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자본 관련 재무 공시 협의체(TNFD)는 2023년 9월 최종 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산업별 공시 지침을 확정해 나가고 있다. TNFD는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가 기업의 재무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국제 협의체다. 아직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올해 전 세계 502개 기업과 금융기관이 TNFD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보고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TNFD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거나 부분적으로 참여하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국내 기업들이 TNFD의 확산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생물다양성 등 환경 리스크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예진 기자] 식음료 산업은 대표적인 자연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속한다. 운영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100%가 자연에 의존하며 공급망에서 최소 50%가 자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자연자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에 속한 기업일수록 자연자본 손실에 의한 재무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자연자본 관련 재무 공시 협의체(TNFD)는 식음료 산업에 수자원 관리와 지속가능한 포장재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AI일러스트)
상위 점유율 6개 기업 중 5곳 ESG 성과 보고
이를 바탕으로 <IB토마토>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현황을 살펴본 결과 롯데칠성음료와 삼양패키징 2곳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카콜라음료와 동아오츠카는 각각 모회사인
LG생활건강(051900)과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 통해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다만 비상장사인 동서식품은 관련 보고서를 따로 공시하지 않았으며, 코스닥 상장사인
매일유업(267980)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2023년 10월 플라스틱 배출량 감축, 재생 소재 플라스틱 사용 확대 등 패키징 관리 이행 방안을 골자로 한 '친환경 포장재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ESG위원회가 플라스틱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롯데칠성음료는 오는 2030년까지 신재 플라스틱 사용량을 20% 감축하고 플라스틱 경량화와 재생 원료 사용에 집중한다는 목표다.
국내 음료업계에서는 재생 플라스틱을 10% 내외로 혼합해 플라스틱을 재생산 하는 방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2프로부족할때', '오늘의차', '레쓰비그란데' 등에 대한 패키징 경량화와 '아이시스8.0 ECO' 제품 일부에 재생원료 플라스틱이 10~20%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코카콜라음료 역시 코카콜라와 코카콜라 제로 1.25L 제품에 음료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재생 플라스틱을 10% 함유한 재생 페트로 만든 '보틀 투 보틀' 재활용을 적용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지난 2023년 10% 가량의 재생페트를 적용한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이외에도 동아오츠카 등이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 사용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삼양패키징은 페트(PET)원료 생산에서부터 PET병의 생산 및 소비자가 사용 후 버린 폐페트병을 수거, 재활용하며 생산, 유통, 재활용 사이클을 구축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기오염 등 환경 문제가 증대되면서 자원의 재활용을 독려하고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을 요구하는 등 자원순환과 환경보호를 위한 국내외 환경 규제가 점차 심화되면서 선제적인 대응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 인식 변화도 기업들의 환경 경영에 영향을 미쳤다.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환경영향을 최소화한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제품의 전 과정에서 환경영향을 저감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사진=롯데칠성음료)
생물다양성 보존위해 높아진 '수자원 관리' 중요도
이 가운데 5개 기업 중 롯데칠성음료, LG생활건강, 삼양패키징은 수자원 관리 리스크에 대해서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대응 방안을 공시했다. 매일유업은 홈페이지를 통해 용수 사용량과 재이용 실적,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 등을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다수 기업이 ESG위원회에서 관련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칠성음료는 ESG팀을 구성해 수자원 관리 관련 내용이 포함된 ESG 핵심 성과 지표(KPI)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업활동에 따른 환경 영향 관련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EHS팀을 통해 모든 사업장과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사업장 운영 과정에 발생하는 수자원 관련 데이터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주요 거버넌스 조직에 C-레벨(level) 경영진을 배치해 기후변화 사안에 대한 공동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CEO는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의 구성원으로서 전사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대한 최종 의결 권한을 보유하며, CFO는 ESG협의회의 의장으로서 당사의 기후변화 대응 방향을 구성원 모두에게 공유한다. CRO는 위기관리위원회와 그린제품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임해 전사 통합 관점에서의 기후변화 리스크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자원순환 촉진을 위해 재활용 원료를 사용한 제품 포장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LG생활건강의 자회사인 코카콜라음료와 해태에이치티비는 2012년부터 수자원의 지속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해 5년마다 원수 취약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원수의 공급망, 원수 우려 사항, 물의 품질, 국가의 물 공급과 보호 정책, 미래 전망 등에 대해 평가하고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세계자원연구소(WRI)의 물 위험 평가 도구인 ‘애퀴덕트(Aqueduct) 평가’를 전 사업장에서 수행해 현재와 미래의 수자원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지난 2021년 11월 이사회에서 기존의 경영위원회를 ESG 경영위원회로 개편하며, 중장기 전략 방향성 검토와 주요과제 등을 감독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생산체계 담당과 친환경 패키지 담당을 따로 두고 각각 온실가스·용수·폐기물 등 환경과제와 KPI를 관리하고, 재활용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삼양패키징 기후변화에 대한 리스크와 기회를 식별하기 위해 국내 생산시설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물리적 리스크를 식별하고 있다. 또한 경영전략과 재무부서 등의 의견을 종합해 전환 리스크와 기회를 파악해 ESG 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스템 체계를 구축해 놓은 상태다.
이처럼 기업들이 수자원 관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선제적으로 수자원 투입량을 절감하고 사용 효율을 개선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특히 취수원의 수질 오염이 발생할 경우 잠재적인 소비자 안전 이슈와도 연계될 수 있어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높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지자체의 규제 강화 등은 생산 방식과 설비 변경 필요에 따른 투자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사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대응에 실패할 경우에 발생할 투자 비용은 원가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적극적인 관리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플라스틱 재생산과 플라스틱 경량화 등이 장기적인 기후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평가는 회의적이다. 기존 대비 더 많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만들어 판매한다면 플라스틱의 생산은 더욱 늘어나기 때문이다. 재생 플라스틱 사용과 더불어 음료기업에서 집중하는 경량화 또한 마찬가지다.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현재 플라스틱 오염은 위기의 상태로 플라스틱은 단순한 쓰레기 문제가 아닌 인가의 건강, 생태계, 기후까지 위협하고 있다"라며 "현시점에서 가장 선제돼야 하는 방법은 생산단계에서의 플라스틱을 감축하는 방법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에 의존이 높은 음료기업은 눈 가리기식이 아닌 실제 생산 감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재사용 가능 포장재와 리필을 더 활용할 수 있는 포장재와 판매 방식을 채택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예진 기자 luck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