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경영권 분쟁이 증권가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NH투자증권(005940)과 협업해 인수금융 대출과 공개매수 주관에 나선다.
고려아연(010130)도 KB증권을 우군으로 삼아 기업어음(CP)발행과 공개매수를 함께한다. 때아닌 수수료 잔치에 경영권 분재의 최종 승자는 증권사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영권 분쟁 뛰어든 증권사…MBK는 NH, 고려아연은 KB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83만원에서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MBK파트너스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현재 공개매수 가격 이상의 가격경쟁은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라며 가격 인상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MBK파트너스는 매수 가격 변동 없이 오는 14일까지 주당 83만원에 고려아연을 공개매수한다. 공개매수 창구는 NH투자증권이다.
앞서 NH투자증권은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최후 승자 중 하나란 평가를 받았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이전 NH투자증권은 공개매수 자금으로 MBK파트너스에 1조4906억원 규모 대출을 제공했다. 연이율 5.7%에 9개월 차입 조건이다. 이를 통해 NH투자증권은 단숨에 640억원의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공개매수 주관 수수료도 33억원에 달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역은 나오지 않았지만 자금 조달 관련 자문 수수료, 인수금융 주선과 개관투자자 재매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수수료까지 고려하면 관련 수익은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조건이 사실상 확정되자 공개매수 주관사로 KB증권을 추가 선정하고 고려아연이 막판 뒤집기에 나섰다. 앞서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006800)과 하나증권을 선정했다. 하지만 미래에셋증권과 하나증권의 경우 청약을 오프라인으로만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지적돼 온라인 시스템을 갖춘 KB증권을 합류시켰다.
이어 고려아연은 11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인상을 결정했다. 매수 수량도 늘려 기존 최대 372만6591주(발행주식총수의 18%)에서 최대 414만657주(20%)로 늘렸다. 이로써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수 투입 자금 규모는 약 3조6852억원이다.
공개매수는 오는 23일까지 진행된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주관사로 KB증권을 추가한 점을 언급하며 "KB증권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청약이 모두 가능하다"라며 "공개매수 청약에 대한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였다"라고 강조했다.
'고수익 보장' 경영권 분쟁, 새로운 먹거리 될까
지금까지 기업 경영권 분쟁에서 증권사는 주체가 아닌 조력자 역할만을 해왔다. 자칫 편들기가 향후 채권발행이나 계열사 기업공개(IPO) 등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증권업계는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인수금융 대출에선 증권사들이 일종의 진영을 만들어 자금을 지원하는 머니게임에 돌입했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인수금융에 사용된 2조6635억원의 자금 중 2조1635억원을 차입으로 매웠다.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연 6.5% 금리에 1조원,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에서 연 5.5%에 1조1635억원을 조달했다. 만기는 모두 1년이다. 이로 인한 이자비용은 약 1290억원 규모로 예상된다.
이어 글로벌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탈도 한국투자증권에서 연 5.7% 이율로 총 3437억원을 빌렸다. 이를 통해 한국투자증권은 약 148억원의 이자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도
영풍정밀(036560) 공개매수 자금 마련을 하나증권에서 연 5.7%에 9개월 만기로 1000억원을 차입했다.
이번 공개매수 창구로 참여한 KB증권도 지난 9월 고려아연의 2000억원 규모 기업어음(CP) 발행을 주관했다. 이는 공개매수 주관사 선정으로 이어졌다. 통상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의 거래가 더 활발한 만큼 공개매수 과정에서 얻을 수수료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증권업계 IB 경쟁 격화, 경영권 분쟁 주체로 만들어
이 같은 업계 판도 변화는 IB시장 경쟁이 격화된 결과다. 앞서 국내 IB시장은 부동산 불황 장기화로 부동산금융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중형급 증권사들의 잇단 진출로 수익성이 악화되기도 했다.
(사진=NICE신용평가)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종합금융투자사 인가 증권사의 평균 순이익 증가율은 53%인 반면, 자산규모 1조원 이상 4조원 미만 대형사의 경우 –30%로 오히려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규모 1조원 이하 중소형사도 4% 성장에 그쳤다.
특히 기업대상 수수료 부문에서의 수익성 악화는 두드러졌다. NICE신용평가가 분류한 종투사 인가 증권사를 제외한 자산규모 1조원 이상 4조원 미만 증권사의 경우 수수료와 IB부문에선 각각 -4.0%, -15.3%의 수익이 하락했다.
윤재성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환경이 악화된 이후 다수 증권사들이 정통IB 부문과 자산관리(WM)에서 사업 역량을 확대하기 시작했다"라면서 "하지만 소수 대형사가 시장 지위가 공고한 상황이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수익성 확보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번 경영권에서 증권업계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리스크 대비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딜의 구조 때문이란 의견도 나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증권사 입장에서는 단순한 창구 역할만 맡아도 아쉬울 것이 없다"라며 "수익성 회복이 쉽지 않은 요즘 시장에서 경영권 분쟁은 리스크 대비 확실한 수익성을 보장해 많은 증권사들이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