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자닌 올인' 에이치엘비, 대규모 자금조달에 쏠린 눈
올해만 CB·BW로 2102억원 자금 확보…작년 전체 넘어서
리보세라닙 임상 결과에 '촉각'…오는 7일 ASCO서 발표
"리보세라닙 임상 위해 자금조달…지분 희석은 우선순위 아니야"
공개 2022-06-08 08:30:00
 
[IB토마토 박수현 기자] 옵티머스 사태로 곤혹을 치렀던 에이치엘비(HLB(028300))가 메자닌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수년간 끌어모으고 있다. 비단 에이치엘비뿐만 아니라 계열사들도 그룹 기조에 맞춰 메자닌 발행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올해 조달 금액만 2000억원을 넘어서며 지난 한 해 발행한 총액을 웃돌고 있다. 잦은 자금조달로 인해 최대주주 지분 희석 우려도 나오고 있어 발행 목적에 관심이 쏠린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에이치엘비는 지난 2일 ‘운영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23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와 17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CB 전환가액과 BW 행사가액은 각각 4만8605원으로 내년 6월2일부터 전환청구·행사가 가능하다. 회사는 올해 3월에도 252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한 바 있어 올해 총 652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에이치엘비·에이치엘비생명과학, 올해 CB·BW로 조달한 금액 2102억원 
 
 
 
같은 날 상장계열사 에이치엘비생명과학(067630)도 1000억원 규모의 BW 발행을 결정했다. 정관상 잔여 발행한도액인 2000억원 중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운영자금 조달에 400억원, 타법인증권 취득에 6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BW가 주주우선 공모 방식으로 발행된다는 점이다. 핵심 파이프라인의 임상시험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기존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청약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주주를 통해 발행대금이 모두 소화되지 않으면 일반공모로 전환하고, 최후에는 주간사들이 인수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분 19.6%를 보유한 에이치엘비도 참여할 예정이다.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은 지난달 31일 체외진단 의료기기 업체 에임을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45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날 지급한 현금 100억원과 거래 종결일인 오는 30일 지급할 429억원까지 더해 총 979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보통주 10만주를 취득하는 것으로 구주 취득이 끝나면 에이치엘비는 에임의 지분 100%를 하게 된다.
 
올해 초 에이치엘비가 인수한 자회사 노터스(278650)는 무상증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9일 보통주 1주당 신주 8주를 배정하는 무상증자를 결정했다. 주식발행 초과금 62억4492만2400원을 활용해 신주 6244만9224주를 발행한다.
 
노터스는 1월에도 CB 811억원을 발행한 바 있다. 당시 회사는 추가로 발행할 수 있는 CB가 기존 한도액 1000억원 중 189억원만 남게 됐는데, 3월 주주총회에서 CB, BW 액면총액을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 안건을 승인했다. 발행 예정 주식 총수가 5000만주에서 1억주로 증가하며 추가 자금조달 가능성을 시사했다.
 
에이치엘비그룹의 자금조달 행보는 재작년부터 시작됐다. 2020년 미국 바이오 기업 인수를 위해 3976억원(에이치엘비 3681억원·에이치엘비제약 295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으며, 지난해에는 CB 229억원, BW 1810억원 등 총 2039억원을 발행했다. 계열사인 에이치엘비생명과학(HLB생명과학(067630))과 에이치엘비제약(HLB제약(047920)), 단디바이오, 넥스트사이언스 4곳이 모두 메자닌 발행에 나섰다.
 
라보세라닙 성공이 관건
 
리보세라닙 작용기전. (사진=에이치엘비)
 
자금조달의 중심에는 ‘리보세라닙’이 있다. 리보세라닙은 표적항암제 후보물질로 에이치엘비의 명운이 걸린 핵심 파이프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암 관련 임상을 끝냈으며, 간암과 선양낭성암 적응증에 대해 글로벌 임상3상, 한국·미국 임상2상을 각각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리보세라닙을 동물용 항암제로 개발하는 임상도 시작했다.
 
리보세라닙이 에이치엘비에서 자체 발굴한 후보물질은 아니다. 원래 미국 어드벤첸연구소가 개발한 것이었는데, 에이치엘비의 현 미국 자회사인 엘레바테라퓨틱스가 2007년 12월 라이센스 취득 계약을 통해 사들였다. 이후 엘레바는 2009년 12월 부광약품(003000)에게 국내 판권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공동개발을 진행했고, 부광약품은 2018년 8월 국내 판권에 대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에이치엘비생명과학으로 400억원에 양도했다. 또 엘레바는 2019년 에이치엘비의 종속회사로 편입됐다. 이에 따라 에이치엘비가 리보세라닙의 글로벌·국내 권한을 보유하고 모두 보유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에이치엘비의 공격적인 자금조달이 리보세라닙 리스크를 염두에 둔 선제적 조치라고 보기도 한다. 회사는 엘레바를 통해 리보세라닙의 미국 식품의약품(FDA) 품목허가에 3년째 도전하고 있다. 말기 위암 치료제로 2019년 글로벌 임상 3상을 끝냈음에도 임상 1차 지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FDA로부터 자료 보완을 요청받았다.
 
에이치엘비는 리보세라닙의 임상에 속도를 내기 위해 자금조달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FDA와는 협의 단계에 있다. 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규정상 임상 데이터를 공개할 수 없었는데, 오는 7일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리보세라닙 임상과 관련된 데이터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와는 별개로 회사에서는 FDA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리보세라닙 임상 현황. (사진=에이치엘비)
 
당장은 자금조달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자체적인 매출 창출 규모를 늘려 지속가능성을 키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회사 측은 “파이프라인 확충과 임상 비용 등으로 자금이 대거 투입됨에 따라 유동성이 안정적이진 않았는데, 향후에는 CB나 BW 발행을 통한 자금 확보보다 영업활동을 통한 매출을 통해 이익을 키워나갈 것”이라며 “최근 인수한 에임 또한 올해 1분기에만 900억원의 매출을 낸 곳으로 유동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잦은 자금조달에 따른 최대주주 지분 희석 우려에 관해선 “주요사항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총상 외부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돼 전체 주식수가 증가하면 최대주주 보유 지분도 낮아진다. 최대주주의 지배력 악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식시장에서는 악재로 여겨진다. 회사 측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대비하는 선에서만 경영권 방어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적대적 M&A 따위를 방어하기 위해 황금낙하산 조항을 일부 도입하곤 했지만,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진 않다”라며 “신약개발에 성공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더욱 많은 암환자들에게 품질 좋은 치료제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고 전했다.
 
박수현 기자 psh5578@etomato.com