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카카오(035720)가 골목 상권 침해 논란 사업에서 철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상생안을 발표했다. 이번 상생안에는 소상공인 등 협력사에 대한 상생 기금을 마련하는 계획도 포함됐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플랫폼 규제를 피하기 위한 대책인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는 14일 △골목 상권 논란 사업 철수·혁신 사업 중심 재편 △5년간 파트너 지원 확대를 위한 기금 3000억원 조성 △케이큐브홀딩스 사회적 가치 창출 집중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카카오 측은 “주요 계열사 대표들과 13, 14일 이틀간의 회의를 통해 결정한 내용”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합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꽃, 간식 배달 등을 홍보하는 카카오T 어플리케이션 화면. 사진/카카오T 앱 캡쳐
우선 골목 상권 직접 침해 논란이 있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개 서비스를 접기로 했다. 해당 서비스를 제공해 온 기업에 영향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축소할 계획이다.
1인 시위 중인 차순선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이사장. 사진/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카카오T 택시 역시 “사회적 영향력을 통감하고, 택시 기사와 이용자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스마트호출 서비스를 전면 폐지하겠다”라고 밝혔다. 택시 기사 대상 프로멤버십 요금도 월 9만9000원에서 3만9000원으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가맹 택시 사업자와의 상생 협의회도 구성한다. 서울에서는 100여개 택시 운수사업자가 참여한 협의체가 이미 발족했으며, 지역별 ‘가맹 택시 상생 협의회(가칭)’를 구성해 전국 법인·개인 가맹 택시 사업자들과 가맹 사업 구조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상생안에는 대리운전 관련 내용도 담겼다. 대리운전 기사에 대한 기존 20%의 고정 수수료 대신, 수요·공급에 따라 0~20%의 범위로 할인 적용되는 ‘변동 수수료제’를 전국으로 확대 적용한다. 추후 대리운전사업자들과도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상생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소상공인 등 협력·제휴 기업에 대한 기금도 마련한다. 카카오 측은 카카오 공동체 차원에서 추진 중인 파트너 상생 기금 마련에 동참해, 앞으로 5년간 3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카카오 플랫폼에 참여하는 다양한 공급자·종사자들의 복지를 증진해 나가겠다는 포부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연내 세부 계획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이 같은 상생 방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정부의 규제와 압박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여당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금융당국 등이 일제히 플랫폼 규제에 나서자 한발 물러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조성욱 위원장이 직접 나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안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온라인 플랫폼 분야 단독행위 심사지침 제정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 특성을 반영한 인수합병(M&A) 심사기준 개정을 위한 검토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카카오 계열사 케이큐브홀딩스 관련 자료의 신고 누락과 관련해 카카오 창업자이자 동일인(총수)인 김범수 의장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 주식 10.59%를 보유해 카카오의 실질적 지주회사로 꼽히는 계열사로, 김 의장이 지분 전부를 갖고 있다. 공정위는 조사를 마치고 이르면 연내 전원회의에 안건을 상정해 제재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여당도 10월 국정감사에서 플랫폼의 불공정 관행 등을 지적하겠다며 공정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카카오는 이번 상생안을 통해 케이큐브홀딩스를 금융·투자회사가 아닌 미래 교육·인재 양성과 같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간접적으로 공정위에 선처를 호소했다.
카카오페이도 금융소비자보험법상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에 따라 일부 보험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증권신고서 주요 내용 정정이 불가피해져, 상장 연기와 공모가 하락 가능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이날 “최근의 지적은 사회가 울리는 강력한 경종”이라며 “카카오와 모든 계열 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추구해왔던 성장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장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은 “카카오의 공격적 인수합병과 독점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칼을 빼 든 것”이라며 “카카오 측이 버티지 않고 빠르게 상생안을 내놓으며 물러선 것은 생존을 위한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