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나선 휴맥스…AT&T가 '양날의 검'인 까닭
AT&T 매출채권 유동화로 600억원 조달…“운영자금 확보 위해 필요”
신용평가사 “AT&T 등의 인수합병으로 휴맥스 전방 교섭력 약화돼”
공개 2020-03-19 09:10:00
이 기사는 2020년 03월 18일 10:3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셋톱박스 제조업체 휴맥스가 매출채권을 기초로 한 자산담보부대출(ABL)을 활용해 거액의 자금을 조달한다. 휴맥스가 성장 한계에 부딪혀 수익성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AT&T 등 인지도와 사업 안정성이 높은 기업을 거래처로 두고 있어 자금조달이 수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AT&T 등 휴맥스의 주요 거래처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점이 휴맥스의 전방 교섭력 및 재무안정성을 위축시키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휴맥스(115160)는 SC제일은행으로부터 6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자금조달은 자산담보부대출(ABL) 형태로 이뤄진다. 기초자산은 휴맥스가 미국 통신사 AT&T를 대상으로 발행한 매출채권이다. 대출 기간은 1년, 이자율은 스왑(Swap)을 통해 4.8%의 고정금리로 정해졌다. 담보는 휴맥스가 SC제일은행 등에 보유 중인 200억원 규모의 정기예금 등으로 설정됐다.
 
휴맥스는 과거에도 매출채권을 이용한 ABL 발행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왔다. 지난해 4월 미국 해외법인인 휴맥스USA 및 Genesis의 매출채권 등을 SC제일은행에 제공하고 1000억원을 조달했다. 휴맥스의 매출 구조는 국내 생산→해외법인 수출→재고→판매→셋톱박스 설치 후 수금의 형태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ABL은 조달 비용을 낮추고 자금을 간편·신속하게 수취하고 싶을 때 이용된다. 최근 휴맥스의 단기신용등급이 A3로 하락하고, 수익 변동성도 증가하는 등 악재가 겹치다 보니 유동화 등을 통해 자금조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휴맥스의 매출 75%는 셋톱박스 제조 등에서 비롯된다. 주요 판매처는 미국과 유럽이며, 두 지역의 매출 비중 총합은 셋톱박스 매출의 80%를 넘는다. 이처럼 휴맥스 매출은 특정 지역 셋톱박스 판매로 편중돼있지만, 대신 거래처로 AT&T, 차터(Charter) 등 우수한 사업기반을 지닌 기업을 두고 있다.
휴맥스가 제조하는 셋톱박스. 사진/휴맥스 홈페이지
 
일례로 금번 ABL 발행 기초자산이 된 AT&T의 2019년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5516억달러(685조), 매출액은 1812억(225조)에 이를만큼 거대하다. 물론 AT&T의 신용도는 하락 추세로, S&P가 BBB, 무디스가 Baa2로 평가하고 있지만,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비교적 우수한 수준으로 볼 수도 있다. AT&T와 동일 등급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SK이노베이션(096770) 등이 있다.
 
휴맥스의 금번 조달자금은 차환 및 운전자금 등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공시된 회의록을 통해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단기차입금 조달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휴맥스와 같은 제조기업은 업종 특성상 운전자본 변동이 크다. 운전자본은 기업의 원료 구입 등에 필요한 자금을 의미한다. 휴맥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기업은 채권을 이용해 거래하므로, 원재료 구입과 물건 판매 시기 등이 일치하지 않아 경우에 따라 현금흐름이 위축될 수 있다.
 
신용평가사 등은 휴맥스가 AT&T 등의 글로벌 업체를 거래처로 두고 있는 점이 운전자본 부담을 증가시킨다고 분석한다. 핵심 거래처들이 몸집을 불린 탓에, 휴맥스 전방 교섭력도 자연스레 악화됐다는 지적이다.
 
경쟁 심화 및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급부상으로 휴맥스 전방산업군인 유료방송의 성장 둔화 추세가 뚜렷해지다 보니, 해당 업체들은 시너지 창출과 규모의 경제 시현 등을 위해 인수합병을 적극 추진한 바 있다. AT&T는 다이렉TV를 485억달러에 인수했고, 차터는 타임워너케이블(TWC)을 550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같은 전략은 국내 유료방송업체도 구가하고 있다.
 
전방 교섭력 악화는 제품의 구매가격이나 결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거래처 숫자는 줄고 규모는 커지다 보니, 휴맥스와 같은 셋톱박스 업체는 자연스럽게 협상력에서 밀리게 된다는 의미다. 곧, 매출채권 회수가 늦어질 수 있으며, 재고자산 조정 및 원재료 상승분의 판가 반영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휴맥스의 분기 중 운전자본 변동성이 확대돼 차입금 증가 가능성이 커져 재무안정성이 약화됐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휴맥스의 2018년 현금전환주기는 2015년 대비 9일 증가한 109일을 기록했고, 지난해 분기 중에는 121일까지 확대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셋톱박스 제조업체 경쟁이 심화되다 보면, 결과적으로 소수만 살아남게 돼 결국 휴맥스 협상력도 제고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내고 있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휴맥스는 글로벌 방송사업자 대비 열위한 교섭력 등으로 운전자본부담이 높고 분기별 변동위험도 내재되어 있다”라며 “향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분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휴맥스의 올해 셋톱박스 매출액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다만 지역별로는 북미 비중이 줄고 유럽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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