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과거 열강들이 신대륙을 찾아 나서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렸듯, 세계는 지금 ‘대수소시대’를 맞이했다. 국내 대기업의 상당수도 수소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수소 생태계를 위해 손을 잡고 있다. 하지만 수소의 경우 기술의 한계로 채산성이 낮고, 발전 인프라의 한계로 청정수소 생산량도 매우 적은 상황이다. 아직 국내 수소 생태계에 활용할 수소의 형태도 정하지 못했다. 수소로 돈을 벌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15일 18개 정부기관과 기업이 공동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 암모니아 협의체를 구성했다./삼성엔지니어링
암모니아는 쉽게 말해 고체 형태의 수소다. 기업들이 이처럼 암모니아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은 수소가 기체·액체 형태로는 저장과 운송이 쉽지 않지만, 고체가 되면 안전성과 비용 모두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암모니아가 수소 저장·운반 수단으로써 탄소중립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8일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액화수소 플랜트 착공식을 가졌다./두산중공업
그렇다고 대기업들이 암모니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두산중공업은 창원시와 손잡고 창원공장 빈 부지에 하루에 액화수소 5t을 생산하는 액화수소 플랜트를 짓기로 했다. SK E&S는 인천시 서구 SK인천석유화학단지 내에 연 3만t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2023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며,
효성(004800) 역시 글로벌 화학기업 린데그룹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 액화수소 공장을 건설 중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수소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ESG 기조를 이어감과 동시에 수소산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발전은 열병합발전을 했을 때의 효율이 80%에 달한다. 이는 기존 석탄화력발전 효율의 두 배로, 같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보다 온실가스가 45만t 가까이 적게 배출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경제성은 더욱 커진다. 동력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가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보다 훨씬 가볍고 효율이 높다는 점도 기업들이 수소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미 장점을 인정받아 장거리용 트럭과 버스 등에 장착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는, 차세대 이동·운송 수단으로 각광받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에 가장 적합한 전지로 꼽힌다.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도심항공모빌리티 '버터플라이'/한화시스템
수소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수소라는 에너지에 열중하는 것은 결국 미래 수익성 때문”이라면서 “수소가 발전·동력원으로서의 효율이 높고, UAM과 친환경 선박 등의 심장으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분석들이 나오면서 미래 생존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소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는 결과적으로 환경과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는 수소 사업이 ‘돈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액체도, 고체도 아닌 기체 상태 수소를 고압 탱크에 저장해 유통하고 있다. 기체·액체·고체 중 어느 형태의 수소 관련 기술도 성숙하지 않은 상태다.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수소에 투자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우리나라와 각 기업의 상황에 맞는 수소 생산·저장·운송 형태를 찾기 위함이다.
허선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현재까지 수소 산업이 신생 산업이기 때문에 모든 단계에서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들이 많은데, 이 때문에 다른 국가에도 선도 기업은 없는 상황”이라며 “대기업들도 당장의 수익성에 대한 기대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의 주장처럼 수소경제의 도래가 목전에 있다거나, 수소생태계가 곧 확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액화수소가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저장·운송 등에서 가장 유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추후 기술 개발 여부에 따라 기체·고체 등의 활용 비중이 높아지면 액화수소 투자액 대비 수익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체와 고체 수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화솔루션이 인수한 시마론의 고압탱크/한화솔루션
일례로 한화솔루션은 수소 사업 등을 위해 고압 탱크 전문기업 시마론을 인수했다. 하지만 수소를 액화해 운송하는 것이 압축해 운송하는 것보다 낫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는 등 액화수소로 대세가 기울면서, 일각에서는 시마론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기술 부족으로 인한 낮은 채산성도 수소 사업의 수익성 증대를 위한 과제로 지목된다. 포스코 경영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수소경제의 경제적·기술적 이슈’에 따르면, 수소는 제조 비용과 운송 비용 등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높다. 수소를 전기로 바꾸기 위해서는 ‘연료전지’가 필요한데, 연료전지의 발전 가격은 1KWh 당 250원이다. 태양열은 120원, 풍력은 90원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비싸다. 이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연료전지에 탑재되는 ‘백금’의 가격 때문인데, 1kg당 1억원이 넘는다. 연료전지는 사용할수록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데, 이점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 수소 생산의 주재료로 활용되는 천연가스 가격이 비싸고, 변동성이 크다는 것도 비용을 높이는 원인이다.
그린수소의 에너지 전환 과정/포스코경영연구원
에너지 손실도 적지 않다. 그린수소의 경우 수전해(전기를 활용한 물 분해) 과정에서 45%가량의 손실이 생기고, 저장·운송에서도 10~20%가 손실된다. 수소를 전기와 열로 변환할 때도 추가로 손실이 발생한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정부에서는 ‘청정수소’를 외치지만, 아직 청정수소의 생산이 미비하다는 것도 현재 수소 사업의 한계다. 수소는 생산 방식과 오염물질 배출 정도 등에 따라 그린수소·블루수소·그레이수소·브라운수소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 물 분해 방식으로 생산한 그린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제거해 생산한 블루수소만이 청정수소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소의 대부분은 천연가스를 활용한 ‘그레이수소’로, 청정수소가 아니다. 정기대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원은 "현재 글로벌 수소 생산의 약 96%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열화학적 생산 방식"이라며 "이 중 49%가 천연가스를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이어서 "국내에서 수소는 대부분 천연가스 개질과 부생수소 정화방법으로 생산되고, 수전해는 효율이 낮아 생산 비중도 낮다"라고 분석했다.
그린수소의 경우 물을 전기로 분해하는 방식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수소를 생산하는 데에 전기가 추가로 필요하며,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설비와 인프라가 미흡해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롯데케미칼과 SK E&S가 블루수소 생산을 공약하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2025년 이후에나 유의미한 규모의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허 연구원은 “정부의 수소경제 전반에 대한 추진의지는 좋지만,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고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분야에 대한 선별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라며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시기이며, 단기적으로 수소와 관련한 큰 수입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