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에서 경기 침체와 파두 사태의 후폭풍이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의 깐깐해진 기준으로 상장 문턱이 높아졌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금융투자업계는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해 IPO 주관 업무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IB토마토>는 현재 국내 IPO 시장의 현황을 점검하고 IPO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올 상반기 IPO 주관시장에선 대형 증권사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중소형사들이 틈새로 노릴만한 중소형 IPO가 부족해서다. IPO시장에서도 빈인빅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작년 하반기는 미국 금리인하 기대감으로 인한 유동성이 IPO 시장으로 몰리면서 생각지 못한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금리 인하 기대감이 수그러들고 금융당국의 IPO 심사 강화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국 IPO의 향방은 시장의 환경을 극복할 실적을 내는 기업의 발굴에 달렸다는 평가다.
증권사 쏠림 현상에 빈부격차 심화
13일 <IB토마토>의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장을 완료했거나 상장이 진행된 기업은 총 32곳으로 이 중 29곳이 상위 5개 증권사가 대표 주관했다.
건별로는
NH투자증권(005940)과 한국투자증권이 가장 많았다. 양사는 각각 9개 기업의 대표 주관사를 맡았다. KB증권과 삼성증권(016360)이 각각 4곳으로 뒤를 이었고, 지난해 주관실적 2위를 기록한 미래에셋증권은 2곳을 주관했다.
사실 IPO 시장에서 상위권 회사의 독식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중소형 기업의 상장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IPO 규제 강화로 인해 중소형 증권사들이 주관할 만한 딜이 상당 부분 연기되거나 상장 철회됐다.
실제 높아진 금융당국의 잣대에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도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거래소 심사를 받은 기업 중 미승인을 통보받거나 심사를 자진 철회한 기업은 총 19곳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해 동안 24곳인 점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가파르다.
특히 작년 발생한
파두(440110)사태의 후폭풍으로 기술특례 상장을 준비했던 기업들의 상장 철회가 두드러졌다. 올 상반기 상장철회 의사를 밝힌 기업은 9곳,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을 준비하다가 접은 기업도 6곳에 달한다. 2010년 이후 가장 많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중형 증권사는 대형급 보다는 주로 중형급 이하 IPO를 주관하려고 노력한다"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IPO 흥행 여부가 기업 자금 조달과 직결되다 보니 주관 업무를 대형사에 맡기려는 경향이 늘었고 예전에 비해 신중해진 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IPO시장, 금리와 주도산업 영향 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IPO시장은 활황세를 맞았다. 파두와
두산로보틱스(454910) 등 신기술 기업이 조단위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모았고 당시 주도 테마던 2차전지 업종인
LS머트리얼즈(417200)까지 상장 후 ‘따따상’(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00%까지 상승)에 성공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IPO 활황은 국내외 금융환경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23년 7월26일 금리를 5.5%까지 계속 끌어올린 뒤 8월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처음으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이후 계속된 금리 동결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3%대 유지 등으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선 2차전지 투자 붐과 함께 인공지능(AI) 기술로 반도체, 로봇기술과 같은 신기술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면서 유동자금은 IPO에 몰렸다.
이를 종합해 보면 IPO 시장 흥망성쇠는 안정적인 시장 금리와 테마 산업의 등장에 달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올 하반기 전망은 밝은 편이다. 현지 시간 12일 열린 6월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선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5.50%로 동결했다. 지난 9월 이후 첫 동결 이후 일곱 차례 연속이다. 시장에선 금리 상승 가능성이 낮아졌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외부 요인보다 기업 지속성과 성장성에 집중해야"
금리와 같은 시장 환경도 중요하지만 사실 핵심은 기업의 체력과 성장성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IPO기업 주가는 실적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안정적인 수익성과 성장을 증명한 기업의 경우 공모를 뛰어넘는 주가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간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우 공모가 밑을 맴돌았다. 뻥튀기 상장으로 논란을 일으킨 '파두 사태'가 한 예다.
(사진=한국거래소)
반면 상반기 수익률 1위 우진엔텍은 올해 1분기에도 견조한 실적을 거뒀다. 매출 10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84억원보다 20%가량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억원에서 13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첫 IPO인 우진엔텍은 KB증권이 대표 주관했다. 수익률 2위인 현대힘스도 1분기 연결기준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 551억 원, 영업이익 59억 원, 당기순이익 43억 원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 대비 37%, 79%, 87%의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IPO시장에선 성장성도 중요하지만 현재 기업이 갖춘 펜더멘탈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금리와 유동성이 통제가 불가능한 환경인 만큼 통제 가능한 기업 가치에 집중하고 충분한 시장의 변동성을 이겨낼 체력을 갖춘 기업 발굴이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IPO 시장은 활황기는 아니지만 평년 수준이라 할 수 있다"라며 "IPO 시장의 경우 금리와 유동성 등 환경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증시 활황 정도,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 관심 이슈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받는 만큼 본질은 기업의 지속성과 성장성"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