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최근 국내 완성차 업계가 르노삼성자동차를 마지막으로 무분규로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생산 차질이란 위기를 피하게 됐다. 이 가운데 기아자동차(
기아(000270))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분파업을 통해 임단협을 유리하게 이끌어 갔지만, 올해는 파업 없이 협상을 진행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17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자동차 노사는 지난 9일 2020년·2021년 임금협상을 최종 합의하면서 1년 2개월 만에 2년치 임단협을 마무리하게 됐다. 이로써 한국GM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현대차(005380))는 3년 연속, 매각을 진행 중인 쌍용자동차(
쌍용차(003620))는 12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이 가운데 기아차는 지난달 30일 10년 만에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끝내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4주간 부분 파업을 벌이는 등 임단협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지만, 올해는 노사가 한발씩 물러나면서 합의안을 빠르게 도출해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아차 전경. 사진/뉴시스
앞서 기아차 노조는 기본급 9만90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을 비롯해 성과급은 전년도 영업이익의 30%, 정년연장(최장 만 65세), 노동시간 주 35시간으로 단축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기아차 노사는 지난달 24일 13차 본교섭에서 임단협 잠정합의안인 기본급 7만5000원 인상(정기호봉 승급분 포함), 성과급 200%+350만원, 특별격려금 23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10만원, 주식 13주 지급 등으로 합의를 보게 됐다.
국내 5대 완성차 업체가 전부 무파업을 통한 임단협을 진행한 배경으로는 생산환경 변화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함께 반도체 부품 공급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 등 위기 상황이 이어지면서 노사는 신규 물량 확대와 생산 정상화가 가장 우선시 됐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 내에서 MZ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사무·연구직 노조가 생긴 이후 기존 생산직 중심의 대표 노조와 달리 성과급 등으로 차등을 두는 실리 위주의 노동환경을 만들겠다며 나선 점들이 합의안 도출에 작용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기존 생산직 노조들이 요구해왔던 정년 연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기아와 마찬가지로 현대차 노조도 올해 임단협 핵심 요구안에 정년 연장을 포함시켰지만, 최종 합의안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
실제 지난 6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노동자 정년 연장을 두고 한차례 갑론을박이 이어졌는데, 노조 측이 정년 연장을 요구하자 완성차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MZ세대 현장직이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정년 연장은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청년 실업을 야기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또 다른 직원도 “MZ세대의 미래 임금을 희생해 정년만을 고집하는 노조의 횡포를 막아달라”라고 언급했다.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노조 역시 정년 연장 대신 기본급 인상과 당기순이익 30% 성과급 지급을 강조하고 있다. 생산직의 정년 연장은 그만큼 청년 일자리 감소와 자신들이 받아야 할 성과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기아차 임단협 상견례 현장. 사진/뉴시스
기아차의 지난해 기준 기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전체 직원은 3만5424명으로 이들에게 지급한 연간 급여는 3조2337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인 59조1680억원이었던 만큼 급여로 지출한 금액은 5.46% 수준이다. 전년 대비로는 총 직원수 3만5675명에 3조813억원의 급여를 지급해 전체 매출(58조1459억원) 대비 5.29%로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특히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파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파업을 진행하게 되면 생산 차질로 연장 근무 등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에서 파업을 진행할 경우 업체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으로 인해 매출이 급감할 수 있다. 이에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급여 수준도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올해 임단협에는 코로나19 등으로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측이 부담을 안고서 협의를 진행한 부분도 있다”라면서도 “예전과 다르게 노조에서도 강경한 입장보다는 업계 상황을 보고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타협을 이어가는 면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일각에서는 노사 상생과 지역 경제 기여를 목표로 하는 광주 글로벌모터스(GGM)이 향후 좋은 상생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광주시·현대차·산업은행이 공동 출자한 GGM은 기존 생산직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무(無)노조 경영을 하고 있다.
GGM이 생산한 현대차 엔트리 SUV 모델 캐스퍼. 사진/현대차
물론 근로자들이 원하면 만들 수 있지만, 이제 막 공장을 가동한 만큼 누적 생산 35만대가 될 때까지 현재의 임금과 복지 수준을 유지하고 파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현재 538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GGM은 상생협의회를 통해 분기에 한 번씩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애로사항 등은 합의를 통해 개선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GGM은 호봉제가 아닌 시급제로 임금을 결정하면서 최소 주 44시간 일자리가 보장된다. 여기에 차량 생산 대수가 늘어나면 최대 52시간까지 연장 근무가 가능해 급여가 늘어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GGM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GGM은 20·30세대 근로자들이 많은데, 이전 근무지에 비해 환경이나 요구 조건 등이 잘 반영돼 근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안다”라며 “내년에는 7만대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서 추가인 채용도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