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두산(000150)과
두산중공업(034020),
두산퓨얼셀(336260) 등 두산 그룹사들이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자문사의 반대에 부딪혔다. 다가오는 주주총회에서 이들 회사가 선임할 예정인 감사위원들이 감사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두산그룹이 지난해 ESG 위원회를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논란이 생기면서, 일각에서는 ‘이미 세계적 기조가 된 친환경만 따지는 ESG’라는 지적도 나온다.
3월29일 개최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두산이 상정할 안건에 대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권고 내용. 자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25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의결권 자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두산의 사외이사·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두산은 오는 2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 허경욱·윤웅걸 후보를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CGCG가 해당 안건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CGCG가 두산의 사외이사·감사위원 후보 선임 안건에 반대를 표한 이유는 ‘독립성 훼손’이다. 두산 측이 선임 예정인 허경욱·윤웅걸 후보 중 허경욱 후보는 회사의 지분 4.26%를 보유한 지배주주였던 박용만 회장의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경영학과 1년 후배다. CGCG 측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학연 관계가 있는 후보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서 독립성이 부족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라고 설명했다. CGCG는 이어서 “두산이 두 후보를 선임하는 안건을 따로 상정하지 않고 하나의 안건으로 묶어서 상정했기 때문에, 독립성 문제가 있는 허 후보가 포함된 해당 안건에 반대를 권고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용만 회장이 이날 본인을 포함한 두 자녀가 가진 두산의 주식을 전량 매각한다고 밝히면서 허경욱 후보의 독립성 훼손 우려는 줄어든 상태다. 문제는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퓨얼셀도 독립성 훼손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사외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3월29일 개최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두산중공업이 상정할 안건에 대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권고 내용. 자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두산중공업의 경우 이달 29일 개최되는 주주총회에 이준호 후보를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리기로 했다. CGCG 측은 이에 대해 “이준호 후보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재직 중인데,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최근 3년간 회사나 연결모자관계에 있는 회사 등과 자문 계약 등 거래관계가 있어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본다”라며 반대를 권고했다. 실제로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지난해 7월 두산인프라코어 투자부문을 두산중공업에 합병하는 1조원대 인수합병을 자문했다. 지난 2018년에는 두산엔진 투자사업부문을 두산중공업에 합병하고, 두산중공업 소유 두산엔진 존속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건에 대한 자문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은 과거 두산그룹 지배주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 당시에도 법률대리를 맡았었다.
CGCG는 두산퓨얼셀이 선임 예정인 사외이사·감사위원 후보에 대해서도 독립성 훼손 우려를 지적했다. CGCG 측은 “두산퓨얼셀이 재선임하기로 한 사외이사·감사위원 후보 중에는 고창현 변호사가 있는데, 고 변호사가 재직 중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최근 3년간 두산퓨얼셀의 법률 자문 거래를 맺고 있어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감사 독립성 훼손 우려는 지난해 두산그룹이 ㈜두산과 두산중공업을 중심으로 ESG 활동 강화를 선언한 후 새해 첫 주주총회 안건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두산은 2013년부터 CSR(사회적책임)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이후 지난해 ESG위원회로 명칭을 바꾸면서 ESG 위원장인 곽상철 사장은 “ESG위원회를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구축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성과 지표도 관리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두산의 지배구조 부문 ESG 등급은 ‘B+’에 그치고 있다. 두산중공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초 ESG 조직을 개편하고 사업 담당인 정연인 사장 ESG위원장을 맡았지만, 지배구조 부문 ESG 등급은 B+로 A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환경 부문 ESG등급은 ㈜두산이 A, 두산중공업이 A+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기업평가업계에서는 세계적인 기조로서 실적과 직결될 수 있는 환경 부문에는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과 거리가 먼 지배구조 부문에는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승연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환경 부문은 세계적 기조인데다 국가 정책과도 연결돼있고, 사업모델과의 연계도 쉬워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에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ESG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수소/전기차·신재생에너지 관련 신사업과 ESG 채권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친환경(E)에 대한 기업들의 집중도가 높아졌고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사회적 책임(S)에 대한 인식도 강해졌지만,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두산과 두산퓨얼셀이 의결권 자문사의 반대 권고를 받은 안건은 비단 이사·감사 선임 건만이 아니다. 공시에 따르면 두산은 제 2호 의안 정관변경 안건으로 임원퇴직금지급규정 제정의 근거를 마련하고, 제 3호 의안으로 임원퇴직금지급규정 제정안을 이번 주총에 상정하기로 했다. 임원퇴직금지급규정 제정안 중 제6조는 재임 중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임원이나 사망·질병으로 퇴직하는 임원에 대해 퇴직금 이외에 ‘특별공로금’과 ‘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두산과 두산퓨얼셀의 퇴직공로금·퇴직위로금 지급 기준. 자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CGCG가 지적한 것은 ‘특별공로금’의 지급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두산 측이 공시한 특별공로금 지급 기준 중에는 ‘회사 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어 대표이사의 승인을 통해 특별공로금 지급이 결정된 경우’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공로금 지급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아닌, 대표이사의 재량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CGCG 측의 분석이다. CGCG는 의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제정안 제4조의 <지급률 표>는 퇴직금 산정 시 지급률을 임원 등급에 따라 2.5~4배로 정하고 있어, 대표이사의 결정으로 특별공로금을 받게 되면 사실상 최대 6배의 지급률을 적용받는 효과가 있다”라며 “이에 따라 특정인에게 과도한 퇴직금이 지급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두산퓨얼셀 역시 ㈜두산과 같은 제 2호, 제 3호 의안을 상정할 예정이어서 CGCG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기업분석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관리체제를 벗어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상황에서 퇴직금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은 주주들의 걱정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라며 “더욱 구체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