적으로 위험노출 커…우려 과도 시선도
 
미래에셋증권(006800) 등 대규모 자본력을 갖춘 대형증권사나 KB증권, 현대차증권(001500), 삼성증권(016360) 등 모기업의 지원여력을 보유한 증권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중소형 증권사들의 유동성 대응능력이 취약하다는 평가다. 중소형증권사들의 PF사업 수익의존도가 높아진 데다 자금동원력이 열위하기 때문이다.
  
브릿지론 및 본PF 익스포저 현황.(사진=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대형사의 부동산PF 익스포저가 2020년 말 대비 1조1000억원 증가한 반면 중소형사는 2조8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형사의 PF사업 중·후순위 비중은 각각 63%, 72%로 대형사(30%)보다 손실위험도 훨씬 컸다. 브릿지론 및 본PF의 자기자본 대비 비중을 보면 하이투자증권(86%), 다올투자증권(030210)(85%), 현대차증권(79%), 교보증권(67%), BNK투자증권(54%) 등의 PF 사업비중 및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단기자금 시장이 완전히 경색되면 기업 재무상태나 실적이 좋더라도 소액의 어음을 막지 못하는 흑자도산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앞서 2020년 3월 ELS(주가연계증권)와 관련해 기초자산인 주요 시장지수 급락으로 대규모 마진콜이 발생했을 당시 단기자금시장 경색 및 환율폭등 등으로 대형증권사가 달러를 마련하지 못해 부도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만큼 현금 보유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2분기 기준 중소형사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를 보면 하이투자증권(8158억원)과 유안타증권(003470)(8166억원)이 높은 수준을 보인 반면 교보증권(1110억원), 한양증권(001750)(1014억원), 케이프증권(1155억원)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베스트투자증권(078020)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가 358억원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 일각에서는 증권사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시선도 있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증권사별 조정유동성비율은 주요 증권사 모두 10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유동성비율은 단기 지급능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유동성비율에 채무보증잔액을 반영한 것으로 100% 이상인 만큼 우발채무가 현실화되더라도 증권사의 자체 유동성 대응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시장의 지나친 우려가 오히려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단기자금 시장 경색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 지표가 양호한 데다 금융당국도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시간이 흐르면 자금시장 경색이 완화되고 우려할 만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리와 환율 상승 등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증권사들도 이를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클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중소형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되며 단기자금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주성 기자 e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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