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업황 회복을 발판으로 신용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과거 불황으로 흔들린 재무 체력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높은 신용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신용등급 상승을 목표로 현금흐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신용평가에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은 기업의 유동성 창출 능력과 부채 상환 역량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이기 때문이다. 최근 조선업계가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국내 대형 조선소들의 현금흐름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IB토마토>는 국내 대형 조선소들의 신용도 현황을 살펴보고, 현금흐름 개선 전략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한화오션(042660)이 지난해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주 증가에 따른 운전자본 부담으로 대규모 영업활동현금흐름 유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주 확대에 따른 계약자산 증가로 2조2천억원이 현금 유출에 반영되면서 현금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계약자산은 실제 수주 대금을 받기 전에 공사 진행에 따른 일시적 현금 유출이라는 점에서 재무적 리스크로 평가하지는 않고 있다. 공정률이 진척되면 발주처로부터 대금이 순차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계약자산은 현금 유입으로 전환된다. 여기에 한화오션 수주 잔고가 증가 추세고, 생산성 개선에 따라 향후 고수익 선박 인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신용평가업계는 한화오션의 현금창출력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계약자산 급증에 현금 지출 확대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난해 매출 10조7760억원, 영업이익 237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7조4083억원)이 45.5% 증가하면서 영업손익이 1965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발생하면서 한화오션의 당기순이익도 528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 당기순이익(1600억원)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실적이다.
그러나 매출 성장이 현금흐름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한화오션은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2조9046억원의 현금 유출이 나타났는데, 전년(1조9392억원)보다 약 1조원 가까이 유출 폭이 늘었다. 이는 계약자산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운전자본 부담으로 인한 현금 지출도 큰 폭으로 늘었다.
한화오션의 운전자본 부담에 따른 현금 유출이 지난해 3조1578억원에 달했다. 그 중 계약자산 증가로 인한 현금 지출이 2조1964억원으로, 전체 운전자본 지출의 70%를 차지했다. 계약자산은 조선소가 선주에게 향후 받을 대금을 의미한다. 보통 헤비테일(선박 인도 시기에 대금 대부분을 지불) 방식으로 대금 지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건조 중인 선박이 많아질수록 계약자산도 큰 폭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계약자산 증가로 인한 현금흐름 감소는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수 있다. 선박은 보통 주문에서 인도까지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계약자산의 현금 전환은 최대 3년 이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신용평가사들도 이러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소의 신용을 평가할 때 단기 현금흐름보다 2~3년 후의 중장기 현금흐름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공정 안정화 비용이 축소되고, 고선가 선박 물량의 매출이 증가함에 따라 한화오션의 수익성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 분석했다.
생산성 개선 뚜렷…현금흐름 개선 전망
계약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하려면 선박 인도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생산성 개선이 필요하다.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 어려운 경영 환경으로 인해 숙련공들이 떠나면서 생산성 저하를 겪었으나, 지난해 생산성 개선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주력 사업인 상선 부문에서 지난해 1MH(Man Hour, 작업자 1인이 1시간 동안 수행하는 작업량)당 매출은 25만8000원으로 전년(22만3000원) 대비 15.7% 증가했다. 이는 근로자 1인이 시간당 창출하는 매출이 크게 증가했음을 의미하며, 선박 인도 속도를 높이고 계약자산의 현금 전환 속도를 앞당기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은 비교적 현금흐름 개선 효과가 적은 저수익 선박의 인도를 앞당길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오션의 저수익 선박 비중은 30%이하로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생산성 개선이 지속되면 저수익 선박 비중은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현금 유입으로 전환되는 수주잔고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오션의 수주잔고는 30조4319억원으로, 전년(25조6579억원)보다 18.6% 늘었다. 선박 가격이 현재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수주한 선박일수록 현금흐름 개선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화오션은 지난해 11월 회사채 발행에도 성공했다. BBB+(안정) 등급을 받은 회사채의 평균 수익률은 1.5년물 5.645%, 2년물 6.263%였다. 그러나 한화오션 회사채는 수요예측 결과 발행 금리는 1.5년물이 4.55%, 2년물이 4.69%를 기록해 이자율을 1%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한 CP(기업어음), 단기사채 등 단기 자금 조달을 지난해 이후로 중단하며 상환 압박을 줄였다. 단기 자금은 만기가 짧아 이자 부담이 크고, 상환 압박도 강하기 때문에 이를 줄인 것은 현금흐름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한 신용평가업계 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한화오션은 타 대형조선소보다 공정 지연 문제가 늦게 해소된 까닭에 현금흐름 등 개선 속도가 더딘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생산성 개선 문제가 해결된다면 현금흐름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