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최근
현대중공업(329180) 근로자들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시켜 달라는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9년간 벌여 온 법정 다툼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제기될 다른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재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23일 제조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오자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순히 현대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반으로 상여금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경우 기업들의 경영실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같은 쟁점으로 열린
현대미포조선(010620)의 868억원 규모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에도 대법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봤다. 이에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현대제철, 기업은행 등도 이와 비슷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예측돼 향후 대응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6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근로자 A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 등을 고정적으로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왔다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근로자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당장 이번 판결로 적자를 보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충당부채를 더 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3분기 기준 31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파기환송심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약 6000억원의 부채를 더 떠안게 돼 재무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신용평가는 계열 분리된 현대중공업의 계열사 별 근로자 수를 단순 비교 시 현대중공업이 약 75% 수준의 재무부담을 감당하고,
현대건설기계(267270)과
현대일렉트릭(267260)앤에너지시스템은 각각 10% 내외를 부담할 것으로 봤다. 이를 고려하면 약 6000억~7000억원의 부담 중 현대중공업은 5000억원 내외의 충당부채를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충당부채의 경우 사전에 거래 상대방과의 계약을 통해 미지급금 등을 설정해 놓는 경우도 있지만, 소송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 법원의 판단에 따라 기업들이 임의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현대중공업이 올해 3분기에 쌓아둔 충당부채는 7981억원으로 대부분 공사손실이나 하자보수, 판매보증에 의한 것으로 5000억원의 차입금을 신규로 마련한다고 하면 내년에도 흑자전환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충당부채. 사진/전자공시시스템
충당금 상승은 기업의 실적 악화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앞서
금호타이어(073240)는 지난 9월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해 올해 3분기에 220억원의 충당금을 반영하면서 42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타이어업체 3사 가운데 나홀로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금호타이어가 통상임금 소송을 비롯해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등으로 1587억원을 소송충당부채로 잡았는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 3000여명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약 2133억원의 채무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직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으로 법원에 계류중인 기업 가운데
현대제철(004020)은 지난 2018년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한 현대제철은 판결 직후 판결금 일부를 지급하면서 같은 해 3분기 영업이익을 기존 3761억원에서 2740억원 감소한 1021억 원으로 정정했다. 현재는 당진공장과 인천·포항공장 등에서 2건의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중인데, 관련 금액만 약 1500억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기업은행(024110)도 지난 2014년 직원 1만여 명이 제기한 통상임금 청구소송으로 약 776억원을 가산해 놨다. 3분기에 소송과 관련한 충당부채로 44억원을 책정해 놓은 만큼 최종 패소하게 되면 실적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현대제철, 현대로템, 한국GM,
기아(000270)자동차, SK에너지 등 약 150개 회사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현재는 대부분 소송이 끝났거나 합의를 통해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기아자동차는 지난 2011년 근로자 2만7000여명이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이 기준으로 재산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 미지급분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청구 금액은 원금만 6588억원에 이자를 포함하면 1조원이 넘는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 총 4223억원의 미지급 임금을 회사 측이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기아차와 노조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적용과 미지급금 지급 방안을 합의해 근로자 1인당 평균 1900만원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소송 근로자인 2만7000명 가운데 약 80%가 합의에 따라 소송을 취하했고 이에 반대한 노조원 약 3000명만 소송을 이어갔다.
만도(204320)는 2012년부터 7년 동안 법적 분쟁을 이어가면서 1심에서 승리했지만, 2심에서 패하며 2019년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통상임금 소송을 끝마쳤다. 당시 만도는 통상임금과 관련 노사 합의에 따라 합의금 998억7000억원을 지급했다.
삼성중공업(010140)도 같은 시기인 2012년에 근로자 4000여 명이 통상임금 재산성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를 제기했지만, 최종적으로 노사가 합의를 하면서 약 400억원 수준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면서 마무리됐다.
재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몇 년 전만 해도 성과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은 기업이 많아 관련 소송이 많이 걸린 적이 있는데, 당시에 법원이 신의칙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수의 기업들이 근로자들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합의를 이뤘다”면서 “소송비용이나 시간 등을 고려할 때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합의를 이루는 기업이 많았고,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 기업의 경우 그 규모나 회사 사정에 따라 진행하는 경우가 다소 남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