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을 바라보는 최태원 회장의 냉정한 시선
"SK계열사 주가 전반적 저평가"
"현재가치의 적정한 반영보다 미래가치를 지금 인정받는 것이 중요"
공개 2020-11-05 09:30:00
이 기사는 2020년 11월 03일 14:3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매년 10월 그룹 내 최고경영자(CEO)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새로운 경영 전략 메시지를 던진다. 올해는 각 사를 향해 미래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스토리를 강조했다. 
 
'친환경·바이오·전기차·반도체' 등을 모두 포섭한 이완재 대표가 이끄는 SKC(011790)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SK바이오사이언스를 보유한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006120)는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박정호 대표의 SK텔레콤(017670)과 김준 대표가 선장으로 있는 SK이노베이션(096770)은 냉정한 평가를 들었다. 
 
 
지난 달 21일부터 23일까지 SK(034730)그룹은 '딥 체인지의 실행, 파이낸셜 스토리'를 주제로 CEO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각 계열사 CEO들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발표했다. 
 
'파이낸셜 스토리'란 주제가 낯선 터라 세미나에서 오갈 내용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BM(비즈니스 모델)변화와 미래 성장 포트폴리오 구축 등으로 기업가치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인다'라는 내용이 생경했다. 이에 SK의 주요 계열사는 세미나 개최 전 외부 전문가들에게 그룹 전반적인 투자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최근 주식시장은 미래가치가 각광받고 있다. 꿈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PDR(Price to Dream Ratio)'이란 지표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한국투자증권은 'PDR 해몽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SK그룹 내 계열사들은 미래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SK그룹은 5G,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SK디스커버리 계열, SK바이오팜, SKC 등을 제외하면 SK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저평가돼 있다. SK텔레콤(이하 SKT)과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SKT는 금융기관을 제외하고 기업 신용등급이 AAA인 유이한 국내 기업이다. 탄탄한 재무상태와 달리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2일 종가인 21만 5000원 기준으로는 과거 최고가(2000년 1월 4일 50만 7000원)의 40% 수준이다.
 
세마나에서 SKT는 투자 성과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SKT는 2017년 박정호 대표이사가 부임한 이후 △ADT캡스 인수 △나녹스(Nano-X)·카카오(035720)·웨이브·인크로스 지분 투자 △우버와 조인트벤처(JV) 등 크고 작은 투자를 단행했다. 박 대표는 SK하이닉스(000660) 인수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5월 SK그룹 수펙스추구 대상을 받기도 한 터라 SKT의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다. SK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세미나에서) SKT는 딱 잡히는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면서 "플랫폼 투자, ADT캡스 인수 등이 SKT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SKT는 나녹스(Nano-X) 투자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녹스는 나노 반도체 기반 디지털 엑스레이 스타트업으로 지난 8월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이다. 상장 후 미국 공매도 세력인 머디워터스리서치는 나녹스를 "니콜라보다 더 쓰레기 같은 기업"이라고 칭하며 '조작설'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후 나녹스로부터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김일웅 SKT 홍콩 법인장으로 인해 SK텔레콤의 배임 문제가 법조계를 중심으로 주목받았다. 김 대표가 SKT에 관련 보고를 했다면 SKT가 주주에게 배임 문제가 발생하고,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김 대표의 배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준 대표가 이끄는 SK이노베이션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가를 보면 알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16만~20만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2일 종가 기준 SK이노베이션 주가는 12만2500원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정유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SK이노베이션에는 미래 산업인 배터리 사업부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 경쟁사인 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의 주가가 코로나19 이전보다 2배가량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주가는 SK그룹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이 100% 자회사인 윤활유 제조사 SK루브리컨츠의 기업공개(IPO)를 철회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SK루브리컨츠는 2013·2015·2018년 세 차례 IPO를 추진했으나 기업가치(Valuation)에 대한 이견으로 자진 철회한 바 있다. 그는 "CEO에게 예전에 했던 의사결정 중 후회되는 결정이 있었냐는 질문에 루브리컨츠 IPO를 밀어 붙었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곳도 있다. 우선 SKC다. 이완재 대표가 이끄는 SKC는 전기차·바이오·반도체 소재 중심 기업으로 변화 중이다. SKC는 KCFT(현 SK넥실리스) 인수, SKC솔믹스 합병 등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으로 그룹 내 포트폴리오를 변화시켰다. 또한 재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화장품·건기식 소재 사업(현대바이오랜드(052260)), SKCPIC글로벌 지분, SKC코오롱PI 지분 등을 매각하기도 했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와 계열사인 SK가스(018670), SK케미칼(285130)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SK디스커버리 계열사들은 친환경, 바이오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SK케미칼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계열사 SK바이오사이언스로 올 한 해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달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판교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를 방문하기도 했고, 지난 6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코로나19 백신 임상 1상을 신청하기도 했다. 
 
자체 개발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위탁 생산도 고려 중이다. 주가 역시 급등했다. 이날 SK케미칼의 종가는 34만 7500만원으로 지난해 말 6만 7000원이었던 주가와 비교해 5배 이상 올랐다. 
 
SK케미칼은 수익 지연, 투자와 차입 부담 등을 고려해 바이오 에너지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9년 상반기 말 51.8%에 달했던 차입금의존도를 올 상반기 말 40.4%까지 낮췄다. 차입금의존도는 통상적으로 30%를 내외로 높고 낮음을 평가한다.
 
또 다른 계열사 SK가스는 국내 1위 LPG 판매기업으로서 지위는 유지하는 가운데 석탄화력 발전에서 LNG/LPG 복합 화력, 신재생 에너지과 같은 친환경 발전으로 변화 중이다. 친환경 사업인 PDH(Propane Dehydrogneation, LPG를 원료로 프로필렌 제조)에 진출하기도 했다. 투자 부담이 상당한 선택이다. 2021~2022년 연간 6000억원의 투자가 예상되고 있다. SK가스 역시 SK케미칼처럼 투자로 인한 재무부담을 △차이나가스홀딩스 지분 전부 매각 △SK 디앤디 지분 일부 매각 △음성 천연가스 발전 매각 등으로 미리 대비했다. 
 
SK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SKC는 빠르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변화를 가져갔다는 평가를 받았다"면서 "최창원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계열사 모두 전반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요 계열사 CEO들은 개념이 모호한 파이낸셜 스토리에 대한 최 회장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면서 "해가 거듭할수록 미래가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CEO 세미나를 통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
 
제보하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