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판매가 인하 계열사에 전가?…율촌화학 '재무부담' 우려
라면 및 스낵 출고가 인하…계열사에 부담 전가 우려 목소리
포장재 납품하는 율촌화학 관심…농심 원자재 비중 18.7% 차지
2차전지 소재 증설 투자 필요…전자 소재 현금창출력 저하도
포장재 주요 원재료 PP 가격 하락…납품 단가 인하 여력 충분
공개 2023-07-03 06:00:00
[IB토마토 홍인택 기자] 농심(004370)이 라면과 스낵 판가를 인하하면서 농심에 포장재를 공급하는 율촌화학(008730)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농심이 제품 판가 인하를 포장재 납품 단가에 전가할 경우 재무부담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율촌화학은 특히 전기차 배터리 소재 공급을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최근 전자소재 부문 현금창출력까지 저하된 상태다. 농심 측은 판가 인하에 대해 소맥분 가격 인하만 반영한다고 일축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오는 7월1일부터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한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판매 가격 인상으로 대응했지만, 최근 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이 다시 안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농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평균 3.6%보다 높은 7.4%를 기록했다.
 
농심이 식품 판매가격 인하를 결정함에 따라 원부자재 매입 가격 조정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계열사인 율촌화학으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농심은 포장재 대부분을 율촌화학으로부터 구매하고 있는데, 율촌화학도 현금창출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인 탓이다.
 
문제는 율촌화학의 수익성을 높여줄 수 있는 배터리 제조용 알루미늄 파우치의 공급 확대를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포장재 판가 조정이 일어나면 현금창출력에 비해 투자 비용이 늘어나면서 재무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농심, 포장재 구입 비용은 매출원가 19% 수준
 
농심이 원가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포장재 등 부재료 구입 비용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다. 농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원가는 5964억원이며, 이 중 포장재 부재료 구입액은 1117억원 수준으로 약 18.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심을 향한 판가 인하 요구 근거는 소맥분 등 주요 원재료의 가격 안정화지만, 밀이나 팜유 등 식품 가격 인상 배경으로 지목됐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기후재난 등으로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남아 있다.
 
농심이 율촌화학에 포장재 인하 요구를 할 수 있는 배경은 포장재의 주요 원재료인 폴리프로필렌(PP)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삼성증권(016360)에 따르면 28일 기준 PP 가격은 톤당 810달러로, 지난해 2분기 평균 대비 약 28.5% 낮다.
 
율촌화학의 올해 1분기 생활용품 포장재 가격은 미터당 15만3085원으로 지난해 2분기 인상한 가격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분기 율촌화학 포장재 부문 영업이익률은 9.1%로 전년 동기 대비 1.2%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률인 9.9%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판가 인하 압력이 부담스러운 이유 '재무부담 확대'
 
율촌화학도 나름대로 갈 길이 바쁘다. 포장재 사업은 안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전자소재 사업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율촌화학 전자소재 사업의 주요 제품은 PET필름으로 주로 모바일 및 디스플레이 광학 필름에 적용되는데, IT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2021년부터 현재까지 영업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225억원이었고 올해 1분기에도 45억원 적자가 지속됐다.
 
특히 율촌화학의 현금창출 능력이 저하되면서 재무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1분기 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은 97.3%, 총차입금의존도는 32.1%로 지표는 양호하지만 2021년부터 자본적지출(CAPEX)이 확대 중인 가운데 현금성자산이 빠르게 소모되어 순차입금이 늘어나는 판국이다.
 
율촌화학의 CAPEX는 2021년 383억원으로 전년대비 87.7%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375억원으로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전자소재 사업 실적 악화로 영업현금흐름(OCF) 유입액은 2021년 339억원, 지난해 154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1분기에는 164억원 유출로 전환됐다. CAPEX를 32억원까지 줄였지만, 1분기 기준 현금성자산은 186억원에 불과해 순차입금의존도가 29.2%로 전년 동기 대비 9.8% 포인트 상승했다.
 
현금창출력 악화로 신용등급 조정에도 경고등이 켜질 판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율촌화학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으로 유지했는데, 등급 하향 트리거로 제시한 조건은 이미 지난해 건드린 상황이다. 나신평은 율촌화학의 매출 대비 상각 전 이익(EBITDA) 비율이 8% 미만이고, EBITDA 대비 순차입금 배율이 3.5배 이상이 지속될 경우를 등급 하향 조정 기준으로 세웠다. 율촌화학은 지난해 매출액 대비 EBITDA 비율이 6.3%였고, EBITDA 대비 순차입금 배율은 5.3배였다. 1분기 지표는 각각 6.1%, 6.5배로 지난해 말 기준보다 더 악화됐다.
 
농심 라면과 스낵 (사진=연합뉴스)
 
농심, 가격 인하는 소맥분 인하만 반영…포장재 가격 조정 들은 바 없다
 
농심그룹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소맥분 가격이 7월부터 약 5% 인하될 예정이고, 비용 절감액은 약 80억원이 될 것"이라며 "가격 인하는 소맥분을 반영한 것으로 포장재와 관련한 가격 인하 조정은 따로 들은 바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농심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율촌화학으로서는 한시름 덜어낸 셈이다. 포장재로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하고, 수익성이 높은 배터리 제조용 알루미늄 파우치 물량을 확대하면서 현금창출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수익성으로만 따지면 현재 배터리 제조용 알루미늄 파우치가 율촌화학 제품군 중에서는 가장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도 나신평 선임연구원은 "율촌화학은 현재 전기차 배터리 제조용 알루미늄 파우치 공급을 위해 836억원을 투자해 포승공장에 전용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어 차입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며 "알루미늄 파우치 실적 가시화를 통해 재무부담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율촌화학의 현금창출력 개선이 2024년 이후로 본격화될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GM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에 알루미늄 파우치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얼티엄셀즈의 순차적 가동 시기, 포승공장 증설 완공 예상 시점이 올해 말에 맞물린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홍인택 기자 intae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