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고금리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기존 5.5%에서 0.5%p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은행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급격한 금리 인하는 어렵다. 물가와 환율이 더 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존 금리를 유지하기에는 가계부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당분간 중금리시대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IB토마토>는 현재의 금융 환경을 분석하고, 주요 자금조달 시장의 흐름을 검토해 향후 한국 금융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조망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올해 한국 주식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와 수출경기 호조라는 통상적인 호재에도 불구하고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는 금리 인하의 긍정적 효과보다 경기 침체 우려와 투자 심리 위축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시장 역시 이전과 같은 활황을 기대하기 어려워졌으며, 주식발행시장(ECM)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금 조달 격차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에도 주식시장 부진 '여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9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상장주식 7조3610억원을 순매도했다. 2021년 8월 기록한 7조8160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지난 8월 이후 2개월 연속이다.
5일 오전 하나은행 딜링룸 (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 7월까지만 해도 국내 주식시장은 기대가 컸다. 올 상반기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22조9000억원을 순매수해 관련 통계 집계 기준 최대 액수를 기록했다. 보유잔액도 859조2440억원에 달했고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비중은 30%를 회복했다. 7월에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져 외국인은 2조4960억원을 순매수해 보유비율 30.1%를 기록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앞다퉈 하반기까지 이 같은 훈풍이 계속될 것이란 낙관론을 이어갔다. KB증권과
신영증권(001720)은 코스피지수 상단으로 각각 2970선, 2950선으로 제시했고
NH투자증권(005940)은 상단이 3150선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이 무색하게 하반기 국내 주식시장은 금융위기급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2024 블랙 먼데이로 지칭되는 8월5일이다. 현지시간으로 8월2일 발표된 미국공급관리자협회(ISM)의 제조업구매관라지지수(PMI) 하락, 취업자 증가 둔화로 촉발됐다. 여기에 7월31일 결정된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세계 각국에 투자된 일본계 자금이 빠지는 엔케리 트레이드 청산이 일부 실현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을 포함한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이도 잠시, 이튿날부터 세계 주요 증시는 반등에 성공했지만 국내 증시는 두 달 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9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와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발표라는 겹호재가 있었지만 국내 증시 부진은 계속됐다. 미국과 일본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와중에도 2600선 내외에서 고전 중이다.
금리 인하에도 ECM 영향 '미미'
통상적으로 금리 인하는 주식시장에 있어서 호재로 여겨진다. 시장에 자금이 풀려 투자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이 금리 인하 수혜를 입지 못하는 이유는 금리 이외에 복합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경기 침체와 위험자산 투자심리 감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52조3489억원으로 전월 동기 대비 8546억원 줄어들었다. 지난 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얼어붙은 심리를 반영한다. 이에 따라 거래량도 감소해 10월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10조4313억원으로 3개월 연속 10조원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아이엠증권)
실제 국내 통계청이 지난 9월30일 발표한 ‘2024년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경기의 현재 흐름을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다.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지난 3월 3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6개월째 내림세를 보였다.
게다가 연내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30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는 등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원인이다. 하나금융연구소는 '2025년 부동산시장 전망'을 통해 "정책금융 확대로 촉발된 가계대출 급증과 수도권 주택가격 급등이 걸림돌로 급부상하며 정책 전환 시점은 지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현 아이엠증권 연구위원은 <IB토마토>에 “현재 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의 유동성 공급보다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심리 감소가 더 크게 시장에서 작용하고 있다”라며 “근원적으로는 글로벌 경제 회복에 따른 내수 회복과 개별 기업의 성장이 국내 주식을 뒷받침해야 하지만 각국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단순히 금리 인하만으로는 주식시장의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주가 부진, 유증에 영향…IPO시장, 대형주에 몰릴 수도
8월부터 시작된 국내 증시 불황은 주식자본시장(ECM)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특히 유상증자 시장에선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딜 가뭄이 이어졌다. 유상증자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에 따라 조달 가능 자금 여력이 결정된다. 금리 인하로 조달비용 부담이 줄었지만 8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주가 부진으로 유상증자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국내 유상증자 발행액수는 1486억원으로 전월 대비 47.7% 감소했다. 특히 중소기업 유상증자가 전월 2838억원에서 662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유상증자의 경우 시장 상황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데 지금으로서는 전체적인 시장이 부진한만큼 대주주 지분율 희석문제부터 수요문제까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졌다"라며 "앞서 2022년까지 다수의 코스닥 상장사가 메자닌을 발행했고 곧 만기가 돌아와 채무 상환을 위한 자금 조달을 고민 중이지만 쉽사리 유상증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진=한국거래소)
기업공개(IPO) 시장은 대체로 금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IPO 준비에 3년 이상 걸리는 호흡이 긴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수월해져 IPO 시장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배당정책을 앞세운 서울보증보험의 경우 금리 인하로 배당 여력이 커져 상장 과정에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2차전지와 로봇, 헬스케어 등 주요 성장기업도 미래가치 할인율이 낮아져 시장가치를 더 높게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여전한 증시 불안과 금융당국의 엄정해진 잣대는 과제다. IPO가 일부 대형주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장 준비기업의 차별화가 중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일부 중소형사의 경우 상장 일정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출격 준비 중인 대어로는 LG CNS와 DN솔루션즈가 있다. 글로벌 3위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DN솔루션즈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4조원에서 최대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LG그룹의 IT 서비스를 도맡는 LG CNS 역시 시가총액은 상장 후 5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IPO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하반기 그간 상장을 미뤘던 몇몇 대형사들이 더 이상 미루면 상장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에 서둘러 상장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하지만 지금 시장 상황이 대형사의 IPO를 받을 만한 여력이 없기에 자금이 몰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