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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
"회사의 위법 행위로 소액주주들이 피눈물 흘리는 일 없어야"
공개 2023-01-16 06:00:00
[IB토마토 박수현 기자] 언젠가부터 K-바이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신약개발 기대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바이오 벤처들은 외형적인 측면에서 급성장세를 보였지만, 정작 투자자들로부터는 외면받고 있다. 신뢰도가 무너진 배경에는 무엇보다 ‘조작’과 ‘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은 의약품의 성분이 허가 당시 성분과 달라서 시장에서 퇴출당하는가 하면, 실적이 좋은 우량기업에서 대규모 횡령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국민들은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의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와 오스템임플란트(048260) 횡령 등 바이오업계의 신뢰를 뒤흔드는 사건을 연이어 마주했다. 코오롱은 자체개발해 품목허가를 받은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이 허가 과정에서 제출한 성분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며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는 재무담당 직원이 수년에 걸쳐 2000억여원을 빼돌린 역대 최대 규모의 횡령 사태가 발생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20위에 달하던 기업에서 수천억원의 횡령이 일어났는데 회사 측이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식시장에 큰 파장을 남겼다.
 
당장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수십만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이었다. 이들은 형사 고소를 언급하며 회사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공동소송을 진행했다. 손쓸 새도 없이 당해야 했던 이들 처지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오킴스)
 
당시 이들의 소송을 대리하며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 있다. 코오롱 인보사 사태부터 호날두 노쇼 사건, 오스템임플란트 횡령까지 ‘집단 피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다.
 
지난 2013년 제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엄 변호사는 ‘공동소송 전문변호사’로 평가받는다. 2019년 오킴스에 합류해 국내 기업에서 발생하는 각종 계약 관련 민사 분쟁을 비롯한 형사사건, 공정거래, 언론분쟁, 근로분쟁 등 법률자문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엘러간 여성가슴보형물 피해 환자와 메디톡스(086900) 의약품 역가 조작에 따른 허위공시 피해 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대리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음은 엄태섭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공동소송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명성이 드높다. 기업과 피해자(주주, 소비자 등) 간의 각종 분쟁과 불합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접한 집단분쟁은 KT(030200) 아현동 화재사건이었다. 아현국사 화재로 인해 KT망을 사용하는 지역 소상공인들이 약 3~4일간 카드결제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KT는 소상공인들의 개별적 피해 상황을 진단하기보단 ‘위로금’ 명목으로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 지으려는 태도로 일관해 질타를 받았다. 당시 내 가족이 피해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 중이었는데, 피해 규모에 현저히 못 미치는 월 통신요금 수준의 보상안을 전달받아 망연자실했다. ‘집단소송법’이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피해자들이 개별대응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해 ‘위로금’이라는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공동소송에 나서게 됐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코오롱 인보사, 메디톡스 허위공시 등 제약·바이오업계의 굵직한 사건을 맡아왔다.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기보단 주주손배사건이 발생하면 반복되는 책임 떠넘기기 현상의 공통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상장기업의 위법행위가 적발돼 주가가 하락하고, 그로 인해 주주에게 직간접적 손해가 발생하면 어떤 회사의 대표는 특정 직원의 일탈 행위일 뿐 사측에는 잘못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회사 내부감사시스템의 부재를 원인으로 돌린다. 하지만 핵심 원인을 내부감사시스템의 부재로만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를 믿는다면 감사제도는 필요가 없다. 모두가 악해서가 아니라 오판하는 일부를 막기 위해 제도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회사의 내부감사시스템에 혹여 문제가 있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상장기업에 투자한 소액투자자, 즉 국민을 최전선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외부감사시스템이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느슨하다.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의 취지가 무색하게 실무에선 내부에서 제공된 자료만으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터졌을 때 외부감사인들이 “회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거래소는 또 어떤가. 투자와 도박의 차이는 공정하게 제공된 정보를 통한 각자의 합리적인 가치 판단 여부라고 생각한다. 기업공개(IPO)란 투자자에게 가치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이고, 거래소는 바로 그 정보공개가 적절히 이뤄지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앞으로 거래소는 상장 적격 여부를 상시적으로 판단해 적어도 거래소를 통해 주식이 거래되는 회사라면 공개된 정보 외에 다른 변수, 예컨대 주요주주들의 미공개정보이용행위 내지는 사후에 적발되는 회사의 위법행위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피눈물 흘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간 경험을 통해 생긴 노하우가 있다면?
△소장 접수 전에 피해자들과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를 온라인에서 구현했다는 점이다. 노하우라기보다는 직장동료들과 임직원들의 희생을 통해 얻은 값진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공동소송은 소장이나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변론기일에 출석하는 것보다 수많은 원고들로부터 위임장과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질문에 답하며 소통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 작은 규모의 사무실이라면 직원이나 변호사 한두명이 수백, 수천명의 원고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대 국회 때 정부안으로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던 제외신고형(opt-out) 방식을 일부 차용한 집단소송법이 하루빨리 입법화되기를 희망한다.
 
-최근 불안정한 증시 상황과 더불어 주로 맡고 있는 제약·바이오업계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자문 수요에도 변화가 있었나?
△주주들은 같은 상황에 놓여있어도 종종 서로 다른 입장인 경우가 있다. 회사의 위법행위를 정확히 짚어내어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를 배상받길 희망하는 분들이 있고, 회사가 조속히 정상화 돼 주가가 회복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이 있다. 한편, 소액주주운동 역시 활발해지고 있다. 주주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도록 회사를 견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자문을 요청받기도 하지만, 우량한 기술을 갖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목적으로 소액주주연대를 이용하려는 자들을 어떻게 방어할지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기도 한다. 
극명하게 갈리는 양극단의 목소리로 인해 간혹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법률가로서, 그리고 사건을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중심을 잡고자 수차례 사건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의뢰인에게 유리하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되 그것이 사회정의에 반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을 위해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나?
소액 다수의 피해라는 집단분쟁의 특성상 피해자로서는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막대한 소송비용과 소송시간을 감안하면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아 소제기를 하지 못하는 이른바 ‘제소의 체념’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건은 발생했고 피해도 분명한데 제소의 체념상태에 빠진 다수가 소제기를 못하면 사업자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게 된다. 규모가 크고 피해 인원이 많은 사건일수록 손해배상은 이뤄지지 않는 사회적 모순과 위험이 지속된다. 
작은 피해라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꼭 사법기관을 통한 소송절차일 필요는 없다.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원 등 각종 민원이나 분쟁 해결기구도 좋으니 피해 상황을 알리고 피해자들 간의 연대를 통해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누군가 대신해 주겠지’라는 제소의 체념상태에서 벗어나야 나의 피해는 물론이고 이웃의 피해와 사회의 모순도 조금씩 해결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소액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공동소송에 참여해야만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재판을 청구하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액 사건의 경우에도 누구나 재판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기회의 평등을 구현하고, 원한다면 누구나 나 홀로 소송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박수현 기자 psh557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