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상생금융’이 다시금 금융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도 금융 취약계층 구제를 위한 ‘배드뱅크(부실채권 처리기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중은행들은 외면하는 분위기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지난 4월 새로 취급한 일반신용대출 가운데 연 7% 이상의 금리를 적용한 중금리대출 취급 비중은 평균 6.22%에 불과했다. 1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쪼그라들었다.
(사진=연합)
문제는 단순한 수요 감소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은행들이 연체율 관리와 수익성 보전을 이유로 중금리 대출 자체를 줄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대출을 내주면 고신용자보다 연체율이 높아지고, 그만큼 충당금도 더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총량 규제까지 있어 굳이 위험을 떠안으면서까지 중금리 대출을 확대할 유인이 없다는 게 은행권 입장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최근 몇 년 새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특히 지난 금리 상승기에는 대출 금리를 올려 수익을 키워왔다.
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에서는 부동산 PF 부실과 연체율 상승으로 건전성 위기에 몰렸다. 1금융권이 외면한 중위험 차주들이 몰린 결과다. 결국 ‘위험은 2금융권으로, 수익은 은행으로’라는 구조가 굳어진 모양새다.
연 7~12%대의 금리로 중신용자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시장은 ‘고금리 이자장사’와 ‘정책금융 사이’의 중간 지대다. 금융사에 수익성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중금리 대출은 주로 중·저신용자가 이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중금리대출은 금리 상단이 고정되고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제2금융권보다 금리가 낮은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중간 사다리’인 셈이다. 은행이 앞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은행만 탓할 일이 아니다. 시장과 감독당국 모두 현실적인 유인책 없이 은행의 자발적 책임만을 기대하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중금리 대출 목표를 설정했지만 실질적 유인은 부족하다. 게다가 DSR 3단계 시행은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돼 중금리 대출 확대를 더 어렵게 만들 전망이다. DSR 산정에서 중금리 대출을 일부 완화하거나, 서민금융진흥원의 보증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성실 상환자에 대한 금리 우대, 장기분할상환 확대, 일정 조건 하에서의 정책보증 연계 등으로 은행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도 뒷받침돼야 한다.
상생은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진짜 상생은 은행이 조금 덜 벌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감내할 때 의미가 있다. 지금처럼 고신용자 대출 확대와 주담대 경쟁에만 집중하면 은행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금리 시대에 중금리 대출은 은행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 중 하나다. 상생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