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코오롱(002020)그룹의 화학·소재 계열사들이 자동차 소재 사업으로 빛을 본 데에 이어 미래 성장동력의 하나로 모빌리티를 낙점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코오롱글로벌(003070)뿐 아니라 용퇴 후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이웅열 전 회장도 모빌리티 부문 투자에 나선 까닭이다. 업계에서는 이웅열 명예회장의 자녀이자 그룹 후계자인 이규호 부회장이 자동차 부문을 담당하고 있어, 원활한 승계를 위해서도 모빌리티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코오롱글로벌은 지난 4일 공시를 통해 자회사 ‘코오롱제이모빌리티’의 180만주 규모 신주 발행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출자액은 180억원으로 오는 7월 1차로 80억원을 출자하고, 10월에 100억원을 마저 투입할 예정이다. 이번 출자를 포함해 코오롱글로벌이 코오롱제이모빌리티에 출자한 총액은 250억원이다.
코오롱제이모빌리티는 유상증자 목적에 대해 ‘사업확대’라고 명시했다. 사업 확대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모빌리티 부문 자회사 간 시너지를 확대해 장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코오롱제이모빌리티는 작년 12월 수입차 지프(JEEP) 브랜드 딜러사로 신설된 자회사로, 처음엔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 자회사로 만들어졌다.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는 당시 코오롱제이모빌리티 외에도 아우디 딜러사인 코오롱아우토, 볼보 딜러사 코오롱오토모티브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가 코오롱글로벌에 합병되면서 딜러 3사도 본사 산하 자회사가 됐다. 코오롱글로벌이 경영효율화를 통해 직접 자동차 부문을 키우겠다는 의도였다. 코오롱글로벌의 자동차 부문 매출액 비중은 2020년 36.7%에서 지난해 42.5%로 무려 5.8%포인트 증가했다. 코오롱글로벌은 수입차 판매 외에도 ‘코오롱모빌리티’라는 이름의 수입차 정비 서비스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자회사 코오롱이앤씨를 통해 건축물 내 전기차 충전 자동화 시스템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코오롱이앤씨는 작년 10월 기계식 주차시스템 전문회사 신우유비코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충전과 자동 이동이 가능한 전기차용 주차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코오롱글로벌뿐만이 아니다. 코오롱그룹을 떠나 벤처투자가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한 이웅렬 명예회장도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 ‘파파모빌리티’를 투자처로 점 찍었다. 파파모빌리티는 어린이·노약자 등 교통약자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 공유 플랫폼 ‘파파’를 운영한다. 실시간 호출은 물론 프리미엄 차량 구독 서비스와 예약 서비스도 갖췄다. 지난해 12월에는 플랫폼 운송사업 면허를 정식으로 발급받으며 위험을 모두 해소했다.
파파모빌리티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웅열 명예회장이 용퇴 후 투자하거나 창업한 기업 중 유일하게 코오롱그룹이 지분을 인수한 기업이어서다. 코오롱그룹 지주사 ㈜코오롱은 지난 4월 이사회를 열어 파파모빌리티가 실시하는 6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고, 최근 파파모빌리티 지분 72.2%를 확보한 최대주주가 됐다. 파파모빌리티는 ㈜코오롱 자회사로 편입됐다. 코오롱이 그룹 차원에서 모빌리티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연구원들이 아라미드 섬유인 헤라크론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그룹이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산업의 성장성과 잠재력 때문만은 아니다. 수입차 판매와 자동차 소재 판매에서 실제로 성과가 나오고 있어서다. 코오롱글로벌의 지난해 수입차 판매 부문 매출액은 전년도보다 39.8% 이상 증가한 2조187억6500만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019년부터 꾸준히 매출이 늘어 2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도 고품질 전기차 타이어 등에 쓰이는 슈퍼섬유 ‘아라미드’의 판매 호조에 올 2분기 매출은 25.7%, 영업이익은 181.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036억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1000억원을 돌파했다. 국내 1위 아라마드 기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 6월 아라마드 생산능력을 지금의 두 배 수준인 연 1만5000t으로 증설한다는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경북 김천산업단지 코오롱플라스틱 공장. 사진=코오롱플라스틱
코오롱플라스틱(138490)도 핵심 사업인 모빌리티 소재 부문의 덕을 봤다. 코오롱플라스틱은 현재 엔지니어링플라스틱(EP) 생산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데,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종류에 따라 전기차의 모터기어류·배터리 팩·고전압 커넥터 등에 사용된다. 특히 전기모터기어 소재인 폴리아세탈(POM)의 경우 코오롱플라스틱이 생산 기준 세계 3위를 기록 중이다. 이를 통해 올 2분기 매출은 전년도보다 88% 늘어난 1001억원을 달성했는데, 분기 매출이 1000억원을 넘은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350% 증가한 83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이었다.
코오롱글로텍의 친환경 소재 지오닉을 적용한 자동차 인테리어. 사진=코오롱글로텍
코오롱글로텍은 차량의 내장 부품별로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 ‘지오닉(GEONIC)’을 개발해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지오닉은 영국 자동차 기업 랜드로버(Landrover)의 ‘디펜더(Defender)’ 차량 시트에 적용되기도 했고. 현재는
기아(000270)의 전기차 EV6에 사용되고 있다. 코오롱글로텍은 앞으로도 글로벌 자동차 소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기업 분석 업계 관계자는 “코오롱그룹의 경우 수소 사업과 함께 실제로 성과를 내는 모빌리티 사업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규호 부회장이 자동차 부문을 맡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웅열 명예회장의 장남 이규호 부사장은 지난해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코오롱글로벌로 이동, 자동차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에 대한 합병이 이뤄진 것도 이 부사장이 코오롱글로벌에 자리한 이후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지난 2018년 11월 퇴진 당시 “아버지로서 재산은 물려주겠지만,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식을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라고 공언했다. 따라서 이규호 부회장이 원만하게 승계를 받기 위해서는 계열사들을 묶어 수소 가치 사슬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현대 담당하는 모빌리티 부문에 대한 강화와 그룹사 간 연계도 이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