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올해 재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이어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한 해를 보냈다. 경제 여건 변화에 기업들은 안정 속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신사업에서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며 미래 먹거리 찾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신사업 가운데는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주목받으며, 주요 기업들은 수소·전기 등을 활용한 사업 전환에 총력을 다했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 사진/삼성전자
대규모 투자로 사업 경쟁력 확보 움직임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11월 총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2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기간 현지 투자 계획을 공식화한 지 6개월만으로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전략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된 이후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총 240조원 규모로 투자를 확대하고 이 가운데 180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기로 밝혔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선단공정 조기 개발과 선제적인 투자로 반도체 사업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고 CDMO·바이오시밀러 강화 통해 제2 반도체 신화를 이루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쟁력 확보와 더불어 신사업분야에서도 투자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000660)도 지난해 10월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이후 8개 경쟁당국으로부터 사업부 인수 승인을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해 중국에서 승인이 늦어지면서 우려가 제기됐지만, 1년2개월 만인 지난 22일 중국의 반독점 심사 기구의 승인이 나면서 SK하이닉스는 본격적으로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도
LG전자(066570)는 지난 7월 스마트폰 사업 완전 철수를 선언하면서 자동차 전장(전기창치)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LG(003550)그룹은 이후 지난 7월 캐나다 마그나인터내셔널과 1조원 규모의 동력전달장치(파워트레인) 합작사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은 LG전자 전장사업 가운데 전기차에 들어가는 모터, 인버터 등의 사업을 담당하며 이를 통한 전장사업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4족 보행로봇 스팟. 사진/뉴시스
로봇 분야 신사업 진출 행보 줄이어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차(005380)) 등 대기업이 차세대 주력 사업 중 하나로 로봇 산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로봇 관련 기업들이 일제히 증시에서 상승세를 보이는 등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이뤄진 조직 개편에서 기존 ‘로봇사업화 태스크포스(TF)’를 ‘로봇사업팀’으로 격상하며 주목받았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상설 조직화에 나선 것을 두고 본격적인 로봇 시장 진출이 임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내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 2022’에서 로보틱스(Robotics) 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CES 2020에서도 현대차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상용화 계획 등을 밝히며 신사업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현대차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에 대한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이후 사내 로보틱스랩을 통해 자체 로봇 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등 로보틱스 사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LG전자도 로봇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지난 2017년 SG로보틱스, 2018년 로보스타 등 로봇 기업들을 연달아 인수한 이후 웨어러블 로봇 분야 스타트업 에스지로보틱스, 로봇개발업체 보사노바 로보틱스 등에도 투자했다. 올해는 자율주행 로봇 ‘LG 클로이 서브봇’을 정식 출시하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시장은 2017년 245억달러 규모에서 2020년 444억달러로 연평균 22% 성장하고, 2020년부터 2025년까지는 연평균 32%씩 성장해 1772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2021수소모빌리티+쇼' 개막에 앞서 열린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주요기업 총수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SG 경영의 탄소중립 시행 물결
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친환경 정책이 강화되면서 탄소중립 기조를 내세운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산업계에서는 ESG경영과 연계한 수소경제 활성화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수소기업협의체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을 출범하는 등 오는 2030년까지 수소생태계 조성에 50조원 가량을 투자하기로 했다. 협의체 회원사로는 현대차,
SK(034730),
포스코(005490), 롯데,
한화(000880),
GS(078930),
현대중공업(329180),
두산(000150),
효성(004800),
코오롱(002020), 이수, 일진,
E1(017940),
고려아연(010130),
삼성물산(028260) 등 15곳이 참여하고 있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공급, 수요, 인프라 영역의 다양한 기업들 간의 협력을 촉진하고 가치사슬 전후방의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줄여 나가는 데 집중한다. 여기에 해외 수소 기술 및 파트너 공동 발굴수소 관련 정책 제안에 나서고, 글로벌 수소 아젠다 주도 등을 통해 수소경제 확산과 수소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들은 매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투자금융사 등을 대상으로 정기 인베스터 데이를 개최해 국내외 투자자들을 초청, 수소 관련 투자 활성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특히 탄소중립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부각되면서 기업들은 미래 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개별 방안도 각기 마련해 나가고 있다. 당장 사업장 내 탄소저감 시설 확충은 물론 사내 ESG 위원회 등을 새로 만들어 규제 및 수출 등 통상 리스크 해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장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반도체 생산공정의 불소화가스 감축설비를 운영하고 제조 공정 에너지 효율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K그룹은 SK E&S와 SK(주)를 주축으로 2025년까지 수소 밸류체인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해 세계 1위 수소 사업자가 되겠다는 목표다.
