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갈림길에 섰다. 글로벌 철강 수요 둔화, 보호무역주의 확산, 환경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기존의 대량 생산 중심 사업모델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생산 구조와 제품 포트폴리오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정부도 구조조정 지원에 나섰다. 다만 정책 지원은 제도적 뒷받침에 그칠 뿐 감산과 설비 재편, 기술 개발 등은 업계 자율로 맡겨지면서 실질적인 체질 개선은 철강업체가 스스로 시작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에 <IB토마토>는 국내 철강산업이 구조조정에 내몰린 배경과 현실적 한계를 짚어본다. 아울러 고부가가치 철강으로 전환한 해외 사례를 통해 국내 철강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국내 철강업계가 철강 수요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수 시장 부진, 철강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범용재 철강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사업은 주로 수요 산업에 특화된 소재를 개발하거나, 수요가 있지만 공급이 한정된 영역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미 스페셜티 시장에 뛰어든 업체 중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기존 철강산업의 한계를 극복하며 시장성을 증명하고 있다.
포스코에서 생산된 코일.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포스코)
수요 부진 지속에 고부가가치 전환 확대
2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철강사들은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 비중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주로 진입장벽이 높은 특수 소재를 개발하거나, 고난도 제작기술을 적용한 제품 개발 등 방식으로 고부가가치 사업 확대가 추진 중이다.
국내 철강산업이 주목하는 곳은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등 에너지 시장과 항공우주 및 방산 시장이 있다. 특화 시장은 일반 철강 제품으로는 내구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별도의 연구개발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더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소재를 개발하고, 극한 환경에서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다.
아울러 에너지, 항공우주 등 산업은 성장산업으로서 향후 장기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글로벌 군용기 시장은 지난 2024년 483억달러에서 2034년 762억달러로 연평균 4.66% 성장이 예상된다. 민항기 시장 역시 성장이 예상된다. 철강업체들이 성장산업 공급망에 발을 들일 경우 향후 매출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전환에 적극 나서게 된 배경에는 구조적으로 부진해진 범용재 철강 수요가 있다. 현재 철강산업은 내수 건설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일시적인 수요 부진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진출 등으로 구조적 수요 부진에 시달릴 우려도 있다. 국내 제조업 공백은 내수 철강 수요를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아울러 보호무역주의가 전세계적 현상으로 번지면서 철강 수출시장의 허들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업계에서는 스페셜티 철강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가격 경쟁력도 치열해지고 있어 더 이상 규모의 경제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어려워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철강산업 한계 넘는 스페셜티 시장
범용재 철강과 달리 가격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일례로 세아그룹의 세아항공방산소재는 지난해 매출 1287억원, 영업이익 229억원을 기록했다.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17.8%로 국내 철강사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세아항공방산소재는 보잉 등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에 합금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항공소재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경량성과 내구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소재 개발이 까다롭다는 평가다. 따라서 한 번 납품을 시작하면 장기간 공급 계약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아울러 특정 산업에서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높은 강도와 내구성, 내식성, 극저온 특성, 전자기적 특성 등 여러 기능을 갖춰야 하는 만큼, 투자가 요구된다는 점도 진입장벽으로 꼽힌다.
반면 범용재 철강은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제품 간 성능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가격이 선택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된다. 2020년 이후 중국산 철강이 전세계 철강 가격을 억누른 것도 중국 내 공급 과잉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 철강업체들이 대규모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저가 공세를 펼칠 경우 향후 범용재 철강 비중이 높은 업체일수록 흔들릴 공산이 크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체의 고부가가치 철강 전환에 대해 <IB토마토>에 "포스코 등 국내 대형 철강업체가 고부가가치 철강 개발에 적극 나서는 이유도 향후 수익과 함께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