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롯데그룹이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롯데글로벌로지스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년 초 재무적 투자자(FI)의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예고된 가운데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차액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맞은 가운데 IPO로 조달한 자금이 새어나갈 위기다.
자산 재조정 미미…유동성 위기 자초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계열사인
롯데케미칼(011170)의 특약 사항 조정 관련 신용보강을 위해 그룹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할 뜻을 밝혔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사진=롯데)
앞서 롯데케미칼은 제52회 공모사채부터 제60회 공모사채 발행에서 상각차감전이익(EBITDA)이 이자비용의 5배 이상을 유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의 2022년부터 지속된 적자 누적으로 특약 사항이 지켜지지 않아 기한이익상실(EOD·채권자가 대출금을 만기 전에 조기회수 하는 것)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맞은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의 경영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건전성을 위해서는 비주력 계열사 매각이나 자산 매각과 같은 장기적 안목을 가진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있어야 하지만 롯데그룹은 그런 과정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IB토마토>의 조사에 따르면 1967년 한국법인 창립 이래 롯데그룹 산하 계열사 중 없어진 곳은 총 81곳이다. 이중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매각한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를 제외하면 대다수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법인이 말소됐다. 사실상 법령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사업 매각을 제외하면 인수한 기업을 되팔지는 않았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롯데그룹이 투자한 부동산 자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롯데칠성(005300) 물류창고 부지다. 시가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부지를 롯데그룹은 물류창고로만 사용했을 뿐 매각이나 개발을 진행하지 않았다. 다만 롯데그룹은 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용지로 용도변경이 이뤄질 때까지 끈질기게 버텼다.
하지만 이 같은 기업운영은 오히려 패착이 됐다. 지난 2011년 신동빈 회장의 취임 이후 롯데그룹은 공격적인 기업 인수로 사세를 확장해왔다. 하지만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나 자산 매각은 없었고, 이는 현재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는 평가다.
IPO로 급한 불 끄려는 롯데
사실 롯데그룹은 고 신격호 명예회장 시절 IPO에 부정적이었다. IPO는 회사를 헐값에 파는 것이라는 고 신 명예회장의 경영방침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의 실권을 쥔 이후 IPO는 기업구조 개편과 자금 확보의 창구역할을 했다.
하지만 상장 계열사는 IPO 전후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대부분 내수 중심이라 성장 한계가 있어 상장 이후 주가는 별다른 오름세를 보이지 못했다.
신 회장의 지주사 출범 이후 첫 IPO였던 롯데이노베이트(구 롯데정보통신)의 경우 2018년 당시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해 흥행에 실패했다. 당시 롯데이노베이트는 희망공모가로 2만8300원에서 3만3800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최종 공모가는 2만9800원으로 결정됐다. 이후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다 현재는 2만원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2019년 상장된 롯데리츠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358.06 대 1의 경쟁률로 흥행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2022년 고금리 이후 리츠주에 대한 시장의 외면으로 현재 공모가 50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3000원대에서 거래 중이다.
2021년 IPO를 진행한 롯데렌탈도 당시 증시 활황기에 힘입어 경쟁률 217.6대 1를 기록했다. 공모가도 희망범위 최상단인 5만9000원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상장 이후 주가는 2만원대까지 내려갔다가 현재는 3만원 내외로 형성되고 있다.
기업가치 하락 '걱정'…FI에 차액 물어줄 수도
이런 상황에서 내년 1월로 예정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IPO를 두고 롯데그룹과 주관사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상장을 위한 상장예비심사 청구까지 마친 상태다.
문제는 그룹 입장에선 이번 IPO에서 기업가치를 높게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재무적투자자(FI)가 투자회수(엑시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약정에 따라 실제 공모가가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에 미달할 경우 롯데지주 측에서 차액을 물어줘야 한다.
(사진=롯데글로벌로지스)
현재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최대주주는 롯데지주(46.04%)다. 다음은 사모펀드 엘엘에이치(LLH)로 지분 21.87%를 보유 중이다.
지난 2017년 총 2789억원을 출자할 당시 엘엘에이치는 최소한의 수익을 담보하기 위해 풋옵션 조건을 걸었다. 행사 단가는 주당 평균취득단가 3만7337원에 연복리 3%를 얹었다. 내년 상반기 기준 1주당 풋옵션 단가는 4만7298원선이다. 이에 내년 엘엘에이치가 행사할 수 있는 풋옵션 총액은 3534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제출된 증권신고서 상 상장 예정 주식 총수는 4164만4166주로 이중 발행 예정인 주식은 1494만4322주다. 아직 구주매출 비중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 시장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50% 비중을 적용하면 상장 후 엘엘에이치가 매도 가능한 주식수도 총 1494만4322주가 된다. 이 주식이 3534억원의 가치를 내기 위해선 2만3647원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이를 상장 후 주식 수에 대입하면 9848억원으로 계산된다. 즉 기업가치가 1조원은 돼야 엘엘에이치에 차액을 물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가치가 1조원이 될지는 미지수다. 회사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07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2.8%로 순이익은 252억원이다. 전년 동기 87억원에 비해서는 3배 가까이 된다.
경쟁기업과 비교하면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비슷한 CJ대한통운의 PER은 8.7배, 한진은 15.2배로 두 개사 평균 PER는 11.9배다. PER는 시가총액을 당기순수익으로 나눈 값이다. 이를 롯데글로벌로지스 올 상반기 순이익을 연 환산 수치인 503억원에 대입하면 5986억원으로 롯데그룹 기대치에 한참 못미친다.
이번 상장에선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016360)이 대표 주관사를 맡았고 공동 주관사는 KB증권이다. 국내 IPO 주관에선 상위 클래스 증권사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이번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상장에 있어서는 진땀을 빼고 있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증시 입성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IPO 시장이 침체된데다 일반 투자자들의 공모주 청약 열기도 식었기 때문이다. 자칫 실권주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롯데지주가 LLH에 차액이 아닌 3543억원을 온전히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최근 공모주 투자 열기가 식으면서 기업가치 평가가 보수적 기조로 바뀌기 시작했다”라며 “동종 업계의 기업가치수준, 실권주 리스크까지 발행사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