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시장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증권업계가 '버티기'에 들어갔다. 앞서 금융투자업권에서 증권사들은 전체 사업군 중 가장 높은 연체율을 기록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충당금 적립규모가 최종손실액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발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정부의 부동산 PF 지원 정책이 예정돼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증권업계 부동산 리스크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업계의 리스크 관리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PF 대출잔액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장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금융권 부동산 PF 잔액과 증권사의 PF 대출 연체율은 레고랜드 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22년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재로 기재부·국토부·한국은행·금융지주·정책금융기관과 함께한 부동산 PF 사업정상화 추진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12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주요 금융지주, 정책금융기관 등과 함께 '제3차 부동산 PF 사업정상화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최근 부동산 PF 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회의에서 발표된 국내 금융권 부동산 PF 관련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총 133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연체율은 6월 말 기준 2.17%로, 2020년 말 0.55%, 2021년 말 0.37%이던 부동산 PF 연체율은 2022년말 1.19%, 2023년 3월 말 2.01%에 이어 증가세를 보였다.
이번 회의 자료에서 대다수 금융업계 부동산 PF 대출은 현상유지 또는 관리 가능 수준인 것으로 진단됐다. 하지만 타업권과 달리 증권업계의 부동산 PF 대출 관련 지표에선 연체율이 금융권 평균을 크게 상회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의 연체율은 3월 말보다 1.40% 증가한 6월말 17.28%를 기록했다. 앞서 증권사의 PF 연체율은 2021년말 3.71%로 타업권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 2022년 말 10.38%로 급등한 후 올해 3월 말 15.88%에 이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대출잔액이 6월 말 기준 5조5000억원으로 타업권 대비 적은 규모이지만 시장에선 리스크 관리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 나왔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별 증권사가 기대수익과 위험을 고려한 부동산 PF 위험관리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라며 "시공사에 대한 위험관리 기준 설정과 임직원 성과보수체계 설계나 심사부서의 요건 정비 등 부동산PF 관련 내부통제 강화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버티기 나선 증권사…그러나 건설사 자금난은 지속
증권업계의 부동산 PF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부동산 PF 익스포저 대부분은 만기연장을 통한 '버티기'에 돌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 중인 시공사의 자금 융통은 여전히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진=나이스신용평가)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만기도래 예정이었던 국내 부동산 PF 익스포저 5조2000억원 중 약 73%(브릿지론 약 80%, 본PF 약 56%)가 만기연장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브릿지론 대부분이 본 PF로 전환되지 못해 만기연장됐고, 나머지 부동산 익스포저 역시 차주 변경이나 외부 매각 등을 통해 상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본PF의 경우 일부 정상적인 분양대금 유입을 통해 회수한 사업장도 있으나, 미분양 담보대출 혹은 상각 처리로 진행된 사업장 역시 상당 부분 존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예리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증권업계 부동산 PF 대출의 만기연장이 지속되고 있지만 충당금 적립규모가 최종손실액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실제 증권사가 감내해야 할 최종 손실 규모는 현재건전성 지표와 손실 인식규모에서 나타나는 수준보다 훨씬 클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당장의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부동산 개발을 진행하는 건설사의 자금 여력이 시장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최근 채권시장에서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은 난항을 겪었다. 신용등급 A급 건설사들마저 최근 채권시장 활황에도 불구하고 발행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4월16일 신용등급 A- 의
KCC건설(021320)은 900억 규모 2년물 회사채 발행 수요조사 예측에서 900억원 중 130억원 매수 주문에 그쳤다. 앞서 KCC건설보다 한 단계 높은 신용등급인 A의
신세계건설(034300)도 800억원 규모 2년물 회사채 발행에서 100억원 매수주문을 받아 흥행에 실패해 사모채 시장에서 7%대가 넘는 이율로 겨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일부 부동산 시장에서 금융사들이 실시한 매입확약이란 일종의 보증을 선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이미 진행된 건에 대해서 증권사들은 책임을 지고 체력이 다할 때까지 버티거나 아니면 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나름의 자구책을 추진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틸 수 있는 관건은 금리와 정책에 달려
결국 시장의 관심은 금리환경과 부동산 정책의 변화에 모아지고 있다. 버틸 수 있는 여력엔 한계가 있고 현재로서는 시장의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진=나이스신용평가)
실제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계 브릿지론 만기는 2023년과 2024년, 본PF의 만기는 2024년과 2025년 사이에 집중 도래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당부분 2021년과 2023년 사이 계약한 사업장으로 브릿지론의 계약기간은 대부분 1~3년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PF의 경우 만기가 3년 내외인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국제 금융가에서는 미국의 기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PF 지원 정책 발표가 만기 도래 이전 시장 회복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지시간으로 12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97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95%(94명)가 오는 19일과 20일 이틀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를 현재의 연 5.25~5.50% 범위에서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전망에선 응답자 87명 가운데 62명은 내년 6월 말까지 적어도 한차례 금리 인하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난 8월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6월 말까지 금리 인하를 시작하고 이후에 분기별로 0.2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8월13일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가까워지면 금리를 정상화하려는 욕구에 따라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진단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산업 정상화 TF 킥오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부동산 PF 정책과 관련해 국토교통부는 오는 20일과 25일 사이 부동산 공급 대책에 관한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부동산 PF 등 금융 관리와 인허가 단축을 비롯한 규제 완화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부 건설사는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들을 당장은 막을 수 있지만 그 다음번 만기를 막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라며 "추가 출자를 하거나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수익성이 높은 사업장을 매각해 현금 흐름이 끊기는 부분이 없도록 자구책을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함께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