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이하영 기자] 올해 ‘흑자원년’을 자부하던 SK온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원자재·품질비용과 금융비용 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목표치에서는 멀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규모를 반으로 줄인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에서 외교상 최혜국 대우(MFN)에 해당하는 조건까지 내걸어 자존심을 구겼다. 이는 올초 글로벌 투자자들을 상대로 무리한 조건을 제시하다 투자에 실패한 것과 무관치 않다. MFN 조항을 넣은 만큼 프리IPO 흥행 요소는 갖췄지만 지출이 많은 상황에서 충분한 투자금이 모이지 못해 올해 턴어라운드에는 실패하는 ‘절반의 성공’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의 프리IPO를 책임지는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컨소시엄(한투PE,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스텔라인베스트먼트)이 최근 공모 금액을 4조원에서 최대 2조원으로 변경한 투자 레터를 국내 투자자 위주로 발송했다. SK온 기업가치는 약 22조원으로 평가됐으며 투자 방식은 전환우선주(CPS) 매입 방식이다. 여기에 펀딩 참여자가 가장 좋은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는 MFN 조항을 삽입해 2조원의 자금 수혈은 무리 없이 진행될 거란 관측이다.
SK온 헝가리 공장 전경.(사진=SK온)
이는 올 초 글로벌 투자자 위주로 진행한 4조원 상당 프리IPO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당시 SK온은 기업가치를 40조원 상당으로 평가했다. 여기에 상환전환우선주(RCPS)나 CPS 방식이 아닌 보통주 발행을 고수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투자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RCPS와 CPS는 둘 다 보통주보다는 투자자에 유리한 주식이다. RCPS는 일정 조건에 따라 채권처럼 만기에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이 있는 주식이다. CPS는 투자자가 전환권을 갖는 주식으로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이나 주식 전환비율에서 유리한 지점을 획득할 수 있다.
SK온은 하반기 프리IPO에서 CPS 발행으로 부채는 낮추되 보통주보다 금융비용이 다소 느는 것을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가치도 올 초보다 절반 가까이 낮춰 주당 가치도 저평가될 전망이다. 여기에 MFN 조항을 넣어 투자자에 안심을 더했다. SK온이 상반기보다 프리IPO 문턱을 낮춘 이유는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과 금융 환경에 기인한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재 이슈·금융비용 증가·헝가리 품질비용 상승 ‘3중고’
전기차 배터리업계는 올초 핵심 원자재인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가격 폭등에 고전했다. 니켈은 올해 3월 투기 자금까지 몰려 이틀 만에 235%나 폭등했을 정도다. 전기차는 원자재 등 가격 인상요소가 있으면 ‘소재업체→배터리사→완성차업체’ 순으로 가격이 전가된다. 원자재 수급 불안에 전기차 생산 차질이 생기며 가격 전가도 더뎌졌다. 여기에 반도체 수급불안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완성차 업계 출하량이 정체되며 공장 가동률 저하와 물량 감소로 고정비가 증가하며 상황은 악화일로를 달렸다.
올초 프리IPO로 조달하려 했던 4조원의 자금이 수혈되지 않으며 SK온은 금융 불안도 커졌다. SK온은 최근 글로벌 공장 증설 자금 등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금융권에서 단기차입금을 1조5000억원 이상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1년 내 상환 부담이 있는 단기차입금은 3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를 빠른 시간 내 장기차입금 등으로 전환하거나 상환하지 않으면 금융비용은 더 불어날 전망이다.
SK온은 현재 60기가와트시(GWh)에 머무는 배터리 생산능력을 올해 말까지 77GWh, 2025년까지 220GWh로 늘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 ▲2023년 미국 조지아 제2공장 ▲2024년 중국 옌청에 제2공장, 헝가리 이반차 공장 ▲2025년 터키에 포드 등과 합작법인 공장, 미국 켄터키/테네시주에 포드와 합작법인 공장 등을 가동할 계획을 세웠다. 2025년까지는 꼼짝없이 공장 증설비용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온의 헝가리 공장은 품질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사업성을 확보하려면 90% 이상의 수율이 나와야 하는데 만족할 만한 수준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품질 결함이 발생하면 감소한 물량을 재생산해야 해 비용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SK온은 올 2분기에도 3266억원의 손실을 내며 1분기 대비(-2734억원) 적자폭을 19.4%나 키웠다.
