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단수'에 장고 들어간 정몽규, 아시아나 딜 향한 마지막 행마는?
아시아나 인수 = 코로나19 직격탄 내재화
아시아나 인수 철회, 현 정부와 관계 틀어져
이세돌의 78수와 같은 신의 한수 없으면 어떤 선택도 '마이너스'
공개 2020-07-10 09:30:00
이 기사는 2020년 07월 08일 15:1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양단수는 두 곳이 동시에 몰리는 단수를 말한다. 바둑에서 양단수에 걸리게 되면 양쪽을 모두 도망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의 모습이 딱 그렇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코로나19로 행마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 정몽규 회장의 선택에 그룹의 명운이 걸린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번 회사채 수요예측 참패로 리스크를 또 한 번 확인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이 극도의 침체에 빠지며 인수 포기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국토부·금융위 등 정부와의 관계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몽규 HDC(012630) 회장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 매력적인 선택지는 보이지 않는다. '차악'을 고르는 일만 남은 가운데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기와 정몽규 HDC그룹 회장. 자료/IB토마토
 
지난 6일 현산은 공모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총 3000억원을 모집하려 했으나, 110억원의 주문만 들어오며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나머지 2890억원은 주관사와 인수자가 인수할 예정이다. 
 
예견된 참패였다. 현산은 조달한 자금 중 절반 이상인 16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020560)의 신주 인수에 쓸 예정이다. 자금 사용 방안이 알려진 이후 흥행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표주관사 역시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구조를 설계했다. 주관사들은 미매각이 됐을 때 발행 총액을 인수할 의무가 있다. 즉, 아시아나항공 리스크를 발행사도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우선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005940), 키움증권(039490), KB증권, 미래에셋대우(006800) 등 5곳이 대표 주관을 맡으며 위험을 분산했다. 또한 희망금리밴드의 상단(2년물 100bp, 5년물 120bp)을 크게 높였고, 수수료율은 0.3%로 높였다. KDB산업은행을 인수단으로 끌고 왔다. 
 
수수료율과 금리밴드 조정을 현산이 받아들인 점도 눈길을 끈다. 현산과 달리 시장은 화답하지 않았다. 기관투자자들은 현산이 제시한 금리 수준으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인한 위험을 감당하기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증권사의 한 회사채 딜러는 "코로나19가 아직 진정되지 않아 회사채 투심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게다가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악재로 판단되는 상태라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현산이 아시아나를 인수할 경우, 그룹이 크게 휘청일 수 있다"면서 "현산이 그룹을 살리기 위해서 아시아나 인수를 포기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현산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 최악인 업황에 대한 우려를 내보냈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아시아나의 자본은 80% 이상 잠식됐고, 부채비율은 16800%를 넘어선다. 부채비율은 보통 200% 전후로 판단하기에 그 기준을 훌쩍 뛰어넘은 셈이며, 일반적인 기업에게는 자본잠식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를 선언하기도 어렵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이 인수 압박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유관부처인 국토교통부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유관 부처이기도 하다. IB업계 관계자는 "국토부는 현산이 하는 일에 땔레야 땔 수 없다"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가 본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민주당은 180석을 차지하는 거대 야당"이라면서 "정몽규 회장은 골치 아픈 난제에 직면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주력인 건설업 때문에 국토교통부와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만큼 관계가 악화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HDC그룹이 앞으로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김현미 장관은 현 정부의 주축이다. 검찰 개혁만큼 중요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 사람으로 현 정부는 출범 이후 그를 지지하고 있다. 
 
정부의 수장들은 공통적으로 정몽규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정부가 정 회장 입장을 십분 고려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 회장 입장에서 조건 제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건을 제시하는 순간부터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테이블에 앉는 순간 대외적으로 아시아나 인수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비칠 수 있기에 조건 제시 자체가 함의하는 바가 상당하다. 
 
협상이 깨질 경우, 현 정부 수장들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위험이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현산이 아시아나 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것은 거의 확정적인데, 그 방법이 어려울 뿐"이라면서 "현 정부와 멀어질지 코로나19와 멀어질지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솔루션을 내는 핵심 멤버들이 바뀌며 다소 갈팡질팡하는 면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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