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삼수생' 현대오일뱅크, 탈정유로 정유사 굴레 풀어낼 수 있나
변동성 크고 탄소 배출 많은 정유 사업 탈피
친환경 신사업 진출로 몸값 상승 노려
2012·2018년 상장 철회···공통점은 기업가치 평가 우려
공개 2021-11-25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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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김성훈 기자] 내년 상장을 앞둔 현대오일뱅크가 탈정유를 선언하고 몸값 올리기에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상장 절차 완주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현대오일뱅크의 신사업 행보가 기업가치 상승과 기업공개(IPO)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 이면에는 아직 비교 대상이 정유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적정한 기업가치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자리 잡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8일,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유 정제 공정에 투입해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친환경 나프타(naphtha)를 생산한다고 밝혔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란 폐플라스틱을 고열로 분해해 만든 석유로, 쓰레기에서 기름을 얻는 화학적 재활용의 산물이다. 이렇게 생산된 나프타는 인근 석유화학사에 공급, 새 플라스틱 제품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우선 100t의 열분해유를 정유 공정에 투입해 실증 연구를 수행하고, 안전성을 확보한 뒤 투입량을 점차 늘린다는 것이 현대오일뱅크의 계획이다. 추후에는 연간 5만t 규모의 신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다.
 
현대오일뱅크가 발을 들인 신사업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사업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부터는 수소 연료전지의 핵심부품인 연료전지용 분리막·전해질막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 국내 업체로부터 수소차용 분리막 기술·장비를 인수한 현대오일뱅크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 시장과 달리 아직 선도 업체가 없는 연료전지 소재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먼저 올해 안에 충남 천안시에 연료전지 분리막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다음 단계에서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한 전해질막 사업을 펼칠 방침이다. 분리막·전해질막의 양산 시점은 2023년으로 잡고 있다. 
 
수소 정제 사업도 진행 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사용되는 고순도 수소의 정제설비를 충남 서산 대산공장 내에 구축했다. 이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국 180개 수소차 충전 네트워크를 갖추겠다는 것이 현대오일뱅크의 계획이다.
 
차세대 연료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친환경 에너지·화학 기업인 덴마크 할도톱소(Haldor topsoe)와 ‘친환경 기술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퓨얼(e-fuel) 생산 기술 개발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퓨얼은 물을 전기분해 해 수소를 얻은 뒤 이를 이산화탄소 등과 혼합해 만든 친환경 합성 연료로, 원유를 한 방울도 섞지 않았음에도 휘발유·경유와 비슷한 성상을 구현해 차량용 연료 등에 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소 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다시 모아 반복 활용한다는 점에서 탄소 중립적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도 가능하다.
 
현대오일뱅크가 이처럼 신사업에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정유사의 한계를 넘어 친환경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IPO를 준비하기 위함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 현대중공업지주(267250) 이사회에서 현대오일뱅크의 IPO를 결정한 이후 신사업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뿐만 아니라 모든 정유사가 생존을 위해 친환경 관련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라며 “신사업 자체가 상장만을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신사업을 빠르게 발굴하고 진행에 속도를 내는 것은 상장 시기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사실 정유업체들의 수익 다각화 노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유사들은 국가 간 이해관계나 공급망 등의 문제로 언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정유 사업을 보조할 수 있는 신사업을 꾸준히 발굴해왔다. 그러다 최근 ESG 열풍이 불면서,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와 재활용 기술 등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현재 85%인 정유사업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40%대로 줄일 계획이며, 미래 성장 동력이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은 70%까지 높이겠다”라고 선언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 역시 "이번에 IPO 계획을 밝히기 전부터 진행했던 사업들이 많고, IPO만을 위해 신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역(逆)으로 생존을 위한 미래 먹거리 개발 때문이라도 IPO는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무너졌던 실적은 회복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투자로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현대오일뱅크의 현금성자산은 4640억원으로, 1조4282억원에 달하는 단기성차입금의 약 32.5%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뜻하는 잉여현금흐름 역시 같은 기간 –1조5328억원을 보였다. 자금의 여유가 충분하지 않아 추가 투자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순차입금의존도도 지난해 신용평가사의 건전성 기준인 30%를 넘어 43.5%로 상승한 이후 올해 3분기에는 44.6%까지 오르며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자금 부족 문제가 아직 내부적으로 큰 이슈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학계 관계자는 "결국 유망한 신사업을 다수 발굴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이를 인정받아 IPO에 성공한 후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미래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한 추가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기업가치, 이른바 몸값을 인정받는 것이 정유사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2년과 2018년 상장에 도전했지만 두 번 모두 자진 철회했다. 2012년에는 수입 비중이 컸던 이란산 원유의 공급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았고 2018년에는 한국거래소의 감리가 복병이 됐지만, 상장이 무산된 결정적인 원인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현대오일뱅크가 처음으로 상장 계획을 밝힌 2012년에는 상대 가치 산정(밸류에이션)의 기준이 되는 SK이노베이션(096770)S-Oil(010950)의 주가가 상당히 부진했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19만원대에서 14만원대로, S-Oil은 13만원대에서 9만원대로 주저앉은 상황이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원유 공급 문제까지 생기자, 실적이나 외형만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의 경우 함께 상장을 계획했던 고급 윤활기유(그룹III) 부문 세계 1위 기업 SK루브리컨츠가 상장을 철회하면서 몸값 인정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당시 현대오일뱅크도 고급 윤활기유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었는데, 전기차 확대 조짐·굴뚝산업 지양 등의 추세로 SK루브리컨츠에 대해 시장이 냉정한 반응을 보이면서 상장 절차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이 크게 성장하며 ‘SK온’이 설립됐지만, 주가는 19만~20만원을 오가던 3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일 종가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21만6500원으로, 20만3000원을 기록한 2018년 11월19일보다 6.65% 오르는 데에 그쳤다. 기업의 몸값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주가순자산비율(PBR) 역시 1.14배로 2.89배를 기록한 LG화학의 절반이 채 안 된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회사가 사업을 청산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모두 매각할 때의 가치(청산가치)보다 낮은 수준에 주가가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S-Oil은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 지난 2018년 11월19일에는 11만1500원이었지만, 19일 종가는 8만8600원이었다. PBR은 1.6배다. 
 
학계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가장 활발하게 친환경 신사업에 나서는 정유사 중 한 곳이어서 상장 철회를 결정했던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라면서도 “원유 가격과 정제마진 등의 등락에 따라 실적이 널뛰는 정유사의 특성상 기업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신사업의 내용과 성과가 더욱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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