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2일 비공개로 진행된 시·도 의사회 회장단 긴급회의에서 개원가(개원의, 봉직의 등)를 포함한 집단행동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조만간 전체 의사 회원을 상대로 온라인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의협은 9일쯤 전국 대표자 회의를 열고 총파업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추가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반면,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집단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미 지난달 30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증원을 최종 확정하고, 각 대학에 승인 통보했다. 2025학년도 39개 의대(의전원인 치의과대 미포함) 정원은 올해 3113명보다 1497명 늘어난 4610명으로 확정됐다. 사실상 의대 증원 절차가 마무리된 셈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27년 만이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사진=뉴시스)
문제는 의료계 총파업 예고로 국민들의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 병원까지 총파업에 참여할 경우 의료 대란은 이제 응급환자만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적 이슈로 자리 잡게 된다. 사실 의료계가 총파업을 하는 목적도 이런 국민적 불안감을 볼모로 정부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총파업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달 28~2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 10명 중 9명은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벌이는 집단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사실상 ‘밥그릇 챙기기’ 말고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계는 먼저 의사가 늘어나면 과잉 진료로 인해 의료 수요도 함께 늘어나 건강 보험 등 의료 관련 재정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이유로 들고 있는 필수·지방 의료 활성화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의료 교육 현장 인프라가 부족해 의료교육이 부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아무리 의료계 설명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이유가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높다. 의사가 늘어난다고 아프지 않은데 일부러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의사가 늘어나면 서울 및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개원을 하지 못한 의사들이 일자리를 찾아 자연스레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부족한 인프라는 정부가 지원하면 해결될 문제일 것이다.
의료계에서 어차피 파업은 한 집단의 ‘밥그릇 챙기기’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계가 연일 진행하고 있는 파업은 사실상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투쟁인 것도 사실이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파업을 옹호하는 이유는 행여 나중에라도 우리 집단이 투쟁을 벌일 경우 지지를 얻고, 각자 집단에서 을의 입장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작은 연대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의 이번 투쟁은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삼고 진행하는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다른 파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사측과 노동자 등 각자 이익이 충돌하는 투쟁이 아닌 정부로 대변되는 ‘공공의 선’과 의사로 대변되는 ‘사익’이 충돌하는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중한 업무로 고생하는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의료 윤리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적어도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이길 바랄 뿐이다.
여기에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제약업계 한숨도 늘어나고 있다. 의사들이 약 처방을 안하니, 전문의약품 매출이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출 하락을 이유로 대형 병원들이 의약품 대금 결제를 미루고 있다. 3개월 전부터 시작된 의사들의 진료 거부로 올해 2분기 실적이 크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환자는 물론 애먼 제약업계로 불똥이 튀고 있다. 제약산업은 신약 개발에만 10년 이상 걸리는 연구개발비를 감당해야 하는 산업이다. 의료계 파업에 발목 잡혀 연구개발에 차질이 생길 경우 의료뿐 아니라 제약산업도 후퇴할 수 있다. 의료계 집단행동이 단순히 의료계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최용민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