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제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국내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창업주 세대가 물러나고 2세에서 3세, 4세까지 경영 시대를 열며 거미줄 처럼 얽힌 지배구조 실타래는 오너가들의 경영승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21대 국회에서 177석이 된 여당은 정부와 함께 재벌개혁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직접 내기로 했고 공정위는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나섰다. 이에 <IB토마토>는 창간 1주년을 맞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현주소와 전망을 담은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현대자동차, 한화, LG, 신세계 등 국내 대표 그룹들을 4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IB토마토 손강훈 기자]
한화(000880)의 미국 수소트럭 업체 지분 투자가 잭팟을 터트리며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승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분위기다. 그룹 측은 경영승계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투자를 진두지휘하며 선구안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 투자 지분 가치 상승으로 승계 시나리오가 탄탄해지는 효과를 얻었다.
지난달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2018년 11월 한화가 1억달러를 투자해 확보한 지분 6.13%의 가치는 불과 1년 6개월 만에 7억5000만달러로 투자금 대비 7배 이상 뛰었다. 상장 당시 니콜라의 주식 가격은 주당 33.75달러였는데 16일 종가 기준 주가는 52.53달러로 가치는 더욱 상승 중이다.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수소트럭 충전 모습. 출처/니콜라 홈페이지
이번 투자로 한화그룹 경영승계 1순위인 김동관 부사장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어느 정도 증명한 셈이 됐다. 니콜라의 성공적인 상장은 한화그룹의 미국 내 수소사업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영승계를 위한 지분확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의 최대주주는 22.65%의 지분을 보유한 김승연 회장이다. 장남 김동관 부사장 4.44%,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1.67%,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 1.67%이다. 승계를 위해서는 지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곳이 에이치솔루션이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에너지 지분 100%,
한화시스템(272210) 지분 13.41% 등을 갖고 있는 투자회사로 그룹 일부 계열사의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다.
에이치솔루션은 김승연 회장의 아들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김동관 부사장 50%, 김동원 상무와 김동선 전 차장이 각각 25%씩이다.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기업을 활용한 지분확보는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는 승계 시나리오다.
니콜라 지분투자 성공은 이 시나리오를 더욱 탄탄히 한다. 니콜라 지분 6.13%는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에서 반씩 갖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에이치솔루션의 100% 자회사이고 한화종합화학은 한화에너지가 지분 39.2%를 보유한 자회사로 에이치솔루션의 손자회사다. 이는 니콜라 지분가치의 상승이 에이치솔루션 기업가치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콜라의 성공적 상장 이후 전문가들은 한화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주)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의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으로 경영승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양사의 합병 시 삼형제가 (주)한화의 지분을 많이 확보하도록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지분가치 상승으로 에이치솔루션이 기업가치가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또한 손자회사인 한화종합화학의 기업공개(IPO)도 계획돼 있는 등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추가적인 요인도 존재한다.
김한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에이치솔루션은 특수관계인 지분율 100%로 지분율이 적은 경우에 비해 합병 후 희석이 적고 한화에너지, 한화종합화학, 한화시스템 등 기업가치가 증대될 수 있는 재원이 많다”라며 “승계 등 지배구조 개편이 추진된다면 (주)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이 합병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병비율 산정 등의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가치가 상승한 니콜라 지분을 매각해 경영승계의 실탄으로 활용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승연 회장의 (주)한화 지분율은 22.65%로 16일 종가 2만3550원으로 계산하면 약 3998억원이 나온다. 이를 증여받는다면 세율 60%를 적용했을 때 약 24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은 에이치솔루션의 자회사·손자회사인 만큼 니콜라 투자금을 회수하면 충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주)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의 합병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는 없다”라며 “니콜라는 사업 제휴를 위해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수소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로 여기는만큼 미국 수소사업 진출의 교두보가 될 니콜라와 관계를 길게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투자금 회수가 급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존재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승계가 급하지 않기 때문에 추후 합병,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며 “확실한 것은 에이치솔루션이 승계에 핵심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손강훈 기자 river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