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연내 자산매입 축소, 이른바 ‘테이퍼링’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오르면 당장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금융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힘들어진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조달 후 금융비용이 커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투자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IB토마토>는 유동성이 사라지는 상황에서의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IB토마토 김창권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인상한데 이어 오는 11월 추가 인상 가능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서며 기업들의 보릿고개가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곧 저금리 시대가 저물 수 있다는 전망은 기업의 채무 상환 부담에 대한 걱정을 키울 뿐 아니라 비우량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고, 신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들은 투자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직면한 금리 인상기에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비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면서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1%대로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자 각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선적·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8월2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기존 0.5%에서 0.75%로 전격 인상했다. 특히 한은은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향후 기준금리 인상이 단발성이 아닌 통화정책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을 시사하면서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유동성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 숙박, 여행 업종은 물론 글로벌 탄소중립에 정책 기조에 맞춰 신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투자에 나선 철강, 중공업 등의 기업들 역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견·중소기업들 자금조달에 있어 영향 더 클 듯
기준금리는 지난해 5월 이후 15개월째 0.5%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집값 상승과 더불어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대책 마련으로 금리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금리 인상으로 인해 수출기업들은 일부 수혜를 볼 수도 있겠지만 중견, 중소기업들의 경우 조달 자금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로 남는다.
또한 금리 인상은 기업의 투자위축을 초래해 생산과 영업활동에 대한 대내외 경쟁력 저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경우 기업의 자금 차입여건이 악화되고, 차입금의 이자비용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는 금리 상승이 기업 수익성 악화 효과가 증폭돼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총이자 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높아져 이자 지급능력이 취약한 기업(이자보상배율 1미만 기업) 비중은 2019년 35.1%에서 2020년 39.7%로 늘었다. 이중 중소기업은 비중이 절반 수준인 50.9%(대기업 28.8%)에 달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발표 이후 중소기업중앙회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강화된 거리두기로 매출감소가 심화되고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금리 인상이 겹치게 되면 중소기업의 87%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준금리 인상. 사진/뉴시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 8월 국내 기업 310개사(대기업 104개·중소기업 206개)를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원자재가격 상승(81.6%) ▲코로나19 재확산(80.6%) ▲금리 인상(67.7%)을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으며 “국내기업의 부채부담이 증가하고 있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은 최대한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민경희 대한상의 연구위원은 “금리가 올라가면 신규로 대출을 받는 기업들이 어려워지는 것은 맞지만, 기존에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은 조달 방식에 따라 다르게 설정돼 있어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발행 어려워진 기업들 그린본드 활용 예상
이번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기업들의 자금조달 방식에 있어 회사채 발행에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A급 이하 비우량 크레딧물과 3년 미만 단기물 등에 대해서는 금리 인상 효과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요소다.
LG경제연구원의 ‘2021년 국내외 경제전망’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431개사의 전체영업이익은 올해 47%, 내년 21%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돼 실제 이익 개선 정도가 이에 비해 낮아지더라도 회사채 스프레드(안전자산인 국고채 대비 위험자산인 회사채 수익률의 차이)는 감소할 여지가 크다고 봤다.
하반기에 우량 등급 회사채(AA- 등급 기준, 3년 만기) 금리는 2.0%로 낮아지고 비우량 회사채(BBB- 등급 기준, 3년 만기) 금리 역시 8.3%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내년에 이익 성장세가 둔화되고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시작되면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금리 차별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AA- 등급 회사채의 경우 올해와 비슷한 연평균 2.1%를 유지할 전망이지만, BBB- 등급의 경우 9% 근접할 정도로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채 금리 현황. 사진/LG경제연구소
이외에도 회사채 발행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기업들 가운데 대표적인 분야는 고탄소 배출 업종들이다. 철강이나 중공업 등의 제조업은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탄소 배출 감소를 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를 강제하는 상황까지 와있다.
이처럼 제조업이 자금조달을 받기 위해선 탄소 배출 저감장치 등을 설치하는 등 설비투자가 절실한 처지에 놓여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위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탄소 감축 정책과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약점을 상쇄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그린본드(녹색채권)의 발행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린본드는 기후변화 및 재생에너지 같은 친환경 프로젝트, 인프라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특수목적 채권이지만, 신용도가 일부 낮은 기업들도 이용할 수 있고 금리가 시중 은행보다 싸다는 장점이 있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이와 관련된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라며 “그린본드는 한정된 분야에 사용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금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일부 대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