한화그룹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 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한다.
한화솔루션(009830) 수소기술연구센터는 기존 수전해 기술의 단점을 보완한 차세대 ‘음이온 교환막 수전해 기술(AEMEC)’을 개발 중이다. 포스코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3단계 계획을 선언한 바 있다. 오는 2030년 20%, 2040년 50%의 탄소감축 경로를 설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 재계 인사가 참여한 모습. 사진/뉴시스
재계에 불어온 임원 세대교체 바람
재계에서는 올해 연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중용하는 등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단순히 나이만 어려지는 세대교체가 아닌 젊은 인재들을 통한 경영 변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주요 경영진 물갈이와 조직 쇄신을 통해 조직 문화 혁신과 디지털 전환 등에도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먼저 삼성전자는 지난 9일 2022년 정기임원 인사에서 30~40대 신진 임원을 다수 중용하며 세대교체를 꾀했고,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능력과 성과 위주의 미래지향 인사제도를 발표하며 이재용 부회장이 추구하는 ‘뉴삼성’의 초석을 다졌다. 삼성은 이번 연말 인사에서 30대 상무 4명·40대 부사장 8명 등 젊은 리더를 대거 승진시켰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정몽구 명예회장의 가신인 윤여철 그룹 부회장과 이원희 현대차 품질 담당 사장 등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200여명이 퇴진하고, 40대 부사장 등 203명의 젊은피가 대거 수혈되는 경영진 교체를 단행했다.
SK그룹도 연공서열 파괴를 통한 세대교체를 꾀했다. 이를 통해 1975년생인 SK하이닉스 노종원 부사장이 사업총괄 사장에 올랐고, 최연소 신규 임원이 된 SK하이닉스의 1982년생 이재서 담당(부사장)은 30대 임원이 됐다. SK그룹은 2년 전부터 상무·전무·부사장 직급의 호칭을 ‘부사장’으로 통일하고 있다.
LG그룹은 전년 177명과 비슷한 180명(사장단 4명, 부사장 이하 176명)의 인사가 발표됐는데, 신규임원 숫자가 전년 118명에 비해 14명 증가한 132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LG는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젊은 인재와 여성 인재를 지속 발탁해 혁신과 변화를 주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경제를 제약하는 가장 큰 문제점 설문조사 결과.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각종 규제 정책에 커지는 우려감
올해 정부의 2021년 규제정비 종합 계획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 ▲규제 자유특구 지정 ▲네거티브 전환 ▲현장 규제 혁신을 규제 개혁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기업 옥죄기법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추가 규제입법의 자제와 함께 보완입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구체적인 시행 사항을 담은 시행령 제정안이 국무회의까지 통과되면서 내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법인의 경우 5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 법이 경영책임자 판단이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 문제는 형사적 접근보다 경제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은 고의성이 명확한 형사사건과 달리 구속 등 형사처벌보다 과징금 등 행정 제재로 다루거나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제도 등이 기업 경영에 있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인 이상 국내 기업 가운데 40%가 근로자 임금과 관련해 내년에도 높은 임금 인상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응답기업의 39.1%는 우리 경제를 제약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기업 활력을 저하시키는 각종 규제적 정책’을 지적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