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한국을 미래 모빌리티 기술의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이다. 하지만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자산 규모가 차입금 규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태라 이러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경우 회사가 직면할 재무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은석 현대차 MLV프로젝트2실 실장이 '디 올 뉴 팰리세이드'를 소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4조원’ 사상 최대 규모 투자 나서는 현대차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005380)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는 올해 국내에서 총 24조3000억원의 투자를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종전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20조4000억원 대비 19.1%(3조9000억원) 증가한 규모다.
이번 투자 계획은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현대차그룹이 한국을 ‘모빌리티 혁신 허브’로 육성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올해 신년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항상 위기를 겪어왔고, 이를 극복해왔다"라며 위기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체질 개선과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투자를 차세대 제품 개발, 핵심 신기술 선점, 전동화 및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가속화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연구개발(R&D)에 11조5000억원 △경상투자에 12조원 △전략투자에 8000억원을 각각 집행할 예정이다.
연구개발 투자는 전기차(EV)와 SDV 전환 대응 원천기술 개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수소 제품 개발 등 핵심 역량 확보를 목표로 한다.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21개 전기차 모델 풀라인업을 구축하고,
기아(000270)는 2027년까지 다양한 PBV(목적기반차량) 포함 15개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경상투자는 EV 전환 및 신차 대응 생산시설 확충, 제조기술 혁신, 고객체험 인프라 보완에 사용된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는 초대형 SUV 전기차 모델 생산을 시작으로 다양한 차종을 양산할 예정이며, 기아 화성 EVO 플랜트는 하반기 완공 후 고객 맞춤형 PBV 전기차를 본격 생산할 계획이다.
전략투자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 미래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EV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혁신적인 자동차 생산 공법인 ‘하이퍼캐스팅’을 도입하고, 수소 버스와 트럭 개발, 수소충전소 구축 등 HTWO 그리드 솔루션 기반의 수소 생태계 구축에도 나설 예정이다.
부채 규모 대비 현금성자산 ‘부족’…투자 재원 어떻게 마련하나
하지만 현대차가 가진 현금성자산으로는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금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차의 현금성자산은 15조원에 불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단기금융상품(6조7000억원)을 합쳐도 21조7000억원 수준이다.
게다가 회사가 가진 현금성자산은 부채를 상환하기에도 모자란 상태다. 현대차가 1년 내에 상환해야 할 유동부채는 67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단기차입금은 6조3000억원이며, 만기가 임박한 유동성장기부채도 21조6000억원에 이른다. 만기 도래 차입금을 해소하고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3분기 현금흐름도 좋지 않아 이번 투자 계획으로 인해 재무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분기 현대차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2조9588억원을 기록했다. 회사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적자인데도 투자활동으로 2조6255억원을 소요했으며, 부족한 재원을 은행 차입 등 재무활동을 통해 2조6077억원을 유입했다.
현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한 결과 잉여현금흐름(FCF)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2023년 현대차는 9조5895억원의 FCF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1~3분기 누적 기준으로도 7조3550억원의 적자를 냈다. FCF가 적자라는 것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으로는 투자금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IB토마토>는 현대차 측에 최근 발표한 투자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질의했으나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