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생존기로)③DX가 바꾸는 판도…국내 기업 경쟁력 확보 시급
AI, 디지털 트윈 등 디지털 기술 통해 혁신하는 글로벌 정유업계
국내 정유사, 디지털 전환 속도 느려 "퇴행적 모습도"
공개 2024-12-30 06:00:00
이 기사는 2024년 12월 26일 17:0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정유업계가 대통령 탄핵 국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등 다양한 대내외 변수 속에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급격한 유가 변동과 정제마진 축소, 고환율 등으로 인해 불안정성이 심화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구조조정 압박까지 겪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정유업계가 직면한 현안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위기를 극복할 혁신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또,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탈탄소 움직임에 우리 정유업계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넷제로 시대를 맞이한 정유산업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정유산업의 디지털 전환(DX)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에너지 생산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을 도입해 비용 절감과 생산성 극대화를 이룬 글로벌 사례들은 이미 업계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유사들은 여전히 기술 도입과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미국 쉐브론·엑슨모빌, 기술로 비용 절감 및 생산성 극대화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정유기업 중 하나인 쉐브론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운영 시스템을 통해 플랜트, 즉 공장 설비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디지털 센서를 활용해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AI로 분석해 고장 예측 및 유지보수 일정을 최적화한다. 이를 통해 회사는 연간 1억달러 이상의 운영비용 절감을 달성하며 플랜트 가동률을 95%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쉐브론은 또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플랜트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며 생산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미국의 엑슨모빌 역시 공급망 관리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원자재 조달과 제품 유통 과정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개선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실시간 추적과 거래 검증을 가능하게 해 물류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 엑슨모빌은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 운영비를 연간 약 5억달러 가량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거대 정유사 BP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정유 공장의 가상 모델을 운영하며, 공정 최적화와 실시간 상태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BP는 생산 손실을 최소화하고 환경 규제 준수율을 99%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BP는 추가적으로 탄소 배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에너지 사용 최적화를 실현하고 있다.
 
국내서도 분주한 디지털 전환 움직임 
 
국내 정유사들도 글로벌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디지털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울산콤플렉스(CLX)에 AI와 DX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플랜트를 본격 도입하고 있다. 공정운전 자동화, 설비 고장 예측 솔루션 등으로 연간 1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사람이 조작하던 공정 변수를 시스템으로 자동화하는 공정자동제어(APC)와 고장이 예상되는 장비를 미리 교체하는 고장예측솔루션은 각각 연간 20억~3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분석된다.
 
SK이노베이션은 엔지니어의 현장 경험 부족으로 사고 위험이 커질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엔지니어 기술 챗봇’을 개발해 주니어 엔지니어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증강현실(AR) 기기를 통해 현장 작업 효율을 높이고, 로봇을 활용한 시설 감시와 가스 누출 점검도 시도 중이다.
 
GS칼텍스는 여수공장에서 AI 중심의 DX를 추진하고 있다. 설비 통합 관리, 공장 운영 및 생산 최적화, 탄소 저감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0여 건 이상의 DX 사례를 도입했으며, 2030년까지 약 10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데이터 분석모델 20건을 발굴, 수행 중이며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을 통해 공급망 불안정성을 완화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이를 바탕으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등대 공장' 인증을 추진 중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설비 고장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는 빅데이터 기반 스마트 플랜트를 구축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한 공정 최적 운영시스템을 통해 최적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운전 조건을 도출하며, 업무 현장의 데이터 통합 관리 등으로 부서 간 소통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 정유사, 글로벌 격차 해소는 '과제'
 
이처럼 국내 정유업계는 DX 기술을 도입하며 빠르게 따라잡고 있지만, 글로벌 선도사와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쉐브론과 엑슨모빌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용 절감 효과가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사례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기술 도입 이후 통합적 운영 관리나 데이터 활용 역량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들에 비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근 한국의 생성 AI 사용 빈도가 세계 20위라는 보도가 나왔다. 심지어 한국 국력이 G7 안에 드는데도 AI 기술을 오히려 쓰지 못하도록 하는 퇴행적인 기업도 있다"면서 "디지털 전환에 있어 해외 글로벌 기업에 비해 한국 기업들이 상당히 느린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비용 절감에 그치지 않는다. 설비의 고장 가능성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정유사가 겪는 고환율, 정제마진 축소 등의 외부 리스크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정유사가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 환경 규제 강화 속에서도 안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 은퇴로 정유 플랜트 사고가 급증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인력 세대교체로 인한 기술 단절 문제를 디지털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정유업계가 AI, DX기술을 통해 생산 현장에 혁신을 도입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제보하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