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이브·현대HCN 매각 걸림돌…'전통 미디어 쇠퇴'
재무적 투자자(FI) 참여 꺼리는 근본적인 배경
매물 매력도 하락에 매도자 우위의 시장 형성 어려워
공개 2020-04-24 09:20:00
이 기사는 2020년 04월 22일 19:0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현대HCN, 딜라이브, CMB 등 유선방송사가 모두 매물로 나오지만 매각전은 조용한 분위기다. 사실상 원매자가 한정된 상황에서 모바일 환경 변화가 도화선이 된 미디어 지형도의 변화가 기존 유선방송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지난해부터 유선방송 시장은 새 판짜기에 분주하다. 지난해 케이블TV 업계 1위였던 CJ헬로(현 LG헬로비전(037560))와 티브로드가 각각 LG유플러스(032640), SK텔레콤(017670)(SK브로드밴드)로 인수·합병되며 유료방송 시장은 3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지난해 대어들의 소속이 바뀌었다면, 올해는 준척급들의 소속이 바뀌려 한다. 
 
하지만 준척급들의 인수·합병 과정은 순탄치 않다. 시장이 현대HCN, 딜라이브 등 매도자 중심이 아니고 KT와 같은 매수자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매수자 우위 시장인 까닭은 재무적투자자(FI)들의 무관심이 크다. FI가 없다 보니 매수 후보가 KT(030200), SKT, LG유플러스로 좁혀지며 이통사 3사 중 한 곳의 의사 결정에 따라 매각 전의 추가 쉽게 기우는 모습이다.   
 
FI가 무관심한 기저에는 '전통 미디어의 쇠퇴'가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매스 미디어(Mass Media)'의 시대였다. 지상파, 메이저 언론사 등 소수의 미디어 채널이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소수의 미디어가 힘을 나눠가진 탓에 어젠다세팅, 게이트키핑 등이 가능했다. 
 
주요 방송사업자들의 2010년대 초반 매출 추이. 출처/방송통신위원회
 
2010년대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전통 미디어가 영향력을 발휘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매스 미디어의 대명사였던 지상파 매출은 2010년 3.65조원에서 2018년 4조원으로 늘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이하 SO)의 매출 역시 2010년 1.93조원에서 2014년 2.35조원까지 늘었다. 당시에는 사모펀드들도 SO사업 인수에 관심이 있었다. 
 
유료 방송 산업에 정통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MBK가 딜라이브를 인수할 당시만 하더라도 케이블 TV가 지금의 유튜브, 넷플릭스처럼, 미래의 모든 것을 잡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면서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미디어 플랫폼의 제반 환경이 바뀌며 전통미디어의 가치가 줄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0년 후반 스마트폰이 일상 속에 완전히 자리 잡으며 '매스 미디어'란 용어는 일상 속에서 접하기 어려워졌고, '1인 미디어'란 용어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방송 채널·송출의 독과점력과 방송 제작의 진입 장벽은 동시에 허물어졌다. 지상파 매출은 2018년 3.80조원으로 2011년 3.91조원보다 줄었다. SO의 2018년 매출 역시 2011년 수준으로 회귀했다. 
 
2010년대 후반 주요방송사업자들의 매출 추이. 출처/방송통신위원회
 
반면 IPTV의 매출은 같은 기간 6200억원에서 3.44조원으로 5.5배 늘었다. 유튜브 역시 증가세다. 2017년 81.5억달러(원/달러 환율 1230원 기준, 10.02조원)에서 지난해 151.49억달러(18.63조원)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통 미디어 중심 그룹이었던 CJ(001040)는 그룹을 재편하며 바뀐 미디어 환경에 그룹을 맞췄다. 과거 CJ는 CJ홈쇼핑(구 39쇼핑), CJ CGV(079160), CJ E&M(현 CJ ENM(035760)), CJ헬로비전(현 LG헬로비전) 등 전통미디어 사업군이 즐비했다. CJ는 유선방송, 홈쇼핑채널, 영화관 등 전통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사업을 주로 영위했다. 
 
2010년 후반 CJ는 CJ헬로비전 지분 50%+1주를 LG유플러스에 8000억원에 매각했다. 또한 최근 트렌드에 맞는 '미디어 커머스'로의 변화를 꾀하며, 2018년 CJ홈쇼핑과 CJ E&M을 CJ ENM으로 합병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한 딜이었다.
 
IB업계 관계자는 주요 유선 방송 매물에 대해 "축구나 야구로 비유하자면, 노장 선수가 FA로 나온 모습"이라면서 "내려갈 일 이외에 남은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유선방송 사업자 역시 바뀐 미디어 환경을 고려해 모두 팔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CMB는 11개 지역케이블방송사를 단일법인으로 전환했고, 현대HCN은 물적분할 후 공개매각을 선언했다. 
 
딜라이브는 가격표를 바꿔달았다. 자회사 IHQ(003560)에 속한 엔터 사업 부문의 영업권을 전액 상각시키며 군살빼기에 들어갔다. 스스로 엔터 사업 부문의 미래 가치를 매우 부정적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딜 관점으로는 자산의 과다계상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 
 
매각 방식도 열어 놨다. 이는 매수자 우위의 시장임을 인정한 셈이다. 야구FA 시장에 비유하자면 지난해 KIA타이거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안치홍 선수가 4년 계약 대신 2+2년의 변형 계약을 한 것과 유사하다. 지난해 스토브리그는 전반적인 프로야구 인기 하락 추세와 대부분 구단들이 합리적 투자 기조를 선언하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최대어로 꼽힌 안치홍은 4년 계약으로 원하는 가격을 받기 어려웠고, 새로운 계약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롯데 자이언츠 안치홍 선수가 지난 1월 28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출처/뉴시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확실한 것은 유선방송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면서 "IHQ 역시 김우빈 부재 후 실적도 적자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열리면 모를까, 의미 있게 흑자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딜라이브 채권단 관계자는 "특별한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지만, 딜라이브의 정상화 방안은 매각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IHQ 관계자는 "(매각에 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고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면서 "일단 팔려야 하니 한 가지 입장만 고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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