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조원태
한진(002320)그룹 회장이 조현아-KCGI-반도건설 연대에 틈을 만들었다.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매각 결정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강성부 대표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들었다. 앞으로 예정된 '전문 경영인' 선임은 특별한 접점이 없는 세 집단의 연대 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003490)은 6일 서울 중구 서소문사옥에서 이사회를 열어 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대한항공 토지와 건물 그리고 인천시 중구 을왕동 소재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지분을 연내 매각하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대한항공 소유 토지. 출처/뉴시스
강성부 목소리, 사실상 처음으로 한진 그룹에 반영
두 건의 매각 결정은 강 대표의 주장과 일치한 사실상 첫 번째 사례다. 그전까지 한진그룹은 강성부 KCGI 대표의 주장을 반영하는 모습을 취했지만 실질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았다.
한진그룹의 차입금의존도, 부채비율을 주로 줄이자는 강대표의 주장에 조 회장은 비전 2023을 통해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강 대표는 부채 감소에 무게중심을 뒀고, 조 회장은 자본 감소에 초점을 맞추며 본질을 비켜갔다.
또한 강 대표가 주장한 거버넌스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설치 등도 반영됐지만 위원회 구성원을 놓고 충돌이 있었다. 그는 주순식 법무법인 율촌 고문과 정진수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를 위원장으로 각각 선임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KCGI는 지난해 11월 성명서를 통해 "이들은 모두 대주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로펌의 관계자들"이라며 "과연 위원회가 대주주의 입김과 무관하게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번 이사회 결정이 사실상 강 대표의 의견이 한진 그룹에 처음으로 반영된 사례다. 강 대표는 별다른 쓰임새가 없는 종로구 송현동의 토지를 매각하고, 왕산레저개발은 사업성을 재검토할 것을 주장해왔다. 두 건 모두 지난해 초 발표한 '한진그룹 신용등급 회복을 위한 5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그는 신용등급 회복을 위해 "왕산마리나, LA 윌셔그랜드호텔 등 항공업과 시너지가 낮은 사업 부문에 대한 투자 당위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왕산레저개발이 소유한 왕산마리나. 출처/KCGI
반면 조 전 부사장은 이번 이사회의 결정으로 향후 구상에 먹구름이 꼈다. 본인이 일궜던 호텔 사업 부지를 처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 전 사장의 경영 복귀를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땅콩회항' 사태로 물러나기 전 호텔사업을 주로 담당했다. 그는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특히 왕산레저개발은 그가 대표이사를 맡았던 계열사다.
전문 경영인 선임, 또 다른 갈등의 씨앗?
'반 조원태'란 목표를 제외하면 셋의 연대는 특별한 접점이 없다. 세 주주 연대가 지난달 말 발표한 공동 입장문 역시 연대의 공식화, 전문 경영인 도입 이외에는 특별한 메시지가 없었다.
하지만 KCGI와 조 전 부사장은 사업 철학, 가치관 등이 상당히 다르다. KCGI가 지적한 한진그룹의 경영, 오너십 등은 조 전 부사장을 염두에 두고 발표한 내용도 상당하다. 강성부 대표와 조현아 전 부사장의 관점 자체가 다르다 보니 시장에서는 연대의 지속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주주총회에 추천할 전문 경영인을 뽑는 과정에서도 기싸움이 팽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인사에 뽑는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둘 간의 갈등이 팽팽할 것"이라면서 "또한 전문 경영인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면 결국 얼굴마담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지금까지는 밖에서 싸웠다면 이젠 물밑에서 싸우는 모습으로 국면이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문 경영인 선임 이후에는 이사회에 누구를 넣느냐로 싸우는 모습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팽팽한 갈등이 예상되는 전문 경영인 선임을 앞두고 조원태 회장은 둘의 사이를 한층 더 벌어지게 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외적으로 강 대표가 1년 이상 요구했던 주장을 받아들이고, 조 전 부사장의 흔적을 지웠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강성부 KCGI 대표. 출처/뉴시스, 유튜브
다만, 아직은 예단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둘 사이를 벌어지게 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면서 "하지만 주주총회까지 변수가 많아 둘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하지만 둘의 얕은 연대가 어느 정도 이어질 것인가는 주요 변수 중에 하나"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