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한국조선해양(009540)이 후반가격 인상 탓에 경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조선해양은 후판(두께 6㎜ 이상의 철판)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로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향후 선박 건조 비용 증가에 따른 기대도 나오지만 당장 후판 가격이 쉽게 떨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여 대응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조선해양이 건조한 초대형 LPG선.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후판 가격협상을 놓고
포스코(005490) 등 철강업체와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포스코는 후판 공급가격을 톤(t) 당 115만원으로 정하고 조선업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후판 가격은 20%가량 인상돼 80만원대에 거래됐던 점을 감안하면 약 40%가 오르게 되는 것이다.
조선사와 철강사는 상반기와 하반기 2차례 후판 가격을 조정하는데, 후판은 선박 건조 시 필수요소로 선박 건조 비용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어 가격협상이 중요한 실적 개선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897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다만 선박 건조 물량 증가로 매출액은 3조7973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했다.
이는 철강재 가격 인상 추세로 조선부문에서 896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회계 장부에 반영하면서 실적 부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공사손실충당금이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미리 잡아놓은 것을 말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21일 열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강재가 급등 전망에 따라 예측 가능한 손실액을 보수적으로 반영하면서 일시적으로 적자 규모가 커졌다”라며 “하반기에도 후판 예상가격은 최소 100만원을 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공사손실충당금을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수출규제로 철강재 가격 지속 상승세
하반기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한국조선해양의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후판 수입 물량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철강사들은 그간 저렴하게 공급해오던 가격을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서다.
후판 생산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적자를 보면서 후판을 생산해 공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판을 저렴하게 공급해오던 중국산과 일본산의 수출이 줄면서 국내산 후판 가격을 놓고 조선업계가 가격협상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철광석 가격은 지난 5월14일 톤당 226.46달러로 사상 처음 톤당 200달러를 넘어선 뒤 소폭 하향세를 타고 있지만, 200달러 안팎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후판 가격 동향. 출처/해외경제연구소
원재료 가격이 인상됨에 따라 각국의 후판 가격도 일제히 오르고 있다. 중국산 후판 현물가 기준 6월 말 가격은 톤당 126만원으로 전년 말 대비 82.6% 상승했다. 일본산 조선용 후판의 수출 가격 역시 빠르게 상승하며 6월 말 가격이 톤당 950달러(약 109만원)로 전년 말 대비 72.7% 상승한 상황이다.
특히 그간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던 중국산 철강제품이 가격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은 자국산 철강 수출 시 증치세(부가가치세) 13%에 대한 환급제도를 모든 철강제품에 대해 5월1일부터 전면 폐지하고,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관세를 5%포인트 인상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말 온실가스저감 등 환경개선을 위해 전반적인 철강재 생산규제를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중국이 표면적으로는 환경 오염을 이유로 수출을 규제해 글로벌 공급을 줄이면서 철강재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세계 철강재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중국이 모든 제품에 대해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세계 각국의 공급 부족이 발생해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이후 2분기 말 가격은 한국 내 가격이 중국 내 가격보다 34.8%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는 미국, 호주 등과의 외교적 마찰에 의해 철광석 확보가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한 자원 확보의 목적이 강한 것으로 추측되는 이유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수출규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세계뿐 아니라 중국 내 조강생산량은 감소하지 않았다”라며 “만약 중국의 규제 정책이 국제 정치적 전략에 기반한 것이라면 강재 부족 사태는 단기에 해소되기 어려우며 장기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양 연구원은 “상반기 철강재 가격 상승분만으로도 선박건조에 있어서 20% 내외의 원가상승 요인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돼 조선업계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국내 철강업계가 공급량을 늘리도록 적극적 협력을 구하는 등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한국조선해양 실적
상승하고 있는 철강재 가격에도 선가에 반영 안돼
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1조5614억원 규모의 초대형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7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하면서 총 178척(해양 2기 포함) 168억 달러(약 19조원)를 수주했다. 연간 목표(149억 달러)의 113%를 기록해 목표치를 넘어섰다.
이처럼 수주 실적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문제는 기존에 선주 물량들이 현재의 후판 가격이 아닌 2019~2020년 기준으로 책정돼 있어 저가수주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조선시장은 지난 2018년 잠깐 좋아졌다가 다시 하락세를 이어왔는데, 최근 LNG선과 같은 친환경 선박의 수주가 늘어나면서 시황이 좋아지는 추세”라며 “수주 잔량이 채워져야 선주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는 만큼 당장 가격적인 부담이 있더라도 지금은 수주 잔고를 채우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7월16일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41.16포인트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조선가지수는 전 세계 선박 건조 가격 평균을 100으로 놓고 이를 지수화한 것으로 높을수록 선가가 많이 올랐다는 의미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후판 가격 인상분을 보수적으로 잡고 선제적으로 공사손실충당금을 반영했던 만큼 하반기에 후판 가격이 정상화되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며 “원자재 상승으로 인해 실제 선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추세도 긍정적 요인이다”라고 전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