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 라이벌 기싸움…목타는 일진머티리얼즈 vs 왕좌 노린 SKC
SKC, 말레이시아 쿠칭시 공장 건설 검토
일진머티리얼즈 "기술 유출 가능성 높아"
대규모 자금 유치 속 재무부담 증가…거래처 두고 향후 전쟁 이어질 듯
공개 2020-10-13 09:30:00
이 기사는 2020년 10월 12일 11:02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SK넥실리스가 말레이시아에 동박 공장 건설을 검토하자 일진머티리얼즈(020150)(이하 일진)는 크게 반발, 공론의 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일진의 반응을 비합리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절박함은 수긍했다. 20여 년간 이어진 양 사의 경쟁은 시장과 자금 규모 확대로 전쟁에 비유할 수 있는 상황까지 커진 가운데 SK넥실리스가 거래처 확보, 기술력 등 포석 전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6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C(011790)는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정부와 규모는 26억 링깃 (한화 8천억원) 수준의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보르네오섬 서북해안에 위치한 사라왁주는 습도, 전기세 등 여러 면에서 동박 제조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지역이다. 게다가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Petronas)가 있어서 타지역보다 항구 인프라도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SKC의 자회사인 SK넥실리스가 검토하는 공장 부지가 일진머티리얼즈 공장 인접지라는 점이다. SKC 측은 "먼저 부지를 선정한 것이 아니며, 여러 후보지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이고, 일진 측은 "국내에도 경쟁사 바로 옆에 새로 공장을 건설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라고 핏대를 세웠다.  
 
이에 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한 석유화학 중견기업 대표이사는 "중소·견기업이 개발했던 기술들은 금세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기업이 오면 주변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이 올라 일진의 원가경쟁력이 낮아질 것"이라며 일진의 우려를 공감했다.  
 
반면 배터리 관련 중견기업 대표이사는 경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평가했다. 그는"대박 친 곰장어 집 옆에 다른 곰장어 집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막을 수 없다"면서 "일진이 짜증 날 수도 있고, 인력 유출도 당연히 예상되지만, LG화학의 배터리 소송 전처럼 기술 유출 문제가 아니다"라며 기술 유출과 인력 유출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쿠칭시에 배터리 타운이 건설, 인력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양 사의 경쟁력이 함께 높아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쿠칭시에 배터리 타운이 형성돼 주요 인력들이 모일 수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볼 때 일진의 우려는 공감되는 부분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윈윈(Win-Win) 관계가 될 수 있다"라고 예측했다. 
 
그렇다고 말레이사아 사라왁주 정부에 항의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한 석유화학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왁주의 고용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 상황"이라며 "SKC가 말레이시아로 들어온다면 500~600명 이상의 고급 숙련 인력이 장기간 고용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라고 평가했다. 
 
커진 판 돈에 양사 재무리스크 고조 
 
과거 '친환경'은 먼 미래의 이야기였지만, 2020년에는 현실이다. 친환경 기조 속에서 각종 환경 규제가 이어지고 있으며, 자동차는 내연 기관에서 전기차로의 변화가 임박했다. 전기차의 급성장이 예상됨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 기업들 역시 대규모 투자 유치를 성공, 패권 경쟁이 한창이다. 상반기 말 기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극집전체(I2B) 제조사인 둘 간의 '기싸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7년부터 말레이시아 쿠칭시에 공장을 이미 가동 중인 일진머티리얼즈는 향후 공장을 증설해 생산 능력(이하 Capa)을 10만 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SKC 역시 대한민국 정읍에서 5만 톤, 말레이시아에서 10만 톤 등 총 15만 톤까지 캐파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밋빛 미래가 예상되더라도 과실을 모두 얻을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게다가 사업 리스크는 커졌다. 공장 증설로 고정비 증가, 영업레버리지(DOL)는 상승했으며 재무적 리스크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SKC의 미래성장 3대축인 모빌리티, 반도체, 친환경 소재. 출처/SKC 지속가능경영보고서
 
SKC의 차입금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말 1조 6800억원이었던 차입금은 올 상반기 말 2조 7217억원까지 늘었다. SK바이오랜드(052260)현대백화점(069960) 그룹으로 넘겼지만, 차입금의존도는 자산의 절반 수준인 47.2%다. 
 
동박 공장 증설이 1만 톤 당 1200억~13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조 단위 투자가 예상되는 터라 SKC의 재무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관계자는 "SKC의 재무 상황에서 자금 유치는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자본으로 자금을 조달한 일진이라 하더라도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진의 자회사 IMM TECHNOLOGY SDN. BHD는 자본인정형 전환사채(CB)를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발행, 6000억원을 조달했다. 자본으로 인정되긴 하지만 보장수익률과 투자회수(Exit) 관련 조건이 달려있다고 전해진다. 
 
IB업계 관계자는 "자회사의 IPO가 엑시트 조건으로 달려있다면 결국 말레이시아 내 시장 경쟁력 확보는 영업과 재무 양 측에서 영향을 미친다"면서 "SKC도 같은 방식이라면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두 회사의 경쟁은 지금보다 훨씬 가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박 세계 1위 노리는 SK…일진의 위기는 이제 시작(?)
 
SK(034730)그룹은 세계 동박 시장 최강자를 유지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SKC의 생산 능력(Capa)을 15만톤까지 늘리고, 중국의 동박 제조사 왓슨(Watson) 지분 투자 등을 단행했다. 왓슨 사는 중국 배터리 업체인 CATL에 동박을 공급하는 회사로서 생산능력을 2025년 14만톤까지 늘릴 것으로 알려져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용 동박 수요는 2020년 13.5만톤에서 2025년 74.8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K는 SKC와 왓슨을 통해 30만톤을 생산, 산술적으로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 수 있게 된다. 일진 역시 10만톤까지 캐파를 확대할 계획이다. 
 
양 사는 캐파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 거래처 이외의 추가적인 거래처 확보가 요구, 잠재적인 충돌이 예상된다. 한 석유화학 연구원은 "왓슨이 있는 중국에 동박 공급이 어려우니 판매처가 국내로 한정될 수밖에 없어 판매처가 겹친다"라고 말했다. 
 
베터리용 동박 업체의 장기계약. 출처/미래에셋대우
 
현재 일진의 주 고객처는 삼성SDI(006400), SKC(SK넥실리스)는 SK이노베이션(096770)LG화학(051910)이다. 향후 생산 능력이 늘어남에 따라 추가 거래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쉽지 않다. 그나마 중립적인 거래처로 LG화학이 지목되지만, SKC가 유리하다는 평이다. 과거 LG금속, LS엠트론 등이 SK넥셀리스의 경영권을 잡고 있었던 적도 있어, LG화학과의 네트워크가 강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금 유치, 수주, 설비 증설, 판매처 확보 등 포괄적으로 볼 때 일진머티리얼즈는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정상적인 경쟁 행위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나름 이해되는 면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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