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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노태영 기자] 재계는 2020년에도 다사다난했다. 올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업의 규모와 업종에 상관없이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세대교체와 미래 먹거리에 대한 재계 곳곳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국내 경제를 이끄는 반도체는 다시 한번 호황을 기대하고 있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은 우여곡절 끝에 초대형 국적 항공사로 재편돼 반등을 노리고 있다. 이밖에 정부·여당과 가교 역할을 해온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교체 역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왼쪽),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출처/각 사
이건희·신격호 별세…저무는 재계 1·2세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재계 1·2세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0월25일 타계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6년 만이다. 이 회장은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27년간 삼성을 이끌었다. 1993년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현재 삼성전자의 두 기둥인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의 밑거름을 다졌다. 올해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재계의 거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일제시대인 1941년 홀로 일본으로 가서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1944년 선반용 기름 제조 공장을 설립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공장이 화재로 타버리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로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린 것을 기회로 삼았다.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롯데쇼핑(023530)·호남석유화학 등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일궜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의) 기업 이념은 품질 본위와 노사 협조로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출처/뉴시스
5대 그룹 미래 먹거리 동맹 가속
삼성과,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총수들은 세대교체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11월5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 최태원 SK(034730) 회장, 구광모 LG(003550) 회장이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이날 모임은 이들 중 가장 맏형인 최 회장이 주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6일에는 정 회장은 롯데케미칼(011170) 첨단소재 의왕사업장을 방문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만났다.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은 자동차 내·외장재로 사용되는 고부가합성수지(ABS)·폴리프로필렌(PP)·폴리카보네이트(PC) 등 고기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연구·개발(R&D)하고 있다. 자동차 신소재 개발 분야에서의 협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올해 국내 5대 그룹 총수 모두와 회동을 가졌다. 지난 5월 이 부회장과 회동했고 6월 구 회장, 7월 최 회장을 만났다. 삼성과 LG, SK 총수와의 만남에서는 미래차의 핵심 부분인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이 부회장은 7월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정의선 회장을 만났다. 정의선 회장의 5월 삼성SDI(006400) 천안 공장 방문에 대한 답방 차원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는 현대차 모빌리티 기술의 핵심이다.
출처/삼성전자
또 한번 슈퍼 사이클…반도체 업황 기대감
최근 삼성전자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를 제치고 글로벌 반도체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지난 24일 기준 524조3553억원으로 TSMC를 제치고 기업가치 세계 1위를 되찾았다. 삼성전자 시총이 TSMC보다 커진 건 지난 7월17일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삼성전자 주력 제품인 D램이 내년 1분기부터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3분기 기준 각각 41.3%, 33.1%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 중이다. 삼성전자의 내년 매출 컨센서스는 259조6954억원, 영업이익은 46조5607억원이다. 올해보다 매출은 9.2%, 영업이익은 26.2% 높은 수치다. 반도체 영업이익은 올해 추정치(약 20조원) 보다 50% 급증한 30조원이 예상된다.
산업은행이 '2020년 하반기 설비투자계획조사'에 따르면 내년 설비투자는 165조7000억원으로 올해 투자 집행액(잠정) 대비 1조3000억원(0.8%) 증가할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업 분야에선 반도체 업종이 업황 호조에 따라 올해보다 5.2% 늘어난 41조8000억원의 설비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산업은행은 "내년에도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겠으나 글로벌 경제 반등과 내수 회복 기대 등에 설비투자를 확대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설명했다
출처/대한항공
코로나19 직격탄 항공업…초대형 항공사 출범
코로나19는 무엇보다 항공업계에 큰 시련을 안겼다.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영업손실액은 대한항공(003490) 1174억원, 아시아나항공(020560)은 자회사 에어서울을 포함해 2552억원이다. 진에어·에어부산·티웨이항공 등 3개 저비용항공사(LCC)들의 누적 영업손실 총합은 3900억원 수준이다.
업계 1위 대한항공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매각 카드를 꺼냈다. 기내식·기판 사업부를 따로 떼내 '대한항공씨앤디'를 차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지분 80%를 넘겼다. 또한 한진그룹 차원에서 제주 연동 사택과 왕산레저개발, 제동레저, 칼 리무진 등을 잇따라 팔았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부지 매각은 서울시와의 갈등으로 지연되고 있다.
무엇보다 빅딜로 반전을 모색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섰다. 앞서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12월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저울질 해왔지만 결국 무산됐다. 한진그룹은 지난달 16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고 합병 절차를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은 연내 계약금 3000억원과 영구채 3000억원 등 6000억원을 아시아나에 투입하고 내년 1분기 중 중도금 4000억원을 납입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성사되면 여객, 화물 운송 규모에서 세계 7위권 항공사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대한상의
수장 교체 앞둔 경제 단체…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거론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수장이 2021년 초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대한상의 새 회장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박용만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다. 박 회장은 2013년 8월 손경식 회장의 후임으로 회장에 취임해 잔여 임기를 수행한 뒤 2015년 3월 만장일치로 제22대 회장에 추대됐다. 이후 2018년 3월 또다시 연임에 성공했다.
대한상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계를 대표해 온 만큼 회장 자리는 의미가 크다. 최 회장은 국내 3위 그룹을 이끄는 총수인 데다 5대그룹 총수 회동을 주재할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는 평가다. 모든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며 재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경련도 내년 2월 새 회장을 추대해야 한다. 전경련은 허창수 회장이 2011년부터 4연임을 통해 줄곧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차기 회장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거론된다. 현재 전경련 부회장단에는 김 회장을 비롯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등이 있다.
노태영 기자 no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