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KT(030200)가 지난달 25일 발생한 전국적 네트워크 장애로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 당시 KT는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에 의한 장애라고 밝혔다가 설비 교체 중 발생한 인적 사고인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산 데다 보상 조치를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반발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KT가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보상안에 따른 매출액 감소와 더불어 향후 고객 이탈로 재무지표 관리에 부담을 안을 것으로 예상했다.
3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KT는 지난 1일 광화문사옥에서 설명회를 열고 최근 발생한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 장애 관련 재발방지대책과 고객보상안을 발표했다. 먼저 보상안을 보면 KT는 실제 장애시간의 10배 수준인 15시간분의 요금을 보상 기준으로 정하고, 소상공인의 경우 10일분 서비스요금이라는 별도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서창석 KT 네트워크 혁신 TF장과 임원진들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West사옥 대회의실에서 인터넷 장애 관련 ‘재발방지대책 및 보상안’ 발표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소상공인들이 별도의 보상을 받게 된 점은 이번 네트워크 장애로 인한 피해가 예상보다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KT가 장애를 최초로 인지한 시점은 25일 오전 11시20분경으로, 네트워크가 최대 89분간 먹통이 되면서 카드결제 등을 비롯해 통신, 인터넷 장애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KT는 네트워크 장애 원인을 디도스 공격으로 추정하고 과기부에 사이버 공격 신고를 했지만, 실제 장애 원인이 라우팅(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인 것으로 밝혀졌다. 라우팅 변경 작업은 많은 센터망과 중계망 및 일부 엣지망의 경우 오류가 발생했을 때 전국적인 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보전달 개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통상 망 고도화 작업은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이 많이 발생하는 만큼 야간에 진행해야 하지만 KT는 이 작업을 주간에 진행했고 사전 검증단계에서도 협력사 직원이 명령어를 누락하면서 잘못된 라우팅 변경 정보가 엣지망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돼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디도스 공격의 경우 외부에서 트래픽을 증가시켜 서버를 다운되게 만드는 것으로 사실상 천재지변 등에 의한 불가항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장애 문제가 라우팅 오류인 것으로 드러나 KT의 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KT의 과실이 명확해졌다.
KT의 약관상 손해배상 기준은 연속 3시간 이상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1개월 누적시간이 6시간을 초과할 경우 월정액과 부가사용료 8배에 상당한 금액을 기준으로 KT와 협의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돼 있다. 때문에 KT는 지난달 29일 구현모 KT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이사회를 열고 약관에 구애받지 않고 보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네트워크 장애에 따른 피해 금액은 총 350억원에 이를 것으로 KT는 추산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경우 총 보상금이 250억원, 개인·기업 고객은 100억원 수준의 보상이 예상되며, 이 금액은 4분기 매출액에서 차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KT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약관을 뛰어넘는 자체적인 보상 기준을 마련했고, 고객들의 회선이 다양하기 때문에 일괄 보상으로 기준을 정했다”라며 “즉각적인 보상을 지급하기 위해 당장 다음달 요금에서 자동적으로 감면되는 방식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KT가 통신 장애에 따른 사과와 보상안 마련 등을 빠르게 진행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장애 발생 초기에 디도스 공격이라고 발표했던 점과 보상 기준이 너무 적다는 점은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것에 비해 개별 이용자가 받게 될 감면 금액이 몇천원 수준에 그쳐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향후 보상금액이 증가할 수도 있다. KT가 정한 보상액을 개인으로 한정하면 1인당 1000원의 요금이 감면되고, 소상공인의 경우 7000~8000원 수준의 보상 지원금이 책정돼 아현국사 화재와 비교되고 있다.
지난 2018년 말 KT 아현화재 당시 소상공인에게 지급된 보상 지원금은 통신서비스 장애 발생 기간에 따라 1~2일 구간은 40만원, 3~4일 구간은 80만원, 5~6일 구간은 100만원, 7일 이상은 120만원을 지급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아현화재 당시 소상공인들에게 지급한 보상금액만 비교해봐도 차이가 큰데, 이는 상생보상협의회를 만들어 보상을 논의했던 상황과 대비되기 때문”이라며 “비슷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상인단체 등과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상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KT의 반복적인 사고로 브랜드 인지도가 추락해 가입자 이탈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무선통신서비스 가입현황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KT의 이동통신 번호이동 가입자 수는 7만7549건으로 경쟁사 대비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SK텔레콤(017670)은 10만7117건,
LG유플러스(032640)는 7만8857건, 알뜰폰(MVNO) 15만9314건을 기록했다.
번호이동 가입자가 적다는 것은 경쟁사 대비 경쟁력 약화로도 볼 수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동통신 회선 수가 감소해 향후 영업이익에도 영향을 줘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 올해 2분기에만 475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KT로서는 피해 보상금 350억원은 7.3% 수준으로 재무적 영향은 미미하지만 브랜드 인지도 하락에 따른 가입자 이탈은 뼈아픈 실책으로 남는다.
이동전화 가입유형별 회선 수.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특히 KT는 최근 탈(脫)통신을 선언하고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인수합병(M&A)이나 지분투자 외에도 인공지능(AI)·디지털전환(DX), 미디어 등 신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어 사업 차질도 우려된다.
KT의 지난해 잉여현금흐름(FCF)을 보면 1조806억원에 달했는데, 올해 상반기 들어 자본적지출(CAPEX)로 2조2198억원이 소요되면서 FCF가 4376억원으로 줄어들어 경쟁사 대비 가장 많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SK텔레콤의 FCF는 2조2763억원에서 9555억원으로 줄었고, LG유플러스는 –3817억원에서 오히려 증가하며 3858억원으로 늘었다. 양사의 상반기 기준 CAPEX는 1조3000억원 수준으로 비슷했다.
결국 FCF가 줄어들면 향후 신사업 준비를 위한 가용 자산이 줄어들 수 있음과 동시에 향후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규모도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네트워크 장애 발생으로 당장 가입자 이탈이 증가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통신업 특성상 약정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고 결합상품과 연계돼 있어 당장 해지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반복되는 사고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피해 규모는 크게 느껴지지만, 상대적으로 보상금이 적다고 느끼는 고객들이 많아 향후 가입자 유치 경쟁력에서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