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백아란 기자]
DB(012030)그룹이 계열사로부터 받는 브랜드 이름값이 1년 전보다 6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상표 사용료 산정산식 등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뚜렷한 개선책은 내놓지 않은 채 본래 부담해야 할 금액보다 더 많은 대가를 편취했다는 논란만 일고 있다. 더욱이 성추행 사건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던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자숙의 시간조차 없이 연초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관리와 가치 제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1일 금융감독원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에 따르면 DB그룹(DB inc)은 지난해 상표권 사용료로 320억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202억원)대비 58.1% 늘어난 규모로, DB아이엔씨의 작년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55억원)에 견줘 4배가량 많은 수준이다.
상표권은 특정 기업집단을 식별하기 위해 문자나 기호·도형으로 이뤄진 브랜드(상표법상 상표)로, 브랜드 보유회사는 상표권 사용권을 계열회사에 부여, 거래한다. 통상 브랜드 보유회사는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지주사가 보유하고 다른 계열사로부터 사용료를 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오너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지난 1977년 3월 설립된 DB그룹(구 동부)의 경우 실질적 지주회사인 DB아이엔씨를 비롯해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DB손해보험 등 21개 국내 계열회사와 8개의 해외 계열회사를 보유, 상표권 거래를 하고 있다. 현재 DB아이엔씨와 DB손보의 최대주주는 김남호 회장으로, 올해 1분기 기준 각각 16.83%, 9.01%의 지분을 갖고 있다. 특히 IT·무역사업과 그룹 브랜드와 광고활동을 총괄하는 DB아이엔씨의 경우 김 회장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인 등을 포함한 지분율이 43.8%에 달한다. 오너일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금융 계열사별 수취액을 살펴보면
DB손해보험(005830)으로부터 수취하는 금액이 250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DB생명보험(32억원),
DB금융투자(016610)(22억원), DB자산운용(3600만원), DB캐피탈(3000만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DB금융투자로부터 받은 브랜드 사용료는 1년 전보다 169.3% 급증하기도 했다. 지난해 금융계열사들이 호실적을 기록한 데다 상표권에 부여하는 사용요율도 오른 탓이다.
앞서 DB그룹은 지난 2017년 사명을 ‘동부’에서 ‘DB’로 변경하면서 DB손보, DB생명, DB하이텍 등 계열사 상표권을 지주사인 DB아이엔씨 앞으로 출원했다. 현재 DB아이엔씨는 ‘DB상표’를 사용하는 계열사와 올해 말까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브랜드 사용수익을 인식하고 있다. 수취액은 매출액 또는 영업수익에서 광고 선전비를 제외한 후 사용요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얻는다. 사용요율은 기존 0.10%에서 지난해 0.15%로 올랐다.
DB손보 관계자는 “영업수익에서 광고 선전비를 제외한 값의 0.15%를 상표권 사용료로 받는다”면서 “지난해의 경우 매출액이 증가하는 등 실적 개선에 따라 (상표권 지급) 금액이 올라갔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DB손보의 별도 기준 매출액은 17조2656억원으로 1년 전보다 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손해보험 업계 1위인 삼성화재해상보험의 영업수익은 23조6859억원으로 4.6% 증가했으며 현대해상은 5.22% 뛰었다.
이 관계자는 “(사용료율은 기존 0.1%에서) 0.15%로 올랐지만, 여타 그룹 브랜드 사용료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사진/DB
그러나 동종업계(Peer)그룹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손보에 대한 의존도(78%)나 전체 수취액 증가폭은 높은 편이다. 또 지난해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상 감독 대상인 금융자산 5조원 이상 복합금융그룹 가운데 브랜드 사용료율이 오른 곳도 DB가 유일하다.
실제
현대차(005380)의 경우
현대차증권(001500) 등 계열사 전체매출액에서 특수 관계자 간 매출액과 개별광고 선전비를 제외한 후 0.14~0.2%의 사용료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총 수취액은 437억1400만원으로 1년 전(448억3100만원) 대비 2.5% 감소했으며,
현대해상(001450)화재보험의 경우 상표권을 소유하지 않고 있는 데다 그 외의 CI 등에 관해서는 계열사 매출의 대부분이 보험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특성을 감안해 별도 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다.
삼성의 경우
삼성증권(016360) 등 계열사 매출액에 0.5%와 상표공동소유권 회사 간 분배기준율을 곱해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있지만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000810)가 가져가는 수취액은 11억6800만원으로 전체 수취액(148억9900만원)의 7.8%로 나왔다.
키움증권(039490)은 0.1%의 사용료율을 부과하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사용료 산정방식을 기존 직전연도 영업수익에서 내부거래를 제외한 후 0.2%를 곱했던 것에서 직전연도 영업수익에 0.13%를 곱하는 것으로 바꿨다. 브랜드 사용료 총 수취액은 11억900만원에서 9억3200만원으로 감소했다.
이밖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브랜드사용료율은 최소 0.011%에서 0.496%를, 롯데는 0.15%를 적용 중이다. 교보생명보험은
교보증권(030610), 교보악사자산운용 등 계열사에 브랜드 사용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브랜드 사용료를 과다 지급할 경우 계열사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주주들의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출비율 적정성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DB손해보험에 대해 상표사용료 산정산식 등이 불합리하다면서 경영유의 및 개선조치를 내린 바 있다. 그룹상표 변경에 따라 2017년 상호를 변경하고 상표 사용료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외부평가를 통해 산정산식을 정했지만,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월 DB손해보험의 사업기회유용과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제공을 의심하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으며,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지난 주주총회에서 김정남 DB손해보험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반대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DB손해가 상표권 출현을 하지 않아 DB아이엔씨에 사용료를 지급하는 등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지난해 7월 오너 2세 경영을 시작한 김남호 DB신임 회장은 취임 당시 기존 관행과 일하는 방식에서 탈피하는 등 “DB를 어떠한 환경 변화도 헤쳐 나가는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라는 포부를 밝혔지만, 앞선 요구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은 상태다.
아울러 지난 3월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났던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DB아이엔씨 미등기 임원에 선임되면서 논란도 불거졌다. DB아이엔씨가 맡고 있는 브랜드사업부문은 'DB' 브랜드와 관련해 국내외 상표권과 지적재산권을 소유하면서 체계적인 상표권 관리 및 개발을 통해 브랜드 가치 증진 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그룹상표 사용계약기간 종료 이후 상표사용료를 재산정할 때에 그룹상표 가치 제고에 대한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그룹상표 가치 산정방법의 적정성을 검토해야 한다”라며 “사용료 산정산식에서 신상표 사용으로 인한 직접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없는 항목들을 제외하는 등 상표사용료 산정방식의 합리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계열사 한 관계자는 “계약기간이 올해 말까지로 돼 있다”면서 “하반기에는 산정산식 등을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