2025년까지 SK온의 전기차 생산 목표인 220GWh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헝가리 생산량은 47.5GWh로 합작법인이 아닌 독자 생산이다. 업계에서는 SK온의 해외 공장 운영 부족이 독자 생산 공장의 품질 결함을 불러온 것으로 판단한다.
해외 독자 생산 부족은 제품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SK온 헝가리공장은 지난 6월 배터리 품질 결함으로 글로벌 업체 제품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SK온은
현대차(005380) 신제품 아이오닉6에도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하기로 했다. 그러나 품질 결함이 이어질 경우 계약이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하며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것도 SK온에는 부정요소다. 여기에 모회사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10월 SK온의 자회사 분사 이후 자금지원에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3월 주주총회에서 차세대 배터리 R&D 사업 관련 자산 및 부채 일체를 SK온에 4524억원에 넘겼다. 만년적자 SK온에 또 다시 수천억원의 부담이 지워진 셈이다.
2023년 흑자전환도 ‘안갯속’
SK온은 중국 기업 약진에도 글로벌 시장 점유율(SNE리서치 상반기 기준) 6.5%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매출도 2019년 6900억원에서 지난해 3조원으로 2년 만에 4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는 연매출 7조원을 넘기며 1년 만에 약 2배 이상 매출 상승을 기록할 예정이다. 문제는 계속된 신규투자와 품질 결함으로 아직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열린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SK온의 흑자전환 이슈가 공식적으로 언급됐다. 이날 김준 부회장은 SK온 흑자 시점에 대해 “지난해 스토리데이때 2022년 흑자전환을 말했으나 최근 여러 가지 환경적인 문제가 있고 자동차용 반도체 이슈와 원소재 가격 상승, 인력 충원 등으로 부정적인 상황”이라며 “2022년 4분기 흑자전환 가이던스는 아직 유효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 SK온의 흑자전환을 보는 시선은 그리 밝지 않다. 실제 6개 증권사 모두 SK온이 올해까지 적자나 그에 준하는 실적을 예상했다. 4분기 흑자전환을 예상했던 김 부회장의 발언과는 거리가 있다.
내년을 흑자전환 시점으로 내다본 것도 6개 증권사 중
NH투자증권(005940)과
현대차증권(001500)의 2개사에 불과하다. 모두 연매출 10조원 이상일 때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NH투자증권과 불과 100억원 차이로 신한금융투자는 적자를 예상해 2023년 내 흑자전환도 확신은 어렵다. 프리IPO 규모가 예상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탓에 자금 상황도 넉넉지 않다.
흑자전환을 가르는 핵심 요소는 공장증설이 아닌 수율이 될 전망이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리포트에서 “작년·올해 증설된 약 57GWh의 증설분의 온기 가동으로 인한 물량 증가 및 수율·가동률 개선도 내년 배터리부문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라며 “작년 말 기준 동사의 누적 수주는 1600GWh로 올해 말 생산능력의 20배 이상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공장증설은 일정액이 투자될 수밖에 없어 갑자기 투입 금액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수율을 향상시키면 다시 만드는데 드는 원재료비, 인건비, 운영비, 품질검사비 등을 줄일 수 있어 흑자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SK온도 이를 인식했는지 지난 1일 최고운영책임자(COO, Chief Operating Officer) 직을 신설하고
SK하이닉스(000660)에서 개발제조총괄을 맡아온 진교원 사장을 영입했다고 밝혔다.
SK온은 진 COO 영입 의미에 대해 “수율을 높여 생산, 공급을 최적화하는 것은 물론 시장 변화에 따른 고객들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관련 직책을 만들 만큼 SK온에 ‘공급 최적화’ 또는 ‘신규 공장 최적화’가 요구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SK온은 미국, 헝가리, 중국 등에 2025년까지 7개의 생산공장을 더 구축할 예정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SK온 흑자전환과 관련해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회사는 2분기까지는 힘들었지만 3분기 출하량과 (공장) 가동률이 올라오면서 적자폭이 줄어들 것이란 입장”이라며 “3분기 실적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실적 확인 전까지는 (배터리업계) 이야기가 낭설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SK온의 매출원가는 2020년 3조4878억원, 2021년 4조2649억원, 2022년(예상) 6조6967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와 관련 SK온 관계자는 “(프리IPO가) 큰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자세한 진행 사항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