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로 세상보기
프랑스 대혁명과 회계
공개 2021-03-05 08:30:00
이 기사는 2021년 03월 02일 14:3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전규안 전문위원] 1789년 7월14일에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하면 떠오르는 것은 파리 시민군이 정치범 수용소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시작되어 국왕인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좀 더 추가하면 공포정치가 시작되고 나폴레옹이 출현하고, 결국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수립되어 오늘날의 프랑스가 된다는 정도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 이유로서는 흔히 불평등한 사회체제와 국가재정 파탄, 그리고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등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사상을 든다. 물론 프랑스 대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여러 원인이 있으며, 근본적인 원인과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원인이 존재한다. 미국 독립전쟁의 경우에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에 대한 미국인의 불만이었지만 촉발시킨 것은 영국이 미국에서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인도산 차에 관세를 부과하여 미국에서 찻값 상승으로 일어난 ‘보스톤 차 사건’(1773년)이다. 이와 유사하게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킨 원인은 분식회계다. 
 
베르사유 궁전 건축과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독립전쟁 지원으로 인해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루이 14세에 이어 루이 16세 때도 악화된 재정상황이 계속되었다. 이때 프랑스 재무총감으로 임명된 스위스 은행가 네케르(Necker)는 1781년 정부의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장부(“왕에게 드리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 장부에는 왕실의 사치와 낭비에 대한 내역뿐 아니라 손실을 이익으로 둔갑시킨 ‘특별 지출’ 항목이 포함되었다. 보고서에는 1,020만 리브르의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약 5,000만 리브르의 ‘특별 지출’을 누락한 결과였다. 이 ‘특별 지출’이 제대로 기록되었다면 약 3,980만 리브르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즉, 분식회계로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장부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네케르를 해임하게 되고 왕실의 사치와 낭비, 그리고 회계부정을 알게 된 분노한 군중들이 베르사유 궁전 앞으로 모여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게 되어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게 된다. 이처럼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투명하게 공개된 장부와 분식회계였다.
 
역사적으로 분식회계 사건은 많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3대 버블 사건을 나타내는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영국의 사우스시버블 사건은 모두 그 바탕에는 불투명한 회계가 자리잡고 있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 때도 밑바탕에는 불투명한 회계가 자리잡고 있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제이콥 솔 저, 정해영 옮김)에서도 “부실한 회계가 대공황을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공황을 악화시킨 것은 사실이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투명한 회계가 있었다면 상당 부분 방지하거나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 투명한 회계를 통해 외환위기 전에 우리나라 기업의 문제점이 사전에 알려졌더라면 미리 준비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외환위기의 쇼크도 크지 않았을 것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밑바탕에는 불투명한 회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00년대 초 미국의 엔론, 월드컴 등의 분식회계나 우리나라 대우그룹이나 대우조선해양(042660)의 분식회계는 회계 자체가 문제가 된 사건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수백 년 전에 일어났던 회계부정이 모양만 바꿀 뿐 다시 일어나고 있다. 회계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사실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아 혈압이 높게 나온다면 체중을 줄이고 운동을 하고, 음식을 가려 먹으면서 혈압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 높게 나온 혈압이 걱정된다고 억지로 혈압수치를 낮게 기록하고 아무 일도 안 한다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코로나19로 힘든 기업들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혹시 분식회계의 유혹에 넘어갈까 걱정된다. 이런 생각이 쓸데없는 기우이길 바란다.
 
 
제보하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