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배터리소재 기업들이 적자 행진을 이어가며 투자 축소와 일부 사업 철수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반면 중국 배터리소재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과 저렴한 원가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배터리소재 산업 위기가 배터리셀 업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정책 변수까지 겹치고 있어 악재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에코프로비엠)
적자 지속과 구조조정에 직면한 국내 배터리소재 산업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247540)은 올 3분기 4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연속적인 적자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함께 주요 고객사 주문 감소로 생산 라인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자 포항에 건설 중인 대규모 양극재 공장 준공 시점을 2년 이상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음극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포스코퓨처엠(003670)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3분기 회사의 음극재 부문에서 3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수요 급감에 따라 음극재 생산 라인의 가동률도 지난해 50%에서 올 평균 30%까지 떨어져 사실상 사업 축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엘앤에프(066970) 또한 3분기 724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신규 음극재 사업 진출 계획을 보류했으며, 기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고전 중인 반면 중국은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국산 대비 20~30% 저렴한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룽바이, 후난위넝, 베이징이스프링 등은 양극재 부문에서 각각 400억 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음극재 시장에서도 산산과 BRT가 견고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은 정부 지원에 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통해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는 한편, 자국 소재 기업들에게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술 개발과 생산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저렴한 전기료, 낮은 인건비 등 생산비 절감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압도적인 중국산 가격경쟁력…중국산 배터리소재 유입률도 높아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조차 중국산 소재를 대거 사용하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배터리 소재 수입량의 약 70%가 중국에서 유입되고 있으며, 양극재와 음극재는 각각 72%, 6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가격 경쟁에서 밀린 결과일 뿐 아니라, 국내 소재 공급망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중국산 양극재의 톤당 평균 가격은 3000달러 수준으로 한국산 대비 30%가량 저렴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내 배터리 산업 전체가 중국산 소재 의존도에 더욱 깊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소재 산업 위기는 배터리셀 제조 업계로도 번질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소재와 배터리셀은 긴밀하게 연결된 공급망 안에서 작동하고 있어 소재 부족은 곧 배터리셀 생산 차질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국내 배터리셀 제조사들은 미국, 유럽 등지에서 대규모 투자와 생산 기지 확장을 진행 중이지만, 소재 공급망의 불안정이 지속되면 이들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는 배터리 수요 감소로 이어져, 배터리셀 제조사들이 안정적으로 소재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될 위험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국내 셀 제조사들은 첨단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지만, 국내 소재 산업의 부진은 결국 이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단기적으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이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불안, 원자재 가격 변동성, 그리고 기술 독립성 상실 같은 심각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배터리 소재 업계의 불안정은 곧 배터리셀 업계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 배터리셀 제조는 고도의 정밀성과 안정적인 소재 공급이 핵심인데, 현재처럼 소재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공급망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한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한국 배터리 업계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촉진했지만, 최근 정치적 변수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IRA 폐지 주장, 높은 관세 부과 공약은 국내 기업들에 큰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