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신평 “라임사태 원인은 투자자 고지 불균형”펀드 신용평가 수요는 실질 제로 상태…"굳이 받을 이유 없어""수익률 관점 펀드평가사 이미 있어" vs "시장 신용도에 도움 되는 건 확실"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신용평가사들이 펀드 신용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적 기반은 마련돼 있지만, 이를 의무화하는 명문은 없어, 펀드 신용평가는 결국 시장 자율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펀드 신용평가를 받을 이유를 찾지 못하다 보니 평정의뢰 수요는 메마른 형국이지만, 최근 발발한 라임사태가 펀드 신용평가 확대의 새로운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 이후 일부 신용평가사 등은 펀드 신용평가의 활성화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먼저 칼을 뽑은 것은 나이스신용평가다. 나신평은 ‘라임사태와 펀드평가’ 보고서를 통해 “펀드의 부족한 위험관리 체계 등이 투자자에게 고지되어 자기 판단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면 라임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라임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분업화된 금융투자 시스템에서는 시장 참여자 간의 위험 배분이 복잡해지고 유인체계가 왜곡되면서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신평은 “금융시장 복잡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펀드 신용평가 필요성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신용평가사도 새로운 수익처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3대 신평사는 과점 시장에서 33% 내외의 시장점유율을 균형적으로 유지하며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확보하고 있지만, 매출 대부분이 회사채 등급평정 수수료 등에서 비롯되므로, 성장 동력도 회사채 발행 규모 등 외부요인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최근에는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규모가 늘어나면서 관련 평가수수료가 새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지만, 수수료 구조 및 점유율 유지 사유 등으로 명시된 수수료를 그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신평사도 평판을 토대로 평정의뢰를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므로, 영업적 측면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펀드 신용평가의 법적 기반은 수년 전부터 마련돼 있었다. 2013년 금융당국이 신용평가사 규제를 신용정보법에서 자본시장법으로 이관하면서, ‘금융투자상품과 집합투자기구 등에 신용평가가 가능하다’라는 조항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3대 신평사인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034950)도 펀드 신용평가론을 저마다 갖추고 있다.
평정 수요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일단 채권형 펀드 등만 신용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의 평정원리는 채권의 채무불이행, 즉 원리금 상환 가능성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예측 가능한 미래 현금흐름 등을 기반으로 한다. 달리 말하면, 펀드 신용평가는 현금흐름이 비교적 예측 가능해 신용위험을 측정할 수 있는 기초자산 등에 가능하다. 즉, 수익이 원리금을 토대로 발생하는 채권이나 단기어음 등으로 이뤄진 상품 등에 적용될 수 있다. 이때 신용등급은 포트폴리오 분석, 즉 가중평균된 기초자산 신용등급에 펀드매니저의 운용 실적 등이 가감돼 산출되고, 수익률 등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부동산·선박펀드 등 참여자 및 현금흐름이 비교적 또렷한 경우 ABS 평가처럼 관련 기업의 신용도 보강 등을 통해 자산가치 유지 가능성 등을 평가할 수도 있다. 다만 주식형 펀드는 미래 현금흐름이 주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해 등급을 내기 어렵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 펀드 숫자는 17일 기준 1779개를 기록하고 있다. 사모 1356개, 공모 423개이며, 공모 채권형 펀드의 48%인 203개가 설정액 100억원 미만으로 구성돼있다.
펀드 관련 통계. 공모와 사모를 모두 포함한 값이다. 출처/금융투자협회
특히 펀드 운용사는 대체로 A급 이상의 물량만 골라 담고 있는데, 이 같은 포트폴리오로 구성된 펀드는 리스크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운용보수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즉, 애초에 높은 등급의 채권을 선호하는 데다가 운용보수도 낮다 보니, 결과적으로 운용사들이 펀드 신용평가를 받을 유인이 희박해진다.
2016년 금융위원회가 A급 하단 채권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펀드 신용평가 활성화를 추진한 바 있지만, 현재는 이마저도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당시 금융위는 펀드 신용평가를 통해 개인투자자 투자위험을 낮추고, 동시에 펀드 자체에 대한 신용등급을 제공함으로써 투자등급 하단 혹은 하이일드 수요를 확충하는 기대를 노렸다. 신용도 높은 채권과 하이일드 펀드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펀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수익률과 안정성 모두가 통계상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채권형 펀드의 운용 피(fee)가 그리 높지 않다 보니, 운용사들이 구태여 신용평가를 받을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펀드 신용평가가 활성화되려면 자산운용사 등이 평가를 받을 만한 요인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수익률 관점에서 펀드를 평가하는 업체들이 이미 있으므로, 일부 투자업계는 펀드 신용평가의 실효성이 크게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펀드 신용평가는 간단히 말해 펀드의 안정성 지표가 되는 것이지 수익률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라며 “그런 역할은 굳이 신평사가 나서서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펀드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즉 수익률이 높으면 위험성도 높게 되는 것인데, 펀드에 신용등급이 붙으면 사람들이 안전한 자산 위주로 담게 될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시장규모가 위축될 수 있는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정 규모의 채권형 펀드 등에 신용평가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명문화하는 방법도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펀드 신용평가가 분명 시장 신용도 제고에 유의미한 것은 맞기 때문에 평가 제도화 이야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비용이 수반되는 이슈다 보니 강제하기 어려워 지금은 다소 어정쩡한 상황이 됐다”라며 “지금은 신용평가사들도 수수료를 얼마 붙여야 할지 답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수익률과 위험률이 적절한 선에서 균형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펀드 신용평가는 투자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펀드 신용평가 수요가 거의 없었다 보니 정교화돼야 할 점이 아직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나신평 역시 화두를 던지는 차원에서 보고서를 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