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그룹, 방산법 사각지대 속 '무승인 승계' 가나
방위산업체 경영권 변동 시 정부 승인 필요…지주사는 규제 피할 수 있어
차기 후계자 류진 회장 아들 '로이스 류'…지주사 홀딩스 경영권 확보 가능
방산 물자 생산 차질 법 취지 무색에 촘촘한 규제 필요 목소리
공개 2025-04-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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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정준우 기자] 풍산그룹이 현행 방위사업법의 규제 공백을 활용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 없이 경영권 승계를 추진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행 법에 따르면 방위산업체의 경영권 변동에는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이를 지배하는 모회사에 대한 경영권 변동에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풍산그룹은 지주사 풍산홀딩스(005810)를 통해 방위산업체 풍산(103140)을 지배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풍산그룹의 후계자는 류진 회장의 아들이자 미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로이스 류 PMX인더스트리 부사장으로, 풍산홀딩스 지분 인수를 통해 방산 자회사인 풍산의 실질적 경영권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위사업법의 입법 취지가 경영권 변동으로 인한 방산 물자 생산 차질을 방지하는 데 있음에도, 모회사에 대한 규제가 없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풍산그룹 본사 전경(사진=풍산)
 
미국 법인 수주 증가…후계자 경영 능력 검증 청신호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풍산의 미국 자회사인 PMX인더스트리의 수주잔고는 올해 들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1월 이후 현재까지의 수주잔고는 1억4114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8800만달러)보다 60.4%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이어 차기 타겟으로 구리가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구리 비축 수요가 늘어나면서 PMX인더스트리의 수주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리 가격 상승세와 함께 미국 현지에서 구리를 자급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어, 올해 실적 확대가 기대된다. PMX인더스트리는 지난해 매출 7106억원, 당기순손실 214억원을 기록했다.
 
풍산의 미국 사업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의 아들인 로이스 류 부사장이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는 그의 미국 법인 경영 참여를 차기 승계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PMX인더스트리의 실적 개선이 그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된다면, 이는 풍산그룹 승계에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로이스 류 부사장이 미국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적 문제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계에서는 향후 국적 회복 가능성을 거론하며, 실적 등 경영 성과가 뒷받침된다면 국적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풍산그룹의 승계는 지주회사인 풍산홀딩스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풍산홀딩스는 지난해 말 기준 방위산업체인 풍산의 지분 3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풍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류진 회장으로, 지분율은 37.61%에 달하며, 로이스 류 부사장은 2.4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풍산홀딩스에 대한 지배권 승계가 이뤄질 경우, 실질적으로 방산 자회사인 풍산의 경영권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방위산업체 경영권 변동 규제 '규제 공백'
 
풍산은 1973년 정부로부터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래 국내 대표 탄약 제조 기업으로 꼽힌다. 방위산업법 제35조 3항은 방위산업체에 대해 매매, 인수합병, 직계승계 등을 포함한 경영 지배권 변동 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방산 물자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현행 법령은 방위산업체를 지배하는 모회사, 즉 지주사의 경영권 변동에는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아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주사 지배를 통해 방위산업체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음에도 장관 승인 절차를 우회할 수 있어, 제도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규제 사각지대는 외국인 투자 관련 법률에서도 발견된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외국인이 방위산업체에 투자할 경우 정부 허가가 필요하지만, 방산업체를 지배하는 모회사에 대한 투자는 별도 허가 없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우회 투자 방식으로 방산업체에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열려 있는 셈이다.
 
방위사업청은 모회사의 지배구조 변화가 방위산업체의 경영 지배권에 실질적 변화를 초래하는 경우, 정부의 승인 여부는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률상 모회사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영권 변화 여부는 정황과 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방위사업법 제35조 3항과 관련된 판례 대부분은 방위산업체 지정 취소와 관련된 사례에 집중돼 있으며, 모회사 경영권 변동과 승인 여부에 대한 선례는 부족한 실정이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체를 보유한 모회사의 경영권 변동에도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지 묻는 <IB토마토> 질문에 “모회사의 지배구조 변화가 방위산업체의 경영 지배권에 실질적인 변화를 미치는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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