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판지 제조업체 3위 세하의 새 주인으로 한국제지가 선정됐다. 세하 매각 본입찰에는 한국제지, 한창제지, 신대양제지, 범창페이퍼월드 등 복수의 제지업체가 참여했다. 이 중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범창페이퍼월드가 매각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제기를 고려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범창페이퍼월드는 자사가 제시한 인수가격이 우위에 있음에도 한국제지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암코와 삼일PwC는 공식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딜을 선언한 적이 없다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IB토마토>는 세하 딜과 관련해 원매자들이 세하를 탐내는 이유와 제기될 소송 전의 쟁점에 대해 살펴봤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범창페이퍼월드-파빌리온PE 컨소시엄은
세하(027970) 인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곳은 파빌리온 PE다. 그 결과 범창 측과 그 외 대부분의 딜 참여자가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상이하다.
세하의 새 주인으로
한국제지(002300)-해성산업 컨소시엄이 결정된 가운데, 범창페이퍼월드는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소송 전까지 불사하려 한다.
세하 요약. 제작/IB토마토
범창페이퍼월드는 프라이빗 인수 ·합병(M&A)에서 통상적으로 활용되는 프로그레시브 딜 여부를 쟁점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다수의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은 이번 딜의 쟁점은 매물로서 세하의 가치라고 꼽았다. 즉, 세하란 매물이 매력적인 만큼 셀러인 연합자산관리(이하 유암코)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던 딜이라는 것이다. 이를 셀러 우위의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원매자(Buyer) 우위의 시장이었다면 매각주체(Seller)가 원매자를 설득해야한다. 하지만 이번 M&A는 셀러가 우위였기에 원매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매각 주체를 설득해야했다.
구두로 프로그레시브 딜을 확약했는가?
범창페이퍼월드 관계자는 "비록 문서에 프로그레시브 딜이라고 명기되진 않았지만, 프로그레시브 딜이라고 매각주간사 측에서 구두로 이야기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프로그레시브 딜이기에 높은 가격을 써낸 인수 후보자가 우선협상대상자가 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매각주체와 매각주간사가 말하는 사실관계는 이와 달랐다. 매각 측은 프로그레시브 딜이라고 구두로 말한 적도 없고, 가격 인상 제안은 M&A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차원이었다고 전했다. M&A 과정은 가격뿐만 아니라 계약 조건, 법적 조건 등 다양한 쟁점이 있다. 쉽게 말해 한국제지와의 협상 과정 중 매각 측이 썼던 하나의 카드였던 셈이다.
매각 측 관계자는 "본입찰 당시 한국제지와 범창페이퍼월드가 제시한 가격 차이가 컸다"면서 "본 계약에 관련된 조항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차원에서 파빌리온PE(범창과 컨소시엄을 맺은 PE)에게 가격을 올릴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봤다"라고 전했다.
다른 매각 측 관계자는 "프로그레시브 딜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으며, 이는 협상을 직접했던 파빌리온PE도 인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범창페이퍼월드-파빌리온PE 컨소시엄의 협상 주체가 파빌리온PE였다는 사실은 복수의 딜 참여자를 통해 확인됐다.
가격 이외의 다른 쟁점은?
M&A는 가격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지만, 가격만 고려하지 않는다. 수산물 시장 경매처럼 가격을 높게 부르면 끝이 아니다. M&A는 직원들의 고용 승계, 인수 후 통합, 대금 지급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 특히 유암코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인수 희망자(Buyer)가 본인들이 장기적으로 세하를 이끌 수 있는 주인이란 사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다.
한국제지는 이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 딜 초반부터 적극적인 인수 의사를 표현했으며, 특히 지난달에 있었던 세하 경영진 설명회에서도 한국제지 관계자들은 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많은 질문을 했다고 전해진다. 준비를 충분히 한 만큼 한국제지가 인수했을 경우 세하와의 시너지를 세하 경영진과 깊이있게 논의했다. 즉, 둘 간의 충분한 공감대를 이루는 작업까지 진행했다는 의미다.
반면 범창페이퍼월드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경영진 설명회에 참여하기보다는 실사 쪽에 초점을 맞췄다. 조남준 범창페이퍼월드 대표는 "세하 경영진과 알고 지낸 지가 20년이 넘는다"라면서 "30년 가까이 동종업을 했는데 경영진 간담회를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직원을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수를 한다면 고용 승계는 당연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오히려 공장 실사를 직접가서 인수 시 어떻게 할지 설명했고, (세하)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딜에 참여하지 않은 IB플레이어의 판단은?
복수 이상의 IB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딜은 가격이 중요 요인이지만, 가격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유암코는 수익도 내지만, 일부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회사"라면서 "유암코가 가격 만을 위해 프로그래시브 딜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본입찰 마감 후 3주 뒤에 우선협상기간을 발표한 점에 대해선 통상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20년 이상 IB업을 해온 전문가는 "본입찰 이후 3주 뒤에 우협을 선정하는 일은 상식적인 범위"라면서 "비더(인수 희망자)가 많을 경우, 조율해야 하는 일이 많아 시간이 더욱 소요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프로그레시브 딜 여부가 쟁점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그는 "이번 딜이 법원에서 하는 경매가 아니다"라며 "유암코와 삼일PwC는 약속된 범위 안에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취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이번 딜의 진짜 쟁점은 셀러 우위 시장에서 셀러(유암코)를 설득하기 위해 누가 더욱 효과적인 전략을 취했냐는 것"이라며 "만약 세하가 성동조선이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적 공방으로 간다면?
프로그레시브 딜의 공정성을 문제 제기하는 것에 대해 IB업계 관계자와 M&A 자문 전문 변호사들은 상당히 의아해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라면서 "만약 이것(프로그레시브 딜)이 문제가 되면 글로벌IB에는 소송 문서가 쌓여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쓰레기 매립장, 강남 호텔 인수전처럼 무력이 수반된 경우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쟁점 이외에도 범창 관계자는 '한국제지 입찰 가격은 진실성이 떨어진다, 매각 측 유력 관계자들이 모종의 PE를 세웠다'와 같은 내용을 추가적으로 주장했다. 또한 법적 공방도 고려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를 자문하는 법률관계자들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입을 모았다. 한 파트너 변호사는 "범창 측 주장이 믿기도 어렵지만, 만약 그 사실이 맞는다면 입증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인데, 범창 측의 주장은 입증 자체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