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한화임팩트가 지난달 시스템 반도체 기업 뉴블라를 설립했다. 한화의 반도체 진출이 의아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업계에서는 진출 의도와 사업성은 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사업이 성공한다면 김동관 회장이 그리는 한화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000880)그룹 계열사 한화임팩트는 지난해 11월 시스템 반도체 기업 ‘뉴블라(Neubla)’를 설립했다. 뉴블라의 사업 목적은 ‘소프트웨어 개발 판매·서비스업’이다. 구체적인 사업 형태는 알려지지 않았고 한화임팩트 측도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하는 단계는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한화그룹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뉴블라가 지난해 한화임팩트의 신경망처리장치(NPU) 특별팀(태스크포스, TF)에서 출발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뉴블라’는 사람의 뇌 신경망을 모방한 차세대 반도체 NPU를 개발한다. NPU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반도체다. 우리에게 익숙한 CPU(중앙처리장치)는 단순 계산에 적합하고, GPU(그래픽처리장치)는 게임 등의 복잡한 그래픽을 위해 개발됐기 때문에 두 장치를 활용한다고 해도 인공지능을 구현하기에는 성능과 전력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때 개발된 것이 NPU다. NPU는 중앙처리장치를 보조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든다. 업계에서는 한화임팩트의 뉴블라가 앞으로 NPU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거나 칩 디자인에 필요한 핵심 설계자산(IP)을 개발할 것으로 예상한다.
NPU의 시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일각에서는 왜 한화그룹이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도심항공교통(UAM)과 우주·수소 관련 사업으로 분주한 지금, 굳이 NPU라는 신사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화그룹이 NPU의 쓰임새와 현재 추진 중인 신사업을 들여다보면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의도를 알 수 있다.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도심항공모빌리티 '버터플라이' 사진=한화시스템
NPU는 복잡한 연산을 처리할 수 있어 자율주행·음성인식·다자간 통신 등을 구현하는 데에 꼭 필요한 반도체다. NPU의 이러한 기능은 한화그룹의 주요 신사업인 UAM과 연결된다. 다른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UAM에도 자율운항 기능이 필수이며, 복잡한 도심을 비행하는 UAM의 특성상 원활한 통신과 빠른 음성인식 등이 매우 중요하다. 한화그룹의 경우 계열사
한화시스템(272210)이 미국의 오버에어와 UAM 기체 ‘버터플라이’를 개발 중인데, 버터플라이에 뉴블라가 개발한 NPU가 사용된다면 기술뿐만 아니라 수익성에서도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시스템은 오는 2023년 버터플라이 기체 개발을 완료하고 2025년께 상업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전자식 저궤도 위성통신 안테나 체계 개념도. 이미지=한화시스템
한화그룹의 우주사업 전담 조직 ‘스페이스허브’ 수장인 김동관
한화솔루션(009830) 사장이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저궤도위성통신사업에서도 NPU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화시스템은 저궤도위성통신사업을 위해 지난 2020년 영국 위성통신 안테나 기술 벤처기업 ‘페이저 솔루션(Phasor Solutions Ltd.)’을 인수, ‘한화페이저’를 설립했다. 주목할 점은 한화페이저가 반도체 기반의 차세대 위성통신 안테나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한화페이저는 해상·육상·항공기 내에서 빠르게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Electronically Steerable Antenna, ESA) 시스템’ 등을 주력으로 하는데, 앞으로 저궤도위성이동통신 사업이 본격화하면 안테나와 관련 시스템에 활용되는 NPU의 수요도 늘 것으로 분석된다.
모건스탠리는 위성 발사·탑재체·서비스 등을 포함한 저궤도위성통신 시장 규모가 2040년 7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그룹이 저궤도위성통신 사업에 뉴블라에서 개발한 자체 NPU 등을 활용할 경우, 통신 관련 데이터 확보를 통한 기술 고도화는 물론 한화임팩트의 실적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페이저는 설계·제조 전문기업 플렉서스와 협력해 지난해부터 신규 위성 안테나를 개발 중이며, 한화시스템도 최근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승인에 따라 원웹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하며 저궤도위성통신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솔루션 역시 지난달 10일 통신·반도체 모듈 전문 자회사 한화엔엑스엠디(NxMD)를 신설했다. 카이스트 재료공학 박사 출신 장세영 NxMD실장(부사장)이 대표이사를 겸임할 예정인데, 같은 신생 자회사로서 뉴블라와의 연계도 기대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NPU를 비롯한 지능형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650억달러, 우리돈 약 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20% 규모다. 레이더 장비와 무기의 고도화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를 중심으로 하는 방산 부문에서도 NPU가 쓰일 가능성이 있으며, 빅데이터·인공지능을 활용하는 한화의 정보통신(ICT) 부문과 디지털금융 부문에서도 NPU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화임팩트 뿐만 아니라 한화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반도체 부문 강화에 나서고 있는데, 한화솔루션은 작년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의 황정욱 사장을 첨단소재 부문 미래전략사업부장으로 영입했고, 한화테크윈도 시스템 반도체 개발부문을 물적 분할해 '비전넥스트'를 세웠다. 비전넥스트의 대표이사는 퀄컴·LG전자 등에서 일한 우정호 상무가 맡았다. 이 같은 한화그룹의 반도체 진출은 모두 김동관 사장이 이끄는 전략 부문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블라의 설립도 김 사장의 ‘큰 그림’의 일부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뉴블라의 성과가 한화임팩트 상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화임팩트는 지난해 하반기 중 상장(IPO)을 계획했지만, 전신인 한화종합화학이 가진 사업적 한계에 대한 우려에 상장을 포기했다. 한화임팩트가 화학회사에서 투자회사로 정체성을 바꾸고 반도체 사업을 준비한 것도 이 시기인데, 한화임팩트는 작년 7월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출신 윤종희 상무를 영입했다. 당시 윤 상무는 신설된 NPU TF팀장으로 발령받았는데, 연구원 이력이 있는 만큼 뉴블라에서도 실무의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블라의 성공으로 한화임팩트가 투자회사로서의 역량을 증명하면 재상장이 가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화임팩트는 뉴블라뿐만 아니라 미국법인을 통한 신사업 투자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6일 한화임팩트는 한화임팩트글로벌에 3595억5000만원을 출자했다. 한화임팩트글로벌의 투자재원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인데, 한화임팩트글로벌은 해당 자금을 활용해 지난 21일 미국 현지법인인 한화임팩트파트너스 INC에 출자했다. 한화임팩트 지분 52%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의 최대주주가 김동관 사장이기에 한화임팩트의 상장과 기업가치 제고는 한화그룹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 김동관 사장은 현재 한화에너지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NPU와 시스템 반도체 사업은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구글·마이크로소프트·
SK텔레콤(017670) 등도 진출한 성장성 높은 분야”라며 “윤석열 당선인도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한화그룹의 반도체 진출도 올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내다봤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