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상장제도는 매출 실적이 미미한 기업이라도 우수한 기술력만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제도다. 기술 기반 기업의 자금 조달을 활성화하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상장 과정에서 과도하게 낙관적인 실적 전망이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장 이후 실적이 기대치를 크게 밑도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개별 기업의 특수성과 산업 구조적 변수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장이 추진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IB토마토>는 기술특례상장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상장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기술특례상장 제도에서 최근 시장성이 강조되는 흐름이 감지되면서 향후 투자자 보호 효과가 커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일반 상장에 비해 재무요건이 낮고 매출 요건이 없어 매출 변동성이 큰 기업들도 상장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재무 기반 없이 상장에 나서는 사례가 많고 상장 이후 재무 불안정으로 인해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성이 중요해지면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확보한 기업 위주로 기술특례상장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본적인 재무 안정성이 갖춰진 기업은 실적이 예측치를 하회하더라도 그 충격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사진=한국거래소)
낮은 재무요건에 투자자 피해 커
24일 기술특례상장 컨설팅 업계 등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 이후 일부 기업들로부터 투자자 피해 사례가 현재 진행형인 상태로 파악된다. 일례로 지난 2023년 9월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시큐레터는 상장 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지난해 8월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의견거절을 받았다.
재무제표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적어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4월부터 현재까지 주식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이에 투자자들은 주식을 내다팔 수 없게 되어 피해가 발생했다. 아울러 상장 이후 꾸준히 하락한 주가 역시 투자자 손실로 이어졌다.
주식 거래가 정지된 사이 시큐레터의 결손금은 1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며 투자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시큐레터의 결손금은 392억원에 달했다. 자본금(40억원)의 10배에 가까운 결손금 규모다. 자본금 규모가 적은 기업일수록 자본잠식까지 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난해 급증한 결손금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큐레터는 지난 21일 감자로 자본금을 40억원에서 35억원으로 줄여 결손금 보전에 나섰다.
이에 기술특례상장의 낮은 재무 요건이 부실기업을 낳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기술특례상장을 통과하려면 자기자본 10억원 이상, 시가총액 90억원 이상이 요구된다. 일반 상장이 매출 100억원 이상, 최소 자기자본 30억원 이상을 요구하는 것에 비하면 기준이 낮다. 또한 매출 요건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이는 기술특례상장의 취지 때문이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기술을 가진 작은 기업이 원활히 자금을 조달해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이다. 탄탄한 재무 상태를 갖추지 않아도 기술력이 있다면 상장이 가능하다. 다만, 기술이 매출 성장으로 직결될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는 기술특례기업의 재무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기술특례상장기업들이 제도적 보호 속에 기술력을 무기로 상장 시장에 입성했지만, 기술을 매출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부실 기업으로 전락하면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술특례상장에 관여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매출 기반 등이 불안정해 상장 후 보유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헤매는 기업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 말했다.
시장성 강화 기조…시장 신뢰 제고
기술특례상장에 관여하는 컨설팅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술특례상장 예비심사단계에서 시장성을 살펴보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이미 확보한 매출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측보다 실제 매출이 적게 나오는 기술특례상장기업이 속출하자 주가하락에 피해를 보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에 기업들은 시장 잠재력, 비즈니스 모델 진척 상황, 시장 경쟁력 등 시장성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고민에 빠졌다. 상장 전 준비단계에서 구체적인 평가 비중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은 배가된다. 일부 기업들은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과 결부시키는 것과 별개로 별도의 매출원을 통해 매출을 늘린 후 상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업의 시장성을 강화하는 기조로 인해 향후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안정적인 매출을 통해 재무상태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에서 상장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성이 강화되는 분위기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기술특례상장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다만, 관련 기관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투자자 보호인 만큼 시장성 요건을 강화하는 흐름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기술특례상장기업은 기술을 매출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매출의 변동성이 크다. 이에 재무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상장 전 단계부터 재무적으로 검증된 기업을 깐깐하게 가려 상장시키면 투자자 피해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
한 상장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근 시장성을 강조하는 기조가 업계에 감지되면서 투자자 보호 효과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특례상장를 준비하는 기업들도 기술력 뿐 아니라 매출도 신경 써야 해서 상장 난이도가 올라갈 것”이라 전망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