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산업은 저성장 기조와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수익 모델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시니어케어' 사업은 보험업계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보험사는 보장성보험 판매와 자산운용 이익에 의존하는 데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일본·독일·프랑스·싱가포르를 직접 찾아 각국의 시니어케어 산업 현황을 살펴보고, 국내 보험시장이 참고할 수 있는 전략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공적보험과 상호조합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프랑스에서도 노후보험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니어케어’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어서다. 비용 측면에서도 현재의 공·사 혼합 건강보험 체계가 모든 것을 충당할 수는 없다.
프랑스 파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FFA(France Assureurs)는 사보험 연맹체다. 프랑스에서 운영되는 보험사, 재보험사 등 총 253개 회원사를 대표한다.
<IB토마토>가 만난 플로랑스 뤼스망(Florence Lustman) FFA 회장은 “프랑스에서 장기요양보험(Assurance dépendance)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으며 앞으로 그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뤼스망 회장은 “프랑스 국민의 고령화에 따라 신체적 자율성 상실에 대한 문제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다”라면서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장기요양보험 상품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보험 가입자 비중도 다른 상품군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다만 고령화 문제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전경 (사진=IB토마토)
아멜리와 뮤츄엘, ‘공·사 혼합’으로 노후 보장
프랑스에서 고령자를 위한 노후보험 보장 체계는 크게 국가 건강보험인 아멜리(Assurance Maladie)와 보완 건강보험인 뮤츄엘(Complémentaire santé, Mutuelle) 두 가지로 구성된다.
아멜리는 프랑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 의료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입원비부터 진료비, 약값 등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데, 비용의 일정 부분을 환급해주는 구조다.
반면 뮤츄엘은 상호조합 개념으로 민간 보험사가 다루는 영역이다. 아멜리에서 보장하지 않거나 일부만 취급하는 것(치과·안과·보청기·입원실 추가 비용 등)을 보완한다. 전체 성인 인구의 96% 이상이 가입했을 정도로 보편적이며 이 역시 비용을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이 외에는 생명보험(Assurance vie), 사망보험(Assurance décès), 장기요양보험, 장례보험(Assurance obsèques)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생명보험과 사망보험은 우리나라의 저축성보험과 같이 단순 보장 외에 저축·투자 기능을 겸한다. 즉 노후 자산관리 목적이 있다.
‘의존성 보험’ 장기요양보험, 대형사 위주 판매
장기요양보험은 ‘의존성 보험’으로도 불리는데, 신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잃어 의존적인 상태가 되면 보장받을 수 있다. 보험사가 일시금을 지급하거나 연금 형태로 월별 혹은 분기별 제공하는 방식이다.
서비스 형태도 있으며 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식사 지원, 화장실 이용 도움, 가사 지원 등이 있다. 뤼스망 회장은 이 중에서도 특히 주택개조를 강조했다. 집 안에서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의존적인 상태 수준을 확인하기 위한 평가표도 있다. 4개 정도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데 옷 입기, 화장실 가기, 씻기, 혼자 이동하기 등이다. 자율성 상실 정도에 따라 중증인지 경증인지 나누고, 완전 의존인지 부분적 의존인지가 구분된다. 이 결과를 반영해 서비스와 보장 금액이 달라진다.
장기요양보험 필요성이 커지는 프랑스 사회 (사진=IB토마토)
장기요양보험 상품은 주로 대형 보험사들이 제공하고 있다. 현지 통역가를 통해 조사한 결과, 악사(AXA), 그루파마(Groupama), 말라코프(Malakoff Humanis) 등이 선보이고 있었다.
악사의 장기요양보험 상품은 40세부터 75세까지 가입 가능하다. 자립 상실로 의존적인 상태가 되면 재정적·서비스적 지원을 제공한다. 피보험자뿐만 아니라 그 보호자(Aidant)도 고려된다. 보조 지원 컨설팅부터 행정 절차 도움 등이 있다. 연금의 경우 월간 보장 형태며 계약할 때 미리 정한 금액을 평생 지급한다. 가벼운 의존 상태 발생 시에는 주거 개조나 보조 설비 비용을 지원해주는 옵션도 있다.
그루파마는 뮤츄엘 상품에서도 의료 지원, 보조 서비스 내용이 있다. 가사 지원, 이동과 운송 지원, 돌봄 서비스, 응급 호출 서비스 등이다. 특히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가사 도움, 간병, 반려동물 돌봄, 보조 서비스 등의 조항이 포함된다. 장기요양상품은 악사 것과 대부분 유사했으며, 추가적으로 물리치료사 파견, 보호자 휴식 시 대체 인력 파견 등이 포함됐다.
말라코프는 뮤츄엘 상품에 특별 옵션을 넣어 치유 요양, 침술, 심리치료, 영양 상담 등을 제공한다. 장기요양보험에서는 요양원 입소비 지원 항목도 있다. 말라코프는 뮤츄엘과 장기요양보험, 사망보험 등을 같이 묶어서 패키지 형태로도 판매한다.
플로랑스 뤼스망 프랑스 사보험연맹(FFA) 회장 (사진=IB토마토)
장기요양보험, 건강보험 편입 추진…부담 줄여 ‘활성화’
FFA는 장기요양보험 활용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인데, 해당 보험을 보완 건강보험인 뮤츄엘 속으로 편입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과중한 비용 문제를 상호조합 방식으로 해결해보겠단 것이다.
뤼스망 회장은 “중산층에게는 요양보험이나 관련 서비스 비용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라면서 “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연맹의 방향은 이러한 문제를 다 같이 다루면서 필요한 곳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요양보험이 뮤츄엘 체계 속으로 들어가면 전체 가입자가 비용을 함께 분담하게 되며 그 결과, 뮤츄엘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 FFA 측은 장기요양보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된다면 상승 폭이 합리적인 수준에 머물고 충분히 수용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밀리 테포 파리 요양원장 (사진=IB토마토)
국가 중심 ‘요양원’ 사업…재가요양 필요성 확대
프랑스에서 요양원 사업은 보험업과는 철저히 분리돼 있다. 보험은 보조적인 역할이다. 요양원 운영 주체는 공립과 사립 절반씩 나눠져 있으며, 사립은 상업화에 따라 대형 브랜드, 프랜차이즈, 협회 등으로 구성된다.
요양원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은 의료·간호, 간병, 거주 관련 지원 등 크게 세 가지 부문이 있다. 한 달 기준으로 약 3000유로(한화 500만원) 정도다. 비용은 APA(Allocation Personnalisée d’autonomie)나 에드소시알(Aide sociale) 등 공적 체계서 대부분 지원받는다.
장기요양보험 상품으로 요양원 입소에 들어가는 비용을 일부분 충당하기도 하는데, 이는 공립에 적용되는 내용은 아니고 사립 요양원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 역시 요양원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재가 요양 서비스가 사회 전반적으로 더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리의 한 요양원(Ehpad Sara Weill Raynal) 원장으로 있는 에밀리 테포(Emilie Thepault)는 “프랑스도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라면서 “모든 사람이 요양원에 들어올 수는 없기 때문에 재가 서비스가 더 활발하게 성장해야 하고, 연계 협업도 늘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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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