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하나증권이 미리 쌓아놓은 충당금 덕에 해외 부동산 펀드 손실을 견뎌냈다. 해당 펀드는 하나증권과 이지스자산운용이 합작해 조성한 것으로 최근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하나증권은 공모ㆍ사모펀드 판매와 고유계정 등을 포함해 약 1350억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라이논 빌딩 전경 (사진=이지스자산운용)
말 많던 트리아논, 결국 EOD 선언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오피스빌딩 트리아논에 투자한 ‘이지스 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의 대출 유보 계약이 만기 도래로 종료됐다. 유보 계약이란 즉각적인 기한이익상실(EOD) 전 대주단의 동의 하에 기존 대출 계약을 일정 기간 유예해주는 조치다.
앞서 해당 펀드의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해 11월30일 한 차례 유보 계약으로 위기를 넘겼고, 이어 지난 2월28일 다시 만기일을 석달간 늘리는 변경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대주단이 이번 변경 계약 연장에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대출 계약의 기한이익상실과 함께 현지 특수목적법인(SPC)도 도산하게 됐다.
하나증권이 투자한 금액은 1350억원 규모로 투자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실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 수익률은 설정 이후 -80% 수준이다.
문제가 된 펀드는 지난 2018년 하나증권(당시 하나금융투자)과 이지스자산운용이 각각 단독 대표 주관사와 지분투자한 공모 펀드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에 투자한다는 점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사실 펀드 승패는 출시 때부터 트리아논 빌딩의 최대 입주자인 데카방크(DEKA BANK)의 임차 기간 연장 여부에 달렸었다. 2018년 당시 데카방크는 임차 기간이 6년 남아있었고 펀드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 데카방크가 임대 계약을 유지해야 약속된 수익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피스 수요 감소로 데카방크가 올 6월 계약 만료를 끝으로 임대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펀드는 수렁에 빠졌다.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 본사 (사진=IB토마토)
실적 발목 잡던 '충당금', 알고 보니 '효자'
하나증권은 지난해까지 충당금 적립이 실적에 발목을 잡았다. 실제 지난해 4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펀드의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했지만 미리 쌓아놓은 충당금 덕에 실적 방어가 가능해진 것이다.
하나증권이 적립한 충당금은 지난해 2분기 830억원, 3분기 780억원, 4분기 1240억원 등으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조원의 손실을 선반영했다. 이번 펀드 투자에서 전액 손실이 발생해도 여력이 충분한 상태다.
신용평가업계에서도 하나증권이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신용평가보고서에서 하나증권이 최근 3년간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 1500억원과 후순위사채 2100억원 발행으로 자금 여력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순요주의이하자산 잔액 증가로 조정레버리지가 일부 저하됐으나 규제지표인 순자본비율(NCR)은 1,315%로 규제 수준인 100%을 크게 상회해 영업용순자본비율, 조정영업용순자본비율 등 기타 자본 적정성지표는 전년 대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윤기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하나증권은 IB부문 외형 확대 과정에서 위험노출액(익스포저)과 부동산 관련 우발부채가 증가했지만 자본확충이나 리스크 관리가 상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나증권, 수익성과 안정성 두고 '고심'
하나증권은 지난해 손실 선반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난 뒤 올 1분기에서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1분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8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8%, 영업이익은 12.7%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적 개선은 주식자본시장(ECM)과 부채자본시장(DCM)을 비롯한 전통 투자금융(IB) 부문 확대 덕분이다. <IB토마토>가 작성한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 1분기까지 하나증권은 누적 기준으로 기업공개(IPO) 부문에서 쟁쟁한 경쟁사를 제치고 주관 실적 4위를 기록했다. DCM부문에서도 인수실적에서 총 43건, 1조1780억원의 주관실적을 기록해 오랜만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온전한 실적 회복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나증권의 1분기 총자산수익률(ROA)은 0.7%를 기록했다. 지난해 –0.7%에서 다시 양수로 전환했지만 2020과 2021년에 기록한 1.3%, 1.7%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이에 따라 하나증권은 하반기 운영에 기조에 대한 고심이 깊어졌다. 수익성 회복과 안정성 확보 중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운영에 따른 충격 완화에 대해서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지난해 트리아논 빌딩을 포함한 해외 대체투자 자산에 대해 보수적 관점에서 손실 요인을 인식한 상황"이라며 "사태에 따른 추가 손실 부분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충당금 이슈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충당금 적립 등의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