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손강훈 기자]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이 3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내세웠던 신약 ‘EC-18(모세디피모드)’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해 수익성이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흑자전환의 핵심이 될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을 위한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다만 최대주주의 유상증자 청약률이 10%에 대에 그칠 것으로 전해지면서 지배력 약화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엔지켐생명과학은 기명식 보통주 530만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진행 중이다. 신주발생 규모가 보통주 발행주식총수 833만1345주의 63.6%에 달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로 예상모집가액 5만9700원을 기준으로 총 3164억원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집된 자금 대부분은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을 위한 원·부자재 확보와 라이선스, 생산시설 신축 비용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인도 제약사 ‘자이더스 캐딜라(Zydus Cadila)’ 코로나19 백신 ‘자이코브-디(ZyCoV-D)’의 글로벌 생산 공급 의향서를 체결했으며 라이선스와 위탁생산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자이더스 캐딜라가 개발한 자이코브-디는 인도의약품관리국(DCGI)이 지난 8월 긴급사용승인(EUA)한 세계 최초 pD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으로 접종비용이 저렴하고 2~8℃ 조건에서도 보관이 가능해 mRNA 백신보다 유통이 쉽고 12세 이상부터 접종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연간 1억5000만도즈 이상 생산이 예상되며 엔지켐생명과학은 계약이 잘 마무리될 경우 2022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증설이 완료되는 2024년에는 매출 2조원 이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은 엔지켐생명과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신 위탁생산은 주요 파이프라인인 EC-18이 기대만큼 성과를 빠르게 내지 못하면서 지속되고 있는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3년 동안 엔지켐생명과학은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신약물질 EC-18의 작용기전을 활용한 구강점막염, 급성방사선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 호중구감소증 등에 대한 임상시험 관련 연구개발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은 2018년 -143억원, 2019년 -164억원, 2020년 -191억원이고 당기순이익은 2018년 -143억원, 2019년 -167억원, 2020년 -192억원이었다. 올해 상반기 역시 영업이익은 -104억원, 당기순이익 -136억원으로 적자였다. 적자가 지속되고 있지만 기술특례를 통해 코스닥시장에 진출한 만큼 장기영업손실(영업손실 4사업연도 연속)로 인한 관리종목 지정 요건은 적용받지 않는다.
핵심 파이프라인인 EC-18 성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2018년 기업공개(IPO) 당시 엔지켐생명과학은 EC-18의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2019년 매출 690억원과 영업이익 흑자전환을 제시했으나 실제 2019년 매출은 315억원에 그쳤고 1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더구나 국내에서 진행한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폐렴에서 중증폐렴 또는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의 이행을 예방하는 EC-18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임상2상 시험 결과, 통계적 유의성이 발견되지 못하는 등 기술이전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한 걸로 예상된다.
빠른 흑자전환을 위해서는 코로나19 백신 위탁사업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롯데의 지분투자도 사실상 무산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위탁사업을 위한 운영·시설비를 확보하는 이번 유상증자의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최대주주의 지분희석이다. 현재 엔지켐생명과학의 최대주주는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로 11.5%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2대 주주는 6.9%의 지분을 보유한 손기영 대표이사다.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의 최대주주가 손기영 대표이사(38.57%)로 사실상 손기영 대표이사가 경영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으며 특수관계인 지분(0.2%)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율은 18.7%다.
최대주주 브릿지라이프사이언스와 2대주주 손기영 대표이사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배정물량의 10% 정도를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하는 지분(최대주주와 2대주주 외 특수관계인 유상증자 미참여 가정) 12.1%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통상적으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 기준 지분율 15%를 밑돌게 된다.
또한 오는 11월부터 전환권 행사가 가능한 500억원 규모의 미상환 전환사채가 남아있으며 내년 3월 전환이 가능한 30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도 존재한다. 유상증자 후 이와 같은 잠재주식이 모두 행사된다면 지분율은 11.3%까지 하락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엔지켐생명과학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이외에 나머지 주식들은 소액주주에게 분산돼 있어 이번 유상증자가 경영권 위험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실제 5% 이상 주주는 브리짓라이프사이언스와 손기영 대표이사뿐이며 전체 주주에서 소액주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99.7%에 달했다.
엔지켐생명과학 관계자는 <IB토마토>에 “pDNA 백신 CMO사업과 주요 파이프라인 (구강점막염, 급성방사선증후군, 비알콜성지방간염 등)의 개발에서 탁월한 경영성과 창출을 통해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손강훈 기자 river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