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 맏형으로 불리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사태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홈플러스를 인수할 원매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신규 펀드 결성까지 난항을 겪으면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모습이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올해 들어 약 70억달러 규모의 6호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목표로 글로벌 자금 모집에 나섰지만, 목표 금액에 미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클로징 과정에서 국내 주요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줄줄이 출자 철회한 탓이다.
(사진=홈플러스)
6호 펀드 목표액 미달…국내 LP들 대거 손절
당초 MBK는 6호 펀드에 대해 올해 1분기 3차 클로징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고려아연 사태가 터졌고, 올 상반기엔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신청으로 국내 출자자(LP)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2024년까지만 해도 MBK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내 LP들로부터 대규모 출자를 받으며 순항했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약 보름 전, MBK에 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출자하기로 결정했고, 공무원연금은 4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측은 최근 MBK에 대한 출자 철회와 관련한 내부 검토에 착수하면서 사실상 손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국민연금 역시 MBK가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으면 위탁운용사(GP)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연기금·공제회가 출자사업에서 GP를 선정했다가 철회한 사례는 찾아 보기 어렵다.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펀드 최소 결성 규모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유 등으로 출자 약정이 자동 취소된 경우는 있어도, MBK 경우처럼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취소된 적은 없었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MBK 6호 펀드는 북미나 노르웨이 연기금 등 해외 LP로부터 자금 모집을 통해 시일이 늦어져도 목표 금액을 달성할 것"이라면서도 "국내 LP들의 출자가 예상과는 달리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자금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라고 전했다.
(사진=MBK파트너스)
금감원, 5개월 만에 재조사…원매자 나타날 가능성 낮아
금융당국의 압박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에 이어 불과 5개월 만에 MBK의 서울 종로 사무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이찬진 금감원장이 직접 조사 재개에 힘을 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원장은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MBK를 GP로 선정하자 “국민연금이 기업을 인수·합병해 구조조정을 한 후 되파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MBK에 투자하는 것은 가입자인 국민에 대한 배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금감원은 이번 조사에서 홈플러스 회생절차와 관련해 MBK 대주주로서의 책임 이행 여부, 점포 매각·폐점 과정에서의 법적 적정성 등을 중점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MBK는 현재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할 것임을 알면서도, 이를 숨긴 채 6000억원 규모의 단기 채권을 발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금감원은 MBK가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상환전환우선주(RCPS) 처리와 관련한 불건전영업행위 등 인수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는 당초 9월 10일까지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채권단과의 협의 지연을 이유로 두 달 연장 승인을 받아 11월 10일까지 유예됐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기한 연장이 사실상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짙다.
가장 큰 난관은 원매자 부재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구조 불황, 부동산 자산 가치 하락, 고금리로 인한 차입 부담이 겹쳐 매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국내 유통 대기업은 이미 온라인 전환과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고, 해외 유통업체들도 한국 시장 재진출에 소극적이다. 특히 홈플러스의 청산가치(3조7000억원)가 계속기업가치(2조5000억원)보다 높아 원매자들이 인수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MBK가 대주주로서 추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지난 8일 "회생법원이 감독권을 적극 행사해 MBK가 무분별한 점포 폐점을 강행하지 못하도록 제재해야 한다"라며 "사모펀드가 청산을 선택해 사회적 피해를 전가하는 대신, 자구 노력을 통해 회생 절차를 정상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요구는 단순히 채권단 이익 보호 차원을 넘어 소비자·협력업체·근로자의 이해까지 반영된 정치적 압박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최근 몇 년간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역사회 반발과 고용 문제를 야기해 사회적 비판에 직면해왔다.
IB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MBK가 점포 매각 대신 직접 출자를 확대하는 등의 추가적 희생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매각은 힘들다고 봐야 한다”라며 “MBK 입장에서는 투자자 이해와 수익률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국내 LP들의 신뢰 회복과 향후 출자를 위해선 결단을 내